천지의 대경대법(大經大法 근본이 되는 원리와 법칙)
··································································· 병산 이관명 선생
강외에 있으면서 사직하는 상소[在江外辭職疏〕1725년 영조1년 10월 5일
삼가 아룁니다. 신이 오늘날 서울을 떠난 것은 사적인 일시적 불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며, 종국(宗國 조국)을 그리워하는 정성 또한 어찌 감히 잠시라도 마음속에서 잊었겠습니까. 다만 자신의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면 떠나라고 옛 성인(聖人)께서 분명히 경계하였거니와, 더구나 신은 사사로운 의리에 있어서도 하루도 영예로운 자리를 외람되이 차지하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사직상소를 올리고 곧바로 도성을 나와 강가 교외로 물러났던 것입니다.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있자니, 공자 모(公子牟)가 궁궐을 그리워한 정도일 뿐만이 아니었는데, 삼가 전후로 내리신 성상의 비답을 받드니 말씀하신 취지가 정성스러워 마치 자애로운 아버지께서 미욱한 자식을 가르치는 것 같았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직무를 다하지 못한 일개 천한 신하가 어찌 성상께 이런 대우를 받겠습니까. 황송하고 감격하여 종일토록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의 마음을 전하께 다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신이 굳이 떠날 필요가 없는데 시사(時事)를 돌아보지 않고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지나친 행동을 해 가며 오로지 자신을 편안케 하려는 계책을 도모한다고 하시니, 이에 신은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하여 어쩔 수 없이 진심을 모두 말씀드려서 지엄하신 성상을 어지럽게 해 드리오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누구나 주벌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명색이 재상(宰相)이라는 자가 맨 먼저 역적 토벌을 서둘러 청하면서 반년 동안 고집하였는데도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장차 임금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고 핑계 대고 은총을 탐하여 용인하고 침묵한 상태로 세월만 보내면서 변통할 줄 몰라야겠습니까? 아니면 몸을 받들어 물러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밝혀서 명의(名義)의 죄인이 되는 것을 면해야 하겠습니까?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옛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편치 않은 것은 죽더라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일찍이 군자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찌 차마 물러나기를 결정한 뒤에 지엄한 왕명에 쫓겨서 부끄러움을 지니고 아픔을 머금은 채 염치없이 다시 나와 씻기 어려운 죄를 더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또 매번 차근차근 개진하라고 하교하셨으나 신의 졸렬하고 어눌한 말로는 진실로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에 성상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서, 신이 들어가 어전에서 아뢰고 나와서 상소를 올린 것이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비유하자면 물에 돌을 던지고 작은 막대기로 큰 종을 두드리는 격이어서 백방으로 고생하며 말씀드린 것은 그저 한바탕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니, 해를 마치도록 주장을 고집하며 간쟁한들 과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신이 고집하는 것은 천지의 대경대법(大經大法 근본이 되는 원리와 법칙)인데, 전하의 마음이 이미 구구한 자애로움에 얽매여서 미천한 신의 진부한 말로는 전하의 선입견을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이 때문에 말을 많이 할수록 더욱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로(子路)가 말하기를 “남과 뜻이 같지 않은데 억지로 영합하여 말하는 자는 그 얼굴빛을 보면 무안하여 붉어진다.〔未同而言, 觀其色 赧赧然.〕”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임금과 신하의 마음이 이와 같이 다르니 구차하게 영합하려 해도 끝내 할 수가 없으며, 다만 몸과 명예가 욕을 당하게 될 뿐이니, 어찌 심력(心力)을 펼쳐서 조금이나마 나랏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만번 죽어야 할 외로운 신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하늘과 같은 성상의 덕에 보답할 길이 없으니, 한밤중에 이를 생각하면 심장이 쪼개지는 듯합니다. 지금 전하께서 또 선조(先朝)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뜻으로 신을 격려하고 꾸짖으시니, 삼가 읽고 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목놓아 울었습니다.
아, 신은 선조(先朝)를 섬긴 옛 신하로서 재앙과 변고를 겪는 가운데 목숨을 보전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조그마한 힘을 바쳐 만분의 일이나마 성상의 두터운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실록(實錄)의 일이 아니고는 더 이상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신은 밝은 조정을 영원히 떠났기에 찬수(撰修)하는 일에 참여할 수가 없으니, 자신을 돌아봄에 스스로 서글퍼져 문득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전하께서 매번 실록을 찬수할 기약이 없다고 하시면서 누누이 걱정하셨으니, 속히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이 직임을 돌려주어 성과를 책임지게 하시고, 결코 나아갈 수 없는 신에게 헛되이 맡겨 마냥 지연되는데도 이를 돌아보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신은 명을 태만히 하고 나라를 저버렸으니 죄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전하께서 위령(威令)을 크게 발하여 마땅히 시행해야 할 법률로 감죄(勘罪)하신다면, 논척하여 파직하든 찬축하여 유배 보내든 참으로 달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선왕의 옛 신하를 특별히 불쌍히 여겨 마침내 예로써 진퇴(進退)시키려고 하여 신의 무거운 짐을 풀어 주어 시골에서 한가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신은 살아서는 영광이고 죽어서는 편안하여 더 이상 여한이 없을 것이니, 부디 밝으신 성상께서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5권 소차(疏箚)>
[주-1] 강외에 …… 상소 : 《승정원일기》 영조 1년 10월 5일 기사에 보인다.
[주-2] 신이 …… 것 : 이관명은 유봉휘(柳鳳輝) 등의 역적을 토벌을 강력히 요청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725년(영조1) 10월 1일에 사직상소를 올리고 금천(衿川)으로 내려갔다. 《承政院日記 英祖 1年 10月 1日》
[주-3] 자신의 …… 경계하였거니와 : 옛 성인은 맹자를 가리킨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맡은 직책이 있는 자가 그 직책을 수행할 수 없으면 떠난다.”라고 하였다.
[주-4] 공자 모(公子牟)가 …… 아니었는데 : 《장자(莊子)》〈양왕(讓王)〉에 “중산공자 모(中山公子牟)가 첨자(瞻子)에게 말하기를 ‘몸은 강호에 있어도 마음은 위나라 궁궐에 있다.’ 하였다.”라고 한 데에서 인용한 것으로, 임금을 그리워하는 것을 뜻한다.
[주-5] 죽는 …… 것입니다 :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원하는 바가 삶보다 더한 것이 있으므로 삶을 구차히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바이지만, 싫어하는 바가 죽음보다 심한 것이 있으므로 환난을 피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이관명이 임금의 그 어떤 지엄한 명령이 내려져도 자신의 소신을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주-6] 자로(子路)가 …… 하였습니다 : 자로는 공자(孔子)의 제자이다. 이 말은《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인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채현경 오항녕 (공역) | 2015
在江外辭職疏
伏以臣之今日去國。非出於一時悻悻之私。而眷顧宗國之忱。亦豈敢頃刻忘于情哉。只以不得其職則去。古聖烱戒。而况臣私義。有不可一日冒據於榮塗者。投章徑出。退伏江郊。瞻望京闕。不啻子牟之戀戀。伏承前後聖批。辭旨勤懇。有若慈父之誨迷子。辜恩溺職之一賤臣。何以得此於聖明哉。惶隕感激。彌日靡定。第臣之微悃。有未盡暴於黈纊之下。今殿下乃以臣爲不必可去。而不顧時事。不念 a177_104b主恩。故爲此過中之擧。專圖自便之計者然。臣於是抑塞悶鬱。不得不悉陳肝膈。仰瀆宸嚴。死罪死罪。臣聞亂臣賊子。人得而誅之。名爲宰相者。首以沐浴之請爲急。爭之半年而不得請。則其將諉之於天聽之難回。而貪戀恩寵。容忍含默。荏苒時月而不知變乎。其將奉身而退。以白其心。免爲名義之罪人乎。所惡有甚於死。故古人於其心之所不安。則雖死不爲。臣雖無狀。竊奉敎於君子矣。豈忍於决退之後。迫於嚴命。戴恥含痛。冒沒復進。以添難洗之罪哉。殿下又每以從容開陳爲敎。以臣拙訥之言。固難 a177_104c望立談之間。感孚聖衷。而臣之入達前席。出奏章疏。凡幾遭矣。譬若以石投水。以筳叩鐘。千般苦辭。徒爲一塲之空談。雖閱歲爭執。果何益哉。盖臣之所執者。亘天亘地之大經大法。而殿下之心。旣已係着於區區慈愛之偏。微臣陳腐之言。無以捄殿下先入之病。此所以多言而愈不合也。子路有言曰未同而言。觀其色赧赧然。今上下之心若是不同。則雖欲苟合。而終不可得。只取身名之僇辱矣。其何望展布心力。以少補國事哉。萬死孤臣。餘生無幾。如天之德。報答無階。中夜思之。心膓如割。今殿下又以追 a177_104d報先朝之義。勉責於臣。奉讀以還。不覺失聲長號。噫。臣以先朝舊物。經歷禍變。保全性命。得至今日。則欲效其尺寸。以報聖渥之萬一者。非實錄一事。更無他矣。而今臣永訣明時。已不可與聞於撰修之役。撫躬自悼。忽忽忘生。殿下每以汗靑之無日。屢軫聖慮。亟宜回授可堪之人。以責其效。不當虗付於必不可進之臣。一任其遷就而莫之恤也。臣慢命負國。罪戾如山。殿下赫發威令。勘之以當施之律。則斥罷竄謫。固所甘心。倘殿下特憐簪履之舊。乃欲以禮進退。解臣重負。俾得優遊田里。則臣 a177_105a生榮死寧。更無餘憾。惟聖明之垂憐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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