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동리지의 국동은 공주공파로 16세 諱 堥(질 그릇 무), 공주목사를 지낸 분을 중심으로 11세 이후의 선영이 자리 한 마을로 총리 하신 분의 선영 이기도 하다. 이 글쓴 이도 나서 20년간 산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 쟈세한 것은 아니나 참고 할 것도 있다. 다음 기재~
家乘 : 迎/延日鄭氏 /公州市 灘川面 菊洞里 菊洞.
〈公州 牧使公 (諱 堥)/ 後孫 得姓 序文〉
原文
誣按 新羅始祖 赫居世時 事蹟 則 立國於 慶州之地而時 有六部 大人 各自 降生爲 赫居世 佐命功臣, 珍支部 大人 諱 지백호(智伯虎)公 降于. 與花山 諸部大人 同居 慶州府 東十里 楊山亭 輔翼王室 共立, 太祖 盖六部大人
乘運氣化 誕降 靈墨 / (靈黙) 本無姓氏且 共存創業 位高一等 坆各, 賜姓氏 似酬(勳)勞而 지백호(智伯虎)公 得姓 鄭氏 爲東國 諸鄭氏 曼祖. 其 餘五部 大人 得姓 (李 金 崔 裵 薛), 六姓 究 其本貫 皆是 慶州而 我鄭氏 則 至後孫 諱 宜卿 高麗 開國之 功爲新羅 不服... ,
家乘 鄭氏 已上 長勢 姓貫 云稱 子孫仍爲 米邑坆 長勢縣 韓 功移封以 統合 三 後孫 子輿迎日 又 至迎日 仍貫 坆慶處... ,
가승 : 영/연일정씨 /공주시 탄천면 국동리 국동.
〈공주 목사공 (휘 무)/ 후손 득성 서문〉
음역;
무안 신라시조 혁거세시 사적 칙 립국어 경주지지이시 유륙부 대인 각자 강생위 혁거세 좌명공신, 진지부 대인 휘 지백호(智伯虎)공 강우. 여화산 제부대인 동거 경주부 동십리 양산정 보익왕실 공립, 태조 개륙부대인
승운기화 탄강 령묵 / (=靈黙) 본무성씨차 공존창업 위고일등 매각, 사성씨 사수(勳)로이 지백호(智伯虎)공 득성 정씨 위동국 제정씨 만조. 기 여오부 대인 득성 (이 김 최 배 설), 륙성 구 기본관 개시 경주이 아정씨 칙 지후손 휘 의경 고려 개국지 공위신라 불복... ,
가승 정씨 이상 장세 성관 운칭 자손잉위 미읍매 장세현 한 공이봉이 통합 삼 후손 자여영일 우 지영일 잉관 매경처... ,
해석 ; 정씨 감무공파> 문정공파>정원공파>판결사공파>난년진사공의 후손으로, 공주 목사공 후손 4대손 20세 埉(협)이 쓴 목사공 16세 堥의 가승 중 정씨시조에 관한 간단한 내용의 글로, 선산이 있는 국동리 국동의 里誌에 실린 글이다. 다음은 내용,
전설 같은 이야기로, 신라시조 혁거세 때의 사적에서, 경주지역에 나라가 세월 질 때, 6부대인(부장)이 있어, 스스로 이 지역에 강임하여 각자 대인의 위치에 있으면서, 혁거세를 돕는 좌명공신들 중에 화산진지부의 대인 지백호가 있었다.
모든 6대인들은 경주부 동쪽 십리 양산촌에 영적인 과업을 안고 운명적으로 왕실을 도와 나라를 세웠는데, 성과본이 없자 나라에 1등 공신의 공이 있으므로 공훈의 보답으로 각자 사성을 받게 되었다. 지백호공은 동국의 모든정씨의 시조로 되고 다른 5대인도 이, 김, 최, 배, 설씨의 시조가 되었다. 모든 본관이 여기 경주에서 비롯 한 것이다. 우리 정씨는 이후 후손 宜卿(의경)으로 이어 고려로 퍼져나간 것 이다... ,
가승의 정씨는 위에 적은 바로 이와 같이 씨족의 성장세력과 성과본이 생겨 일컬어지고, 삼국통일 때는 공신으로 봉하여지고 자손이 영일에 살아서 영일이란 본관이 되고 선조의 묘역에 우리 정씨의 기록이 있는 것이다... ,
공주공 자손계 가승/씨보.
諱 堥의 선영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