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강을 건너 순례의 품에
- 4월 7일
아침 7시 30분, 안나와 나는 숙소 문을 나섰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공기는 차갑고도 정겨웠다.
우리가 머물 호텔에 짐을 맡기고 늙은 나무들이 시간을 지키는 알라메다 중앙공원을 걸으며,
나는 내 안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고 비로소 순례자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이 공원은 1952년, 스페인 총독 루이스 데벨라스코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알라메다라는 말은
포플러 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귀족과 상류층을 위한 산책 공간이었으나
멕시코 독립 전쟁 이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식민지시대에심어진 나무들은 이제 시민 모두의 쉼이 되었다.
알라메다 중앙공원을 걸으며 낯선 풍경 속에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편안함을 느꼈다.
햇살과 나무 그늘 사이를 지나며, 우리 동네 공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도 공원이 많이 있고 조경이 잘되어 있어, 충분한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오랜 시간의 깊이가 더해진 여유가 있고, 우리의 공원은 정돈된 따뜻함이 있다.
서로 다른 풍경이지만, 결국 사람을 쉬게 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여정은 멕시코 예술의 정점이라 불리는 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으로 이어졌다.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하얀 대리석 건물 위로 솟은 황금빛 돔이었다.
헝가리 건축가의 손끝에서 탄생한돔은 해의 각도에 따라 오렌지빛에서 찬란한 황금색으로 시시
각각 옷을 갈아입으며, 마치 멕시코의 태양을 머금은 거대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카라라 대리석으로 빚어낸 순백의 외관은 아르누보의 우아함을 뽐낸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궁전이 건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매년 조금씩 지반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는 사
실은, 마치 위대한 예술이 짊어져야 할 숙명적인 무게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 유명한 황금색 돔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맞은편 Sears(시어즈)백화점 8층 카페로 가려했다.
그곳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궁전의 지붕을 내려다보며 잠시 후 청담동 성당 순례팀과 합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예상 치 못한 변수를 선물로 내어준다.
공교롭게도 궁전 앞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높게 쳐진 가림막은 우리가 꿈꿨던 시어즈백화점 카페에서의 조망을
가로막고있었다. 잠시 아쉬움이 스쳤지만, 우리는 곧 발길을 돌려 가림막 너머로 고개를 내민
돔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길 위의 명당을 찾아 나섰다.
오히려 카페의 안락한 의자보다 길 위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바라본 궁전은 품격있고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쉬움을 달래며 셔터를 눌렀다.
렌즈 속에 담긴 황금빛 돔은 공사장의 소음조차 예술의 한 과정인 양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완벽한 풍경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가림막 덕분에 우리는 길위에서 멕시코의 공기를 더 깊이 들이마시며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줄 수 있었다.
어쩌면 여행이란 완벽한 조망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가려진 풍경 앞에서도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작은
위로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길 위에서 특별한 사진 몇 장을 건졌다.
예술궁전은 소칼로 광장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멕시코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이다.
예술궁전의 메인홀은멕시코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무대이며, 멕시코 민속발레단(BalletFolklórico de México)의 공연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상설 공연으로, 멕시코 전역의 전통춤과 음악을 화려한 무대 연출과 함께 선보인다.
또한 멕시코 국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와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오페라 공연이 열리고 멕시코 최고의 음악가들
이 소속되어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하며 격조 높은 공연이 펼쳐진다.
건물 내부에 두 개의 주요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2층과 3층에 걸쳐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
멕시코 벽화 거장들의 상설 벽화가 전시되어 있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특별 기획전(피카소, 칸딘스키 등)이 수시로 열린다고 한다.
멕시코에서 가장 명예로운 공간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의 중요한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린다. 멕시코의 위대한 예술가
나 문학가(예: 프리다 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가 타계했을때, 국민들이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이곳에 유해를 안치하고 추모식이 열렸다고 한다. 멕시코 문화예술계의 가장 권
위 있는 시상식이 이곳에서 개최되며 국립 예술원(INBAL) 산하의 교육 기관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예술가 양성을 위한 로그램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극장은 소칼로 광장 동쪽에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멕시코 역사와 정치의 중심부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수많은 역사의 파고를 견딘 이곳은 우리로 말하면 경복궁의 장중함과
광화문 광장의 뜨거운 함성이 함께 깃든 공간처럼 다가왔다. 매년 9월이면 이곳 발코니에서 울려 퍼진다는
‘비바 멕시코’는 마치 보신각의 종소리가 온 나라의 새벽을 깨우듯 멕시코인들의 가슴 속에 자유의 불꽃을 지피는
신호탄이리라.
우리나라로 치면 가장 엄숙한 정치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가장 뜨거운 축제의 장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멕시코인들에게 이곳은 정부 건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와 독립 의지를
확인하는 장소일 것이다.
- 푸른 기억의 집, 카사 데 로스 아줄레호스(Casa de los Azulejos)
18세기 오리사바 백작 부인의 저택이었다는 타일의 집으로갔다. 외벽 전체를 빼곡하게 덮은 파란색과 흰색의 탈라베라
타일은 스페인의 식민 역사와 원주민의 토착 문화가 교차하며빚어낸 푸른 보석 같았다.
이 타일들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방탕한 생활을하던 백작의 아들에게 아버지가 “너는 절대로 타일로 집을 짓
지 못할 것(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통을 쳤고, 이에 자극받은아들이 훗날 이 화려한 타일 저택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오기 섞인 다짐 때문일까, 빛을 받을 때마다 타일은 살아움직이는 기억처럼 일렁였다. 지금은 레스토랑이 된 그곳 중정
에 앉아 안나와 나는 전통 빵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잠시 여행의 여유를 만끽했다.
- 벽 앞에 멈춘 간절함, 디에고 리베라를 향한 갈망
가장 아픈 순간은 멕시코 교육부 앞에서였다. 건물을 가득메운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가 124점이 넘게 있는 곳이다.
혁명의 역사와 민중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그 위대한 예술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는 문을 넘지 못했다.
오늘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에 단단하고 무심한 벽 앞에서 작가의 간절함은 무력했다.
“죽기 전에 꼭 보고 싶다.”는 애절한 외침조차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
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속상함은 이내 서글픈 분노로 번져 한동안 발걸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 황금빛 선율의 우체국, 코레오스 데 메히코(Palacio de Correos)
그러나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이어 발길이 닿은 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체국이라 불리는 ‘코레오스 데 메히코’였
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황금빛 청동 계단과 정교한철제 난간은 한 편의 예술작품이었다. 영화 ‘코코’에서 사후 세
계의 화려한 건물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계단이다.
놀라운 것은 이곳이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안부를 실어 나르는 살아있는 우체국이라는 점이다.
제복을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사람들은 익숙하게 줄을 서서 편지를 부친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과 현재의 소박한 일상이 교차하는 풍경. 편지 한 통에 마음을 담아 보내던 시절의 낭만
이 황금빛 계단 위로 겹쳐 보였다.
- 예술궁전에서의 반전, 그리고 위로
다시 찾은 예술궁전에서는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니어라는 이유로 허락된 무료 관람. 조금 전, 교육부에서 거절당했던 분노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곳은 나를 따뜻하게 환대
해주었다. 무료라서가 아니라, 나의 나이와 시간을 존중받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예술궁전 내부에는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대표 화가들의 벽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운 역사의 고통과 희망의 메시지.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가로막혔던 서운
함은 사라지고 내 안에는 다시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1933년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레닌을 그렸다는 이유로 무참히 파괴되었던 그 불운의 걸작이 이곳에서 ‘우주의 주인인 남
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해 있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거부당한 예술가의 신념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더 강렬하고
당당하게 레닌의 초상을 그려 넣은 채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웃고 있었다.
나는 그 벽화 앞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되었다. 예술은 때로 황금빛 돔처럼 화려하게 우리를 위로하지만,
때로는 리베라의 벽화처럼 권력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며 진실을 증언하기도 한다.
어제 도서관에서 지식의 방주를 타고 항해했던 나의 호기심은, 이제 이곳 예술 궁전의 황금빛 돔 아래에서 역사의 파도를
만나 비로소 정박했다. 웅장한 대리석 기둥 사이로 쏟아지는아르데코 조명의 은은한 빛을 받으며, 나는 지식을 쌓는 법보
다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을 지키는 예술의 용기임을 깨닫는다.
오늘 마주한 황금빛 돔의 잔상은 내 여행 가방 속에 영원히박제되어, 언젠가 또 다른 글의 씨앗으로 발아할 것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넘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영원을 저장하고 어떻게 진실과 조우하는지를
가르쳐준 눈부신 날이었다.
첫댓글 여행은 은총이고 기대와 기쁨과 감사의 표징이지요. 다녀오신 곳 마다~~ 그 역사와 귀중한 이야기들은 보는 이와 듣는 이에게 크고
귀중한 선물이고 기쁨이며 감사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쁘고 밝은 마음과 눈으로 올려주신 사진과 글을 잘 읽고 갑니다.
자매님,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나와 함께라서 더욱 즐겁고 든든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