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을 볼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강을 덮은 콘크리트 구조물 위를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니거나 걸어다닐 뿐이다'.
하루종일 차량과 인파로 북적이는 부산 서면 영광도서 앞 거리.
일명 복개천 도로라고도 불리는 롯데백화점과 서면시장 사이의 널찍한 이면도로.
약속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는 이들 지역은 부산시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마 한두 번쯤 가보지 않은 시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도로 아래로 동천의 주요 지류인 부전천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발원지 일부 제외하고 대부분 복개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 일대를 지나는 동천과 주요 지류 대부분은 이처럼 실제 눈으로 볼수 없다.
대부분 복개(콘크리트 등으로 덮는 것)가 이뤄져 접근이 불가능하다.
자동차가 다니는 간선도로나 주차장 등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들은 매일 강 위를 지나지만 볼수 없으니, 잊혀진 강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29일 부산시에 따르면 백양산 정상 부근에서 발원한 동천 본류는 당감 삼익아파트앞과 진양삼거리, 부산도시공사 앞을 거쳐 범천동 광무교까지 복개돼 있다.
총 연장 8.77㎞ 가운데 전체의 60.4%가 덮혀진 상태다.
동천 본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부산시 자료 분석 결과 부전천 가야천 호계천 등의 주요 지류는 복개율 100%다.
동천과 서면 포스코 더샵 아파트 근처에서 전포천도 복개율이 90%를 넘는다.
상류의 발원지 근처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복개된 것이다.
동천은 본류와 지류가 시내 중심가인 서면과 범일동 등에서 만난다.
복잡한 시내를 관통하다보니 교통난 등을 이유로 예외없이 복개의 '운명'을 맞은 것이다.
시민들이 동천을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범천동 광무교에서 동천이 끝나는 북항 입구까지
약 2㎞ 정도인 셈이다.
정한춘 부산진구 창조도시국장은 "동천과 지류들은 대부분 복개돼 도로나 주차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시민들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비록 강 위지만 미세한 변화도
부산 시내 하천의 복개 공사는 대부분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걸쳐 진행됐다.
하지만 동천과 동천 지류의 정확한 복개 공사 연도 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취재진이 부산시와 부산진구청에 여러 차례 문의했으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답만 돌아왔다.
정확한 공사 진행 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공사 허가 대장이 있어야 하는데 보존 연한(10년)이 지나
대부분 폐기 처분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구간별로 나눠 시차를 두고 공사를 하다보니 구체적인 시기를 파악하기 더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천의 너비나 공사 규모에 따라 일부는 시에서 나머지는 관할 구청에서 시행했다.
다만 시설물 목록에 최종 준공 연도만 남아 있을 정도다.
여기에 따르면 전포천과 부전천의 복개공사는 각각 1980년에 준공됐고, 동천과 가야천은 각각 1986년과 1987년에 마지막 복개 공사가 끝났다.
호계천은 1993년까지 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돼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1970년대 급격한 개발 물결에 전국의 도심 하천이 복개되는데, 동천과 그 지류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천은 콘크리트 바닥으로 덮힌 이후 시민들에게는 사실상 잊힌 존재가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비록 복개 구조물 위에서이긴 하지만 미세한 변화도 감지된다.
서면 영광도서 앞에서 부전천을 따라 동해남부선 굴다리까지 550m 구간을 관광테마거리로 조성하는 사업이
그것이다.
국비와 시비를 합쳐 70억 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보행로를 넓히고 여기에 실개천 등 여가·관광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골자다.
아래에 부전천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도 사업 목적 가운데 하나다.
2010년부터 시장된 이 공사는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갑선 부산시 하천관리과장은 "궁극적인 동천 복원을 위해서는 복개된 구간을 걷어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아직은 엄두를 못내 도로 위에서라도 물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복개구간 매년 1, 2회 준설
- 해수 방류로 오염 줄었지만 수질 개선 근본적 해법 안돼
- 콘크리트 걷어내는 결단 필요
동천 관리는 시설물의 유지·보수 등 '안전 관리'와 '수질 관리'로 나뉜다.
안전 관리의 경우 부산시 하천관리과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실제 현장 업무는 시 산하 건설안전시험사업소와 부산진구청이 나눠 처리하고 있다.
동천 본류와 지류 가운데 하천 폭이 25m를 넘는 복개 구조물의 경우 건설안전시험사업소가 유지·보수 업무를
맡고 있으며, 나머지는 부산진구청이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천관리법과 1995년부터 시행된 시설물안전관리법 등을 주된 근거로 하고 있다.
시 건설안전시험사업소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정밀 안전진단을 하고 있으며, 아직은 복개 구조물에서 중대 하자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복개 구간에 대한 준설 등의 작업도 안전 관리의 일환이다. 우수기에 하천 바닥에 퇴적물이 쌓일 경우 물의 흐름을 막고, 구조물의 안전에 지장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동천의 복개 구간은 매년 한 두차례 준설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문명호 부산진구 하수계장은 "집중 호우 뒤에는 쓰레기를 비롯한 다양한 퇴적물이 쌓이기 때문에 준설과 청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질 관리는 환경 관련 부서에서 별도로 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의 경우 우수와 생활하수를 분리하는 분리 관거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수질 관리는 어느 정도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차집 관로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수량이 급격히 불어나면 손을 쓸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2009년부터는 북항에서 해수를 하루 5만t씩 끌어와 광무교 부근에서 방류하는 수질 개선 사업을 통해 꽤 효과를 보고 있다.
광무교 아래 미복개 구간에서는 청소선이 투입돼 수시로 청소도 하고 있다.
동구 범일동 주민 박모(58) 씨는
"얼마 전만 해도 동천 근처만 오면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질 관리는 복개한 상태에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양진우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면 중심부 일부라도 복개 콘크리트는 걷어내는 결단없이 근본적인 수질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 교통난·환경문제 동시 해결
- 1970년대엔 동천 복개가 대안
- 공사장 무너져 인부 다치기도
"당시만 하더라도 시내 하천은 복개하는 것이 한마디로 대세였습니다."
동천 복개 공사에 참여했던 전직 부산시 공무원 김모(72) 씨는 "1970년대는 부산시 지하철이 막 건설되던 시기였다. 지하철 공사로 인한 교통난을 덜기 위해서는 대체 도로가 반드시 필요했고, 동천을 비롯한 지류 하천 복개가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70년대는 환경보다는 개발 논리가 앞장서던 시기였다.
급격한 개발로 인해 시내 하천은 하나같이 오염 물질로 몸살을 앓았다.
김 씨는 "그 시절에는 연탄재를 비롯한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근처 하천에 버릴 때였다. 당연히 냄새가 진동을 할 때였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하천을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는 복개 공사는 교통난과 환경오염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우선 눈에 안보이니 깨끗해진 것이지요."
공사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나 에피소드도 일부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공사는 하중 등을 고려해 과학적으로 설계·시공됐지만 일부는 예산 부족해 석축 위에다 그냥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곳도 더러 있었다고 실토했다.
부전천의 경우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공사 중에 콘크리트 구조물 일부가 무너져 인부들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김 씨는 전했다.
이로 인해 현장 감독 업무를 맡고 있던 시 공무원이 부실 시공의 책임을 지고 사법처리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요즘은 복개 구간을 걷어내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