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땀이 차면 질컥거리고, 뛰어가다 보면 훌떡 벗겨지는 검정고무신. 옛날 어린이들은 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어보는 것이 큰 소원이었다. 물론 검정고무신이 편리한 때도 있었다. 때가 묻어도 표가 안 나고, 汚物(오물)이 묻으면 빨래 비누를 묻힌 수세미나 짚으로 닦아내고 나서 물로 헹구면 그만이었다.
물이 새지 않는 고무신은 아이들에겐 좋은 장난감이기도 했다. 냇가에 나가 고기를 잡거나, 흙장난할 때 흙이나 모래를 퍼담아 부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멱을 감을 때는 바가지 대신 물을 퍼서 끼얹는 데 쓸 수도 있었다.
흰색 고무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고무신이 검정색이었던 것은 廢타이어나 튜브 등을 主원료로 한 재생고무를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무신에 구멍이 나거나 해지면 고무조각으로 때워서 계속 신고 다녔다. 더 이상 때워서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고무신이 낡으면, 아이들은 고무신을 고물장수에게 가져가 엿이나 강냉이 튀긴 것과 바꿔 먹곤 했다.
지난 날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鄕愁(향수) 때문일까? 아니면 신기에 편리하고 가볍기 때문일까? 요즘도 집 안에서 마당을 거닐 때 신는 신발로 검정고무신을 애용하는 나이 드신 분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다

요강
어릴 때 밤중에 바깥의 뒷간을 가려면 부모님이나 형들을 깨워서 동행을 했다. 말로만 듣던 뒷간 귀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러한 무서움에서 벗어나고 한겨울 한밤중에 덜덜 떨면서 멀리 가지 않고도 크고 작은 일을 방안에서 볼 수 있던 편리한 도구가 요강이다.
예부터 상류층이건 서민층이건 요강은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 도구여서 혼수품 준비에 놋요강과 놋대야가 반드시 끼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요강을 만드는 재료도 다양해져서 도기나 자기, 유기 외에 오동나무에 옻칠을 하거나 쇠가죽에 기름을 먹인 것도 있었다.
최근세에 와서 깨지지 않고 세척하기 좋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요강이 등장했다. 아직도 한옥이나 시골집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요강을 부시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참방짜 수저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우리 어머니들은 장농이나 찬장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유기(鍮器)를 꺼내 기와 빻은 가루를 짚에 묻혀 힘껏 닦았다. 이렇게 해서 시퍼런 녹도 제거하고 유기 본래의 황금색 광채를 되살려 냈다. 유기 그릇은 銅(동)과 朱錫(주석)을 10대 3 정도의 비율로 섞어 만든 놋쇠가 원료. 놋쇠를 두들기고 늘리고 다듬어서 그릇 형태를 만드는 「방짜 제작법」과 「퉁짜 유기」라고 해서 鑄物(주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주물 제작법」이 있다.
良大鍮器(양대유기)라고도 하는 방짜 유기를 북한에서는 「양대」, 남한에서는 「방짜」라 부르고 있다. 유기는 견고할 뿐 아니라 모양이 정교하고 광채가 예뻐 대야, 그릇, 수저 등은 혼수감으로 빠지지 않았다. 일제시대 전쟁물자로 강제 공출되면서 수요가 줄어든 유기는 광복 후 한때 유행하는 듯 했으나 6ㆍ25 전쟁 후 집집마다 연탄을 때고 양은과 스테인레스 그릇이 나오면서 거의 사라졌다

납활자
납으로 구워 낸 네모난 납 活字를 골라 組版(조판)한 후 잉크를 묻혀서 종이에 압력을 가해 찍어 내는 활판인쇄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금속활자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활판인쇄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해 일부러 명함이나 간단한 서류 양식을 납활자로 인쇄해서 쓰고 있는 이들도 있다.
1884년(고종 21) 3월 廣印社(광인사)라는 민간 출판사가 일본으로부터 활판기와 납활자를 도입하여, 農政撮要(농정촬요)와 忠孝經集註合璧(충효경집주합벽) 등 농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책을 발간한 것이 우리나라 활판인쇄의 시작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신문제작에서는 납활자가 필수였다. 1990년 초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라는 전산화된 신문제작 공정이 도입되면서 납활자를 고르고 조판을 하고, 다시 지형을 떠서 鉛版(연판)을 만들어 신문을 찍어 내던 활판인쇄 시대가 마감됐다.
인쇄소 밀집지역인 서울 중구 충무로 뒷골목에 가면 아직까지 문을 닫지 않은 활판인쇄소가 두어군데 남아 있다. 변하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지만, 이런 인쇄소가 하나라도 살아남아 활판인쇄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도장
圖章(도장) 대신 서명이 보편화하면서 개인, 단체, 관직 등의 이름을 새긴 木圖章이 보기 힘들어졌다. 말이나 글로 하는 약속의 최종 완결편이라고 할까. 계약서 등 각종 서류에 圖章을 찍는 것은 「법이 보장하는 약속」이었다. 아직 印鑑(인감)제도가 있어서 圖章은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명에 떠밀린 木圖章은 후미진 서랍 속에서 나뒹굴고 있다.
木圖章을 새겨 주던 도장집도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다. 도장 파는 기술도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고 있다. 컴퓨터에 입력된 글자 모양에 따라 기계가 정교하게 도장을 파주는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아직 보급이 안 된 중소도시에나 가야 木圖章 집을 볼 수 있다
珠板(주판)
선생님이 주문처럼 외우는 숫자를 듣고 학생들은 주판알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주판셈하기에 바쁘다. 재빠르게 주판알을 튕기며 셈을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얼른 주판을 놓지 못해 답을 적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상업학교를 나와 은행에 입사하려면 주산 급수를 따야 했기에 상업학교 학생에게 주판은 필수였다.
고대 중국으로부터 전래됐다는 加減乘除(가감승제)를 손쉽게 할 수 있는 계산 도구인 주판은 계산기나 컴퓨터가 보급되기 前까지만 해도 은행에서는 없어서 안 될 필수 도구였다. 돈을 주고받는 책상머리에는 늘 손때 묻은 주판이 놓여 있었다. 지금도 華僑(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에 가면 알이 굵은 주판으로 음식값을 계산해서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라져 가던 주판은 요즘 다시 수학실력도 길러 주고 민첩한 손동작을 통해서 지능도 계발해 주는 교재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만능 전자계산기도 좋지만 노인들의 치매나 지능 저하를 막는 도구로 주판을 계속 사용하면 어떨까. 어느 나이 많은 임원의 책상에 늘 놓여 있던 주판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메주
가정마다 겨우내 먹을 김장김치를 담그고 나면 이듬해 먹을 간장과 된장·고추장 담글 준비를 한다. 입동을 전후해서 간장과 된장의 主원료가 되는 메주를 쑨다. 먼저 불린 메주콩을 무르게 삶아서 절구에 찧은 다음, 네모나게 만들어 짚으로 묶어 하얀 곰팡이가 피도록 겨우내 안방 선반이나 천장 밑에 매달아 건조시킨다. 메주 띄우는 구수한 냄새가 겨울 내내 방 안 가득히 풍긴다. 이처럼 메주를 말려 발효시키는 띄우기를 거쳐야 醬(장)의 재료가 된다. 음력 정월 길일을 택해 깨끗한 물에 굵은소금을 풀어 체에 밭친 다음 40여 일간 이 소금물에 메주를 담가두면 맛과 영양분이 빠져 나온다. 이때 나온 검붉은 액체를 다린 것이 간장이고, 건져낸 메주에 소금을 더 넣어 주물러 만든 것이 된장이다. 숙성기간이 오래 걸리는 된장과 달리 속성으로 띄워 먹는 청국장도 건강식품으로 인기다. 예로부터 벌에 쏘였거나 상처난 데에 된장을 호박잎에 펴 발라서 동여매 놓으면 2~3일 후 나았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콩을 발효한 식품이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콩 바람」이 불고 있다.
김치 광
겨우내 먹을 양식인 김치가 얼지 않도록 마당 한쪽에 김칫독을 묻는다. 그 위에 짚으로 바람막이나 눈막이를 짓는다. 김치냉장고가 보급되기 前까지만 해도 중부지역 이북의 살림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김장을 할 때 남정네들은 장독대 근처 양지 바른 곳에 땅을 파고 김칫독을 묻었다. 김치를 항아리에 넣기 전에 고춧대나 고추씨, 또는 닥종이를 넣고 태워 김칫독을 깨끗이 소독한다. 한겨울에도 땅속은 김치가 알맞게 익는 영상 5도에서 10도를 유지하고 있어 제 맛을 내는 데 그만이다. 옛 사람들은 김치 광에서 겨울을 난, 시금털털한 묵은 김치도 귀히 여겨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김치 광은 참새들의 놀이터가 된다.
나룻배
「나는 나루ㅅ배,/당신은 행인./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읍니다./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감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깁흐나 엿흐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감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낫가지 당신을 기다립고 잇슴니다./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 보지도 안코 가심니다 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아러요./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 감니다./나는 나루ㅅ배,/당신은 행인」<韓龍雲,「나룻배와 행인」> 강을 끼고 있는 고장의 주민들에게는 필수적인 교통 수단이었던 나룻배는 곳곳에 다리가 놓이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나룻배는 강원도나 경상남도 산골 오지 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배 건너요~』 강 건너편의 외나무 노를 젓는 뱃사공을 부르면 울려 퍼지던 메아리도 이젠 들을 수 없다.
창호지 문
햇빛이 창호지 문을 타고 온 방을 환하게 비치는 온돌방. 이불 속에 묻어둔 밥그릇의 온기가 발가락 끝에 전해오는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숙제를 했다. 지금처럼 유리가 흔치 않던 시절 창문이나 방문에는 창호지를 발랐다. 창호지 문은 採光(채광)과 通風(통풍)이 잘 됐고, 햇빛에 비치는 창살 무늬에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매년 가을 누렇게 변한 창호지를 떼어 내고 다시 창호지를 바를 때면, 아이들은 갓 피어난 코스모스나 국화 꽃잎을 따다가 창호지 사이에 끼웠다.

함진아비(일명 함재비)
어둠이 내린 초저녁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函(함) 사세요』 아파트 숲속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어쩌다 들려오면 동네 꼬마들이 신기한 듯 몰려나와 낄낄거리며 기웃거린다. 전통혼례 절차 가운데 하나로 식을 올리기 전에 신랑의 四柱와 청혼서, 분홍 저고리감과 가락지 1쌍을 禮緞(예단)으로 마련하여 사주함에 넣어 신부집에 보낸다. 신랑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함을 진 친구들로 구성된 「함재비」는 함을 그냥 신부집에 내려 놓는 것이 아니라 신부집 앞에서 대문으로 들어서기까지 길에다 돈을 깔게 한다. 이처럼 함값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관습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 신부집 앞에서 함재비들이 과도한 함값을 요구하다가 신부집 친인척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신부 친구들의 勸酒(권주)와 아양에 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이날 함재비를 맞아들였던 신부 친구들도 질세라 함재비 측에 「꽃값」을 요구했다. 혼례식을 간소화하다 보니 초저녁 골목길에 마주치던 婚前(혼전) 절차인 「함」을 보내고 맞아들이는 함재비 행렬은 이젠 시골에서도 마주치기 힘들다.
꽈리불기
가을이면 담장 밑에 줄지어 자란 꽈리 가지에 꽃받침이 커지면서 열매를 완전히 감싼 짙은 오렌지색의 꽈리 열매가 꽃보다 더 아름답게 달린다. 꽈리는 가지科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잘 익은 꽈리 열매를 손으로 주물러 말랑말랑하게 만든 다음 바늘이나 성냥개비로 꼭지를 찔러서 속에 가득찬 씨를 뽑아낸다. 속이 빈 꽈리 열매에 바람을 불어넣은 다음 입에 넣고 혀와 이와 잇몸으로 가볍게 눌러 소리낸다. 「꽈르르 꼬르르」 길을 가면서 꽈리를 입에 넣고 연신 불어대던 이런 꽈리 소리는 마치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을 때 내는 소리와 흡사하다 하여 어른들은 꽈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고 꾸지람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꽈리불기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실뜨기 등과 함께 10代 소녀들의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다. 한때 천연 꽈리 대신 고무로 만든 인공 꽈리가 등장하기도 했으나 1970년대 이후 꽈리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추억의 소리가 됐다.
엿장수
엿장수의 가위소리는 애들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철커덕 척척 철커덕 척척척척…”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 치는 소리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다 나와 뒤를 따릅니다. 그러면 엿장수 아저씨는 더 흥이 나서 가위를 칩니다. 엿이 먹고 싶어서 입에서는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무얼 가지고 엿을 바꿔먹나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엿 장단으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소리를 지릅니다. “엿이 왔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이 왔어요. 헌 고무신이나 빈 병삽니다. 고철도 삽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구수한 목소리로 흥을 돋우는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별의 별 것을 다 갖고 나옵니다. 놋그릇 깨진 것, 요강, 뚫어져서 못 쓰게 된 양은 냄비, 헌 고무신, 막 소주 됫병. 머리카락, 산에서 주운 탄피…. 그러면 엿장수 아저씨는 끌날 같이 생긴 도구를 대고 가위로 톡톡 치면서 엿판에서 엿을 끊어냅니다. 사람들이 ‘이게 뭐냐’고 더 달라고 하면 ‘에라 인심이다’ 하고 조금 더 떼 줍니다. 완전 엿장수 마음대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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