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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이야기
이 윤 자
전동차 안에서 낯선 지역의 노선도를 열심히 확인하고 있다. 상인 한 사람이 닦아와 류머티즘 관절염 특효약이라며 사라고 권한다. 속으로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사람을 볼 줄 모르는군! 별 꼴이야. 하며 ‘나 관절염 괜찮은데요.’ 하니 상인은 내 발로 시선을 옮기며, ‘흥 완전 고장 난 주제에’ 하는 눈초리이다. 그렇지, 새벽 출발할 때 비가 와서 번쩍거리는 구두는 가방에 잘 모시고 청소할 때나 신는 비신을 신고 있었다. 관절염의 환자 신발이다. 첫째 손님은 이렇게 통과시켰다. 전동차의 노선도를 열심히 확인하고 있는 중 또 한 방문객이 나를 맞아준다. ‘저~~~’ ‘말씀하세요’ 재촉을 하니 돈을 조금만 주세요~~~’ 아주 겸손하고 밉지 않게 사정한다. 아! 그러세요. 시원하게 잔돈이 있는 지갑에서 천 원을 꺼내 주는 것 기분 좋게 주웠다. 머뭇머뭇하며 더 겸손해진다. ‘저~~~ 아직까지 아침을 못 먹었어요.’ ‘네~~~ 주머니에 얼마나 있으세요?’ ‘하나도 없어요!’ ‘그럼 식대가 얼마입니까?’ ‘삼천이에요’ ‘삼천이면 잡수실 수 있어요?’ 삼천 원을 주어 보냈다. 경기도의 전동차 역사는 매우 복잡하여 안내 표지를 보아도 찾기 어렵고, 문의할 곳도 여의치 않았다. 처음 가보는 부평은 시간이 꽤 걸렸다. 지루하고 낯설어 계속 노선도를 보고 있었다. 난 우리 집 안방 호랑일 뿐이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 찾으세요?’ 하여 쳐다보니 전동차에서 만난 그 젊은이였다. 더 인상이 좋아 보였다. ‘덕분에 식사 잘 했어요!’ 하며 길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인천 토박인가 보다. 금방 조그만 베풂의 덕이 돌아왔다. 그 사람 덕에 차질 없이 목적지 예식장에 도착하였다. 친척들께 인사를 드리고, 큰 애와 만나기로 한 로비로 내려왔다. 깨끗한 정장의 잘 생긴 사나이가 웃으며 나에게 온다. 매너도 좋다. 내 가방을 받고 빨리 가서 비싼 커피를 사 들고 왔다. 이래저래 오늘 기분이 상쾌하다. 집에서 준비해온 십만 원을 건네주며 큰 아버지께 용돈으로 쓰시라고 드리며 인사하라고 당부하였다. 아들은 기분 좋게 대답 한다 ‘네 그렇게 하겠어요!’ ‘엄마는 돈도 흔해요. 쓸데없는 짓을 왜 하세요!’ 하지 않는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기쁘고 뿌듯하였다. 어제 머리를 잘 만져 놓았는데 거울을 보니 도저히 행사장의 차림새가 아니다. 나는 사진이 찍힐 가봐 살짝살짝 피해 다녔다. 아들 보고 인사를 드리고 빨리 가자고 하였다. 요즘 철도가 파업 중이라 차가 결행을 많이 하여 불편하다. 웬만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파업 같은 것은 없으면 좋겠다. 정말 파업을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들은 파업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새벽 6시에 출발하여 홍성에서 천안으로 천안에서 영등포로 다시 인천 행 전동차를 갈아타고 다녔다. 또 택시도 탔다. 11시 결혼식에 간신히 도착하였다. 올 때는 광명역에서 천안아산역으로 다시 홍성으로 오는 기차를 타고 왔다. 그나마 이어서이어서 좌석이 있는 것도 아들의 노력 때문이라 감사했다. 아들은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로 내가 모르는 사이 많이 성장해 있었다. 엄마를 유머로 웃기고 여유가 있는 표정이 매우 든든하였다. ‘차 안에서 졸지 마시고’하며 이것저것 주의사항이 많다. 주객이 전도된 순간이다. 역시 늙으면 자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느꼈다. 그동안은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해 왔는데 이제 곧 주도권을 넘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광명역까지 태워다 주고 커피 하나 쥐어주며 ‘말일경 애들 데리고 아버지 뵈러 갈게요’ 한다. 우리 모자는 작별을 하고 각자 돌아섰다. 피곤하지만 아들의 지시사항을 성실히 이행하였다. 집에 도착하였다. 집안이 번질번질하다. 작은 아들 네가 와서 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덕산 온천에 다녀 온 모양이다 그사이 며느리는 대청소와 빨래를 모두 해 놓았다. 유리창 청소, 등 갈기 등 모두 손을 봤다. 그리고는 시어머니에게 공치사를 한다. ‘어머니~~~ 오늘 행복하시겠어요. 며느리 잘 둬서 얼마나 좋으셔요.’ 이럴 때 인색할 필요가 있나? 고마워 모두 그럼 그럼 하며 통과시켰다. 쿵작 이 척척 맞는다. 앞으로는 올 적마다 청소당번을 한단다. 어쩐지 게으른 나의 약점을 며느리에게 들켜서 좀 부끄럽다.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며느리 손을 빌리다니, 굳이 변명을 하자만 좀 일찍 며느리는 배려를 할 줄 알고 바람직한 자세이니 모두 게으른 시어머니 덕이다. 이렇게 합리화시켰다. 아마 작은 아들도 마음이 행복하였을 것이다. 자기 아내가 시댁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순응해주니 마음이 편안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가족을 위하여 시어머니 역할을 잘 해야 된다는 다짐을 해본다. 갑자기 며느리의 깔깔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울린다. ‘어머니 윤서가요. 엄마는 윤서를 하고. 저는 할머니를 하겠대요.’ ‘윤서야~~~ 윤서야~~~’하며 할머니 흉내를 내고 있다며 웃는 것이다. 할머니 닮으면 안 되지, 가문의 발전을 위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진심으로 말했다. 카톡의 신호이다. 딸네가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이다. 미국을 여행 중 이란다. 어째 ‘벽속의 벽’ 울림소리도 들린다. 붉은 얼굴에 기분이 좋은 모습은 옛날의 미남 모습이 나타나 보기 좋다. ‘우와, 그때 그 날의 미남이네’ 대화는 거기서 끝이다. 삶의 앞에서 너무 완벽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과욕이라고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자식들과 협조로 ‘벽속의 벽’이 웬 만한 이 행복을 함께 누리도록 더 정진하겠다. 이 과제는 나의 의무이다. 가을 밤하늘의 별들은 반짝인다. 가을바람이 시원하다. [노스럽 프라이]는 가을의 뮈토스는 비극이라고 했다. 나에게 지금은 희극이다. 지금 가을은 겨울로 이행 중이다. 겨울은 아이러니와 풍자의 계절이고 우리 가정은 해학과 웃음이 넘치는 넘치는 소극장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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