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변주하다
김 건 화
고층 아파트 열린 이중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활이 켠다
괴기스런 톱 연주다
핏발 선 히드클리프*의 한쪽 눈이 열리고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 창을 열자
그 남자의 검은 외투자락
일그러진 광기로 펄럭인다
녹슨 애증의 쇠사슬을 질질 끌며
바람으로 떠도는 남자
얼마나 애절하면 죽어서도
바람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찾아 온 것일까
순도 높은 사랑을 꿈꾸며
빗물 먹은 책속에서 거침없이 걸어 나온 그 남자
무용총 벽화 속에 잠들어 있던 내게
정염으로 벼린 톱을 꺼내
천년 동안 자란 내 머리칼을
시베리아 벌목장 자작나무 베듯
한 움큼 자른다
바람은 휘몰아치다 언덕을 넘고
꿈결 밖으로 홀연히 나를 불러
데리고 온 폭우와 성난 바람을
장난감이라 던져준다
내 사랑 히드클리프는
터전을 잃은 짐승처럼
톱날 끝에서 울부짖는다
*히드클리프: 에밀리 브론테의 장편소설 ,<폭풍의 언덕> 속 인물
첫댓글 활이ㅡ 활을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