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터 부품 국산화에 큰 역할
미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기업인 몰렉스는 커넥터 전문기업으로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0만 종 이상의 커넥터를 생산하며 16개국 39개
의 제조시설과 15개국 25개의 R&D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
은 36억 달러, 세계시장 점유율은 8%에 달한다.
몰렉스는 마이크로제품, 커머셜제품, 통합제품 등 3개의 디비전을 중심
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중 마이크로제품 디비전에 속한 한국몰
렉스는 R&D는 물론 금형 제작, 생산, 영업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커넥터
개발 생산 기능을 확보하고 있다. 몰렉스 내에서도 몇 안 되는 종합개발
생산센터인 셈이다. “1984년 한국몰렉스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우리나
라에서 커넥터를 만들지 못했어요. 구형 커넥터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다 썼습니다. 글로벌 커넥터 생산기업 가운데 한국에 현
지 공장을 설립한 것은 몰렉스가 최초입니다.” 본사 2층의 대표이사실에
서 만난 이 대표는 “한국몰렉스는 일관 개발 생산 시스템과 가전용 커넥
터 생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초정밀 커넥터와 자동차용 커넥터를 생산하
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커넥터는 각종 전자제품과 기기의 정보 네트워킹을 위한 필수품이다. 전
기, 전자, 통신, 자동차 등 전 산업에 걸쳐 커넥터가 사용되지 않는 기계
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몰렉스에 제품으로 등록된 아이템은 무려
40만 종이며 생산 아이템만도 10만 종에 이른다.
커넥터의 중요성 갈수록 커져
“커넥터를 직접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이 대표는 다양한 커넥
터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박스 2개를 가져와 아주 작은 커넥터 하나를
들어보였다). 이런 조그만 커넥터는 1개에 몇 십 원에 불과합니다. 비싸
다고 해야 몇 백 원, 몇 천 원짜리이지만 커넥터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
지는 추세입니다.” 커넥터에 대한 이 대표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예전에 소리가 지지직거리던 라디오나 화면이 이상하게 나오던 TV 기
억나시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너무 닳아버린 커넥터 때문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령 최근에 생산되는 자동차들은 전자 전
장화되고 있는데, 자동차 내부에 컴퓨터가 들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자
동차 앞에 사람이 지나가면 경고음이 울리고 졸음운전을 하면 안전벨트
가 흔들리죠. 자동차의 이런 최첨단 기능들이 커넥터를 통해 작동이 되
는 겁니다. 안전 및 편의 기능들이 갈수록 발달함에 따라 그만큼 커넥터
의 쓰임새도 더 많아지고 중요성도 더 높아지고 있지요.
”
최근 들어서는 전자제품들이 슬림화되면서 커넥터도 더욱 얇아지고 있다. 휴대전화나 TV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대표는 “커넥터를 얇
고 작게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고객 회사로부터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고 말한다. “최근에는 두께가 0.7mm에 불과한 커넥터까지 개발했습니
다. 얼마나 얇은지 상상이 가시죠? 또 전기가 전달되는 간격을 피치 간
격이라고 하는데 이걸 0.4mm에서 0.3mm로, 또다시 0.25mm까지 좁
혀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기가 전달되는 간격을 거의 붙다시
피 만들어 고품질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최
첨단 커넥터를 개발함으로써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
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인회계사 출신의 독특한 이력
이 대표는 공인회계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경
영학과 4학년 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세동회계법인에서 7년간 근
무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다 보니 제조업체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졌
습니다. 회계사 일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생각
이 든 겁니다.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하기에 그런 쪽에서 기여하고픈 욕심도 있
었지요. 소박하게 말한다면 땀 흘리는 것을 좋아했고 현장 경험도 해 보
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몇 년 만 일하다 다시 (공인회계사로) 돌아가려고
했는데….(웃음)” 한국몰렉스에서 경리부장, 관리본부장 등을 거쳐 미국
시카고 몰렉스 본사 재무팀에서 10여 년간 일했다. 그리고 한국몰렉스
대표이사로 우리나라에 돌아온 것은 2007년 7월. 당시 한국몰렉스의 상
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했다. 산업구조가 변화하는 역동의 시기였지
만 상대적으로 한국몰렉스의 대응은 둔했다. 매출도 몇 년째 정체 상태
였다(이 대표는 “제때 캐치업을 못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냉장고, 세탁기, TV 등에서 휴대전화, 노트북, 모
니터, 평판 TV 등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때였습니다. 이런
변화의 속도에 맞춰 회사도 가속도를 내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이 대표는 미국에서 배운 선진 경
영 시스템을 한국몰렉스에 다양하게 적용했다. 국내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스피드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불필요한 업무 절차를 생략하고 담당자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하면서 사
업 속도는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저희 회사의 신제품 개발 기간
은 두세 달 정도였습니다. 제가 경영을 맡으면서 금형 샘플 제조나 생산
프로세스를 최소화해 늦어도 한 달 이내에 가능하도록 만들었지요.”
결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 커넥터 생
산업체들의 매출이 뒷걸음쳤지만 한국몰렉스만은 전년 수준을 유지했
다. 금융 위기를 지나면서는 연평균 성장률이 30%를 웃돈다.
지난해 1억불 수출탑 수상
지난해 매출은 2,300억 원. 2010년 1,800억 원에서 큰 폭으로 늘어난 수
치다. 올해 역시 순조로운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매출이 급증하면서 수출 실적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2006년 5천만불 수
출탑, 2007년 7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데 이어 4년 만인 지난해에는 1
억불 수출탑을 품에 안았다. 직수출 지역으로는 중국이 가장 많고 유럽
쪽 수출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 미국 등에 대한 수출도 꾸준하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세트업체에 대한 수출용 원자재 납품 물량도 급증하고 있
다. “한국몰렉스의 커넥터가 채택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경
쟁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라고 이 대표는 강조한다.
한국몰렉스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 세계 디자인 센터 및
엔지니어와의 유기적인 네트워크 등을 활용한 전략적인 기술 개발과 마
케팅 활동의 결과”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실제로 한국몰렉스의 기술 개발 투자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03
년 자체적으로 기술연구소를 출범시켰으며 매년 등록하는 특허만도 50
여 건에 달한다. “R&D의 경우 몰렉스의 글로벌 평균이 5%인데 한국몰
렉스는 7%나 됩니다. 고정자산 투자는 글로벌 평균이 7%인데 저희 회사
는 15%에 달하지요. 연구 개발 인력도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늘려나가
고 있습니다.
” 고객 지향적 사고는 한국몰렉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또 다른 축이다. “커넥터의 가격과 품질, 납기 등을 최대한 고객의 눈높
이에 맞추는 등 고객을 가장 우선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
아남는 길이 바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직원에게
도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요.”
한국몰렉스는 안산 및 광주에 3개의 공장과 안산, 구미, 광주에 3곳의
영업 사무소를 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3천만 달러를 추가 투자해 현재의
본사 맞은편에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연말에 가동 예정인 신공장은 아
파트 8층 높이 정도로, 반월공단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현
재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일부 전자부품 커넥터를 직접 생산, 5년간
2조 1천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연평균 540억 원의 수입 대체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안테나 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안테나
사업부의 한국 연구소를 구로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개소한 것. 몰렉스
의 안테나 사업부는 세계 2위 규모다. 한국 연구소는 모바일 및 통신 기
기에 적용되는 메인 안테나를 비롯해 최근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와이파
이, 블루투스, NFC 및 GPS 안테나 등 각종 안테나를 자체 개발하고 생
산은 상하이 공장에서 하게 된다.
경영 철학은 ‘불광불급(不狂不及)’
한국몰렉스는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에 이어 두 차
례 연속 모 언론사의 ‘일하기 좋은 기업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고 하면 좀 쑥스럽지요. 더욱더 일하기 좋은 기업
으로 만들라는 격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입직원과 면접을 할 때도
‘우리 회사는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기보다는 일하기 좋을 기업’이라고 말
합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일하기 좋은 기업이 맞구
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원과의 소
통이다. 매달 경영 보고회를 통해 매출 현황과 목표 등 기업 현황을 전
직원과 공유한다. 또 직원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 등급에 따라 포
상하는 제도를 도입해 월평균 수백 개의 새로운 제안들이 쏟아져 나오
고 있다. 20년 동안 근속한 직원에게는 가족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도록
300만 원 상당의 여행 상품권을 선물하는가 하면 회사에서 매월 경비를
지원하는 동호회만 해도 축구·등산·테니스 등 10개가 넘는다.
소통을 중시하는 이 대표는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깝게 지
낸다. 영업사원들과 함께 영업 현장을 뛰어다니는가 하면 공장에도 수
시로 내려와 확인한다. 홍보실 담당자가 “현장에 먼지가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신다”고 말하자 이 대표는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현장에서
먼지를 그대로 두고 보는 그런 정신으로 일해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
들 수 없다고 보는 거지요.” 이 대표의 경영 철학은 ‘불광불급(不狂不及)’
이다. 대표이사실 한편에도 글귀를 새긴 조그만 액자를 걸어놓고 수시
로 마음을 다진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즉 모든 일에 미치도
록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세상살이가 평균적인 노력
으로 되는 일은 없다고 봅니다. 호랑이가 토끼를 쫓을 때도 최선을 다하
듯이 작은 일에도 늘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합니다.”
현재 품질 관리 운동인 ‘삼정(정품, 정량, 정위치) 5S(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를 추진 중인 이 대표는 EICC(전자업체 행동규범)도 잘 지
키는 회사로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커넥터 역시 일본 기업에는 기술에서 밀리고 중국 기업에는 가격에서 밀
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희 회사는 기술력에서는 일본 기업보다 앞서
가는 기업, 가격이나 서비스에서는 중국 기업보다 나은 기업이 되겠다
는 정신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객 입장에서 본다면 저희가 한국
기업이라는 점이 큰 의미가 있어요. 외국 업체라면 의사 결정이 늦거나
서비스가 지체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