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네 차례나 방문한 적이 있는 치앙마이는 이국적이면서도 왠지 편안한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도시다. 그러나 직전 방문 (5년 전 코로나직전) 때는 둘이서 교대로 독감을 앓느라 8박을 하는 동안 아무 구경도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최소 한 달, 최대 두 달을 머물 계획이니 구석구석 잘 구경해야지.
2024년 12월 8일
인천 공항 출국이 오래 걸린다는 보도도 있고 해서 (원래도 그렇지만) 일찌감치 출발해서 넉넉하게 이륙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신발 검사가 추가되어서 출국이 밀리는 거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굽이 높은 신발에만 한정된 규정이라 그것이 주 요인은 아니었다. 여행객이 늘어난 게 큰 원인이긴 하겠지만 그보다도 보안 검색대를 다 열지 않는 것 - 즉 시설은 있는데 운영할 직원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아닐까? 빨리 직원 모집 공고를 내세요!
6시간을 무난히 날아가 11시쯤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 입국장에는 한글 이름이 적힌 피켓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이름이 있을 리는 없고… 택시를 부르기 위해 와이파이부터 잡았다. 몇 번 출구로 나가서 택시를 불러야 하나 둘러보는 중에 택시 부쓰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뭐 그냥 속편하게 150밧짜리 택시를 탈까? 물어보는 대로 호텔 이름 불러 줬더니 번호표를 주며 저 끝으로 (10번 출구?) 가란다.
정액제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인지, 별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초보 기사가 결렸나 보다. 내비에 잘 찍혀 있는 호텔을 찾지 못하고 주변을 헤매다가 반대편 골목에 내려 주고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도앱 켜고 열심히 들여다볼 걸. 택시 기사가 어련히 잘 데려다 주겠지 믿고 편히 앉아 있었더니... 흠. 그래봤자 몇십 미터 거리, 기사와는 웃으며 헤어졌다.
12월 9일
오늘은 우선 유심부터 사고 한달살기 숙소를 찾아 봐야지. 물론 아침부터 먹고...
호텔을 나서려는데 아침 먹으러 가냐며 사장님이 인사를 한다 - 하는 줄 알았는데 동네에 대해서 설명이 길어진다. 매우 친절하신 분이다. 저기로 가면 로컬 음식점들이 있고 세븐일레븐이 있으며 그 앞에 웻지... 또 웻지 어쩌구. 네, 감사해요. 대충 듣고 나와서 골목을 걷다 보니 식당들이 나타나고 그 중 한 국수 집이 눈에 뜨인다.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서 보니 채식 식당이네? 아하! 그제서야 호텔 사장님의 웻지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베지터블!! 혹시 채식주의자라면 세븐 앞에 있는 이 식당으로 가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우린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국수는 (밥도) 맛있더라.
세븐에 들어가서 한 달 199밧짜리 유심을 찾으니 재고가 하나밖에 없단다. 태국 2,3위 통신사가 (True와 Dtac. 두 회사가 합병 중이라든가) 세븐과 제휴해서 팔고 있는 저렴한 유심인데 (속도가 15Mbps이고 데이터량이 30기가) 관광지 쪽에는 재고가 없는 곳이 많고 혹은 외국인에게는 못 판다고 하는 곳도 많다는 소문도 있다. 다행히 다음 번에 들른 산띠탐 오거리 근처 세븐에는 물량이 풍부했고 두 군데 모두 친절하게 개통을 해 주었다. (여권과 얼굴을 찍어서 등록을 함)
이제는 한달 숙소를 찾으러 갈 시간. 가까이에 있는 인기 숙소(?네이버카페에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던)부터 찾아가 보는데... 가는 곳마다 풀부킹이란다. 네번째인가 들러 본 곳에서 12월 16일에 방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머지는 모두 방이 없단다. 예상과 다른데?
하지만 설마 방이 없기야 하겠어? 산띠탐 일대를 돌아다니느라 다리도 아프고 배도 출출하니 일단 시원한데 가서 쉬면서 밥이나 먹자. 마야몰에 들어가서 밥도 먹고... 옆지기 유심을 이심으로 전환도 하고...
간단한 쇼핑도 하면서 시원함을 즐기다가 나와서 다시 숙소를 보러 다녔다. 마야몰과 올드타운 사이 산티땀 골목골목에는 생각보다 웰세 숙소가 많았다. 차례차례 뒤지다 보니 더돔레지던스TheDomeResidence라는 곳에서 드디어 빈 방을 만났다. 생각보다 비싼 월세(17,000밧에 전기 요금 별도. 방이 넓고 주방이 있는 스위트룸이다. 작은 방은 8,000인가 8,500인가 한다는데 풀부킹 상태)에 잠시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여유부릴 상황이 아닌 듯해서 과감하게 계약을 했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
큰 숙제를 마쳤으니 개운하게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어디로? 창프억 야시장으로... 태국의 최고 매력은 야시장이잖아?
야시장이 열린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창프억 야시장의 유명한 수끼집 앞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다. 7년 전보다 더 인기가 많아졌군? 얼른 포기하고, 이집 저집에서 꼬치 소세지 솜땀 찰밥 과일 등을 사다가 소박한 만찬을 즐겼다.
12월 10일
어제 큰 미션을 완수했으니 오늘은 여유만만, 저번 베트남 여행에 가져갔다가 남은 달러를 바트화로 환전하는 사소한 미션만 남았다. 올드타운이나 슬슬 돌아봐야지.
치앙마이에는 Mr Pierre라는 비교불가의 원톱 환전소가 있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너무 인기가 많다보니 한 시간쯤 기다리는 경우가 흔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타패 쪽으로 걸어가다가 만난 환전소에서 확인해 보니 피에르보다 달러당 0.15밧 정도 덜 준단다. 500달러면 75밧. 3천원? 기다리는 값이라 생각하지 뭐.
목적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삼왕상 맞은편 란나 민속 박물관 앞이 화려하다. 들여다 보니 치앙마이 디자인위크DesignWeek 행사의 일환으로 4시부터 PopMarket이 열린다고 적혀 있다. 공연도 한다고... 뜻밖의 선물이네~~
타패까지 갔다가 (치앙마이 왔으니 타패는 필히 들러 줘야지) 해자 건너 시원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시간에 맞추어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전시된 공예품들이 야시장 물건보다 수준이 높아 보였지만 쇼핑은 자제하고 구경만 하고 다녔다.
저녁은 다시 창프억 야시장으로. 오늘은 그 수끼 집에서 줄을 서 봤다. 자리에 앉아서 먹으려면 1시간 반 정도 기다려야 한다기에 얼른 포기하고 테이크아웃을 선택했더니 2-30분 만에 음식이 나왔다. 듣자하니 그랩으로 배달을 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워낙 인기가 있어서 지점도 생겼단다. 그렇게 인기가 있어도 한 그릇에 69밧이니 착한 가격이다.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