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사 /전통사찰
- 경북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보천'이란 샘이 있어 '보천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의 아들 왕소군(王小君)이 신병을 치료를 위해 절에 머물면서 보천수를 마시고 완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폐사, 옛 절터에서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되어 1959년에 보호각을 짓고 봉안하였다.
이때 석불 앞에서 금동불 1구가 함께 출토되었으나 잃어버렸다고 한다.
1979년석조여래좌상은 보물 제492호로 지정, 1981년에는 주지 진상(眞尙)이 적묵전(寂默殿)과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한국문화대백과사전 인용)
대웅전을 보고 나오니 나이 드신 여스님이 개와 산책하고 계신다. 다리가 불편하신 모양이다.
절에 대한 것을 물으니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이분이 1981년 주지 진상인 것 같다.
폐산된 절에 와서 지금처럼 가람을 가꾸고, 본사인 직지사를 다니기 어려워 주지 소임을 후배에게 물려 주었다고 한다.
절 들어오는 입구 정자, 그 자리에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한 보호각이 있었다고 한다.
대웅전을 짓고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란다.
'보천'이란 약수는 보지 못하였다. 고려 충렬왕의 왕자가 이곳에 와서 물을 마시고 병을 치료하였다는 건 만들 말일 것 같다.
이런 설명을 듣기 위해 대웅전에 다시 들어갔다.
주차, 절로 향한다. 사진 오른편 정자 자리에 석조여래좌상이 처음 있었던 자리다.
요사
삼성각
배롱나무와 대웅전, 꽃이 필 땐 서로 잘 어울리겠다.
매일이 즐거운 날, 일일시호일
멀리 금오산이 보인다.
구미 해평리 석조여래좌상(보물)
대체로 균형미가 있으며 조각 솜씨가 좋다. 이런 석조여래를 만나기 쉽진 않다. 통일신라 만든 불상이다.
광배 또한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었다. 광배에 칠불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 중대 상대도 보전 상태가 좋다.
하대 밑에 대리석으로 기초하였다. 이건 이곳 주지께서 보호각에서 옮기면서 만들었다.
예전 보호각 주변은 밭이거나 풀밭이었다고 한다. 일꾼들이 쉴 때 농기구로 광배 윗부분과 불상 얼굴을 톡톡 첬다고 한다.
그 부분만 드러난 상태였고, 옛 사람들은 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머지 부분은 땅에 묻혀져 있어서 지금과 같이 보전 상태가 좋은 것이라 한다.
광배 뒤에 '활인불'란 글자, 여스님은 통일신라 때 쓴 것이고 그때 돌가루로 만든 먹물 성능이 좋아 지금까지 보존되었다고 한다.
보천사는 비구니가 계셔서 그런가 대체로 깔끔한 편이다. 구미 산다면 가끔 바람 쐬러 오고픈 절이다.
원각사 /전통사찰
- 경북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
1931년 선산포교당으로 지었다.
선산군 중심은 선산읍이었지만 선산군 구미면에 1970년대 구미공단이 만들어지면서 중심에서 멀어졌다.
원각사 약사여래불, 1840년쯤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문화재는 아니다. 불상 뒤는 선산주공아파트이다.
원통전 안
구미 원각사 목조보살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사진 왼편
1649년(인조 27) 9월 만든 불상, 1968년 복장유물로 확인.
구미 무을면 수다사에서 삼불을 만들었으나 하나는 원각사, 아미타여래좌상은 수다사, 관음보살상은 어디 있는지알 수 없다.
원각사 보살좌상은 대세지보살로 여겨진다. 목각 후 옻칠, 금박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수정)
1649년 희장(熙藏), 천색(天賾), 경옥(敬玉), 태림(太林), 경호(敬湖), 신원(信元), 보해(寶海), 관원(寬元), 경선(敬先) 등이 제작.
수조각승 희장은 1639년(인조 17)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제작에 보조 조각승으로 참여한 후,
진안 금당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50년),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61년) 불상 제작에 수조각승으로 참여.
보살상의 크기는 높이 111㎝, 머리 높이 19.2㎝, 어깨 너비 49㎝, 무릎 너비 78㎝로 원형이 잘 유지하고 있다.
요사
연악산 수다사 /전통사찰
- 경북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신라 문성왕 때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峯)에 백련(白蓮)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
967년(고려 광종 18)에는 화재로 인해 극락전과 청천료(淸泉寮)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185년(명종 15)에 각원(覺圓)이 금강문(金剛門) 등 3문(門)을 세우고 극락전과 청천료를 옮겨지었으며, 비로전(毘盧殿)·나한전(羅漢殿)·시왕전(十王殿)·미륵전(彌勒殿)·봉황루(鳳凰樓)와 방사(房舍) 24개, 수선사(修禪社) 등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42성관음대법회(四十二聖觀音大法會)를 9,000일 동안 개설하고 『법화경(法華經)』을 강론하였는데, 승속 수만 명이 참여하였다. 1273년(원종 14) 수해로 극락전·시왕전·청천료만 남고 모두 유실되었다.
1572년(선조 5)에 사명당(泗溟堂)이 극락전을 중수한 뒤 대웅전이라 개칭하였고, 청천료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하였다.
만세루(萬歲樓) 24칸과 안심료(安心寮), 9개의 대방(大房)을 신축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서 1만여 명의 의승(義僧)이 모여 의국법회(義國法會)를 개설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약간 수정)
일주문
대웅전, 오른편은 명부전
구미 수다사 명부전(경북 유형문화재)
숙종 10년(1684) 불이 났으며 이 건물만 남았다. 조선 중기에 세운 것으로 여긴다.
명부전 안
전체 수리한 것 같다. 좌우 보는 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대웅전 안
구미 수다사 영산회상도(보물)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좌상(경북 유형문화재)
구미 원각사 불상과 같이 만들어졌다. 삼불로 만들었지만 관음상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영산회상도는 1731년 그려졌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은 문하재가 아닌 것 같다. 따로 보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경북유형문화재)
건륭 37년은 1772년, 조선시대 범종 가운데 우수작이라 하지만 나는 종을 보는 눈이 없다.
대웅전 안에서 본 풍경
요사
삼성각
요사
산신각
죽장사 (竹長寺) /전통사찰
-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신라 때 창건되었다. 그때는 죽장사(竹長寺)라고 하였으며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폐사된 채 있던 것을 1954년 민가형의 법당으로 중창하여 이름을 법륜사라고 하였다.
이후 각황사로 잠시 바뀐 뒤 신라 때 사찰 명인 죽장사로 변경하였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명효(明曉)가 대웅전과 삼성각·요사채를 새로 짓고 크게 중창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죽장사 오층석탑만 생각하고 갔다.
나중에 이곳도 전통사찰임을 알았다. 석탑만 보고 대웅전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 했다.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통일신라 때 만든 탑, 나는 석탑 초기 작품이라 여겨진다.
지붕돌 낙수면이 층단을 이루는 모습은 석탑 전형이 아닌 전탑(塼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죽장리 오층석탑은 모전석탑(模塼石塔) 유형이라 할 수 있겠다.
아름답다는 느낌보다 늠름하다는 느낌이 든다. 전체 균형미도 나무랄 곳이 없는 보기 좋은 석탑이다.
높이 10m로 우리나라 오층석탑 석탑 가운데 가장 높다.
감실, 지금 안에 있는 불상은 근래 넣은 것이다.
옛 죽장사 모습이 그려진다. 꽤 괜찮던 절이었을 것 같다.
죽장사에서 나오면서 본 가을 풍경, 가을은 파랗까 아님 누렇까 모르겠다.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보물)
- 경북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1층과 2층 지붕돌의 전각(轉角) 윗면에는 빗물이 흐르는 낙수골이 뚜렷이 오목새김되었다.
3층 지붕돌에는 낙수골 없이 합각이 뚜렷하다.
지붕돌 받침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의 지붕돌 받침과 비슷한 인상을 주고 있다.
아래층 받침돌 면석에 3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진 것은 초기 양식, 몸돌과 지붕돌의 구성 방법은 다소 시기가 떨어지는 느낌.
이러한 양식은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제130호)에서도 볼 수 있어, 모전석탑(模塼石塔) 계열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석재의 다듬기 수법, 받침 부분의 구조, 몸돌과 지붕돌의 양식으로 보아, 석탑을 만든 시기는 8세기 경으로 여겨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내문 등 인용)
주변에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이 주위는 예전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단아한 느낌을 주는 괜찮은 석탑을 보는 건 행운이다.
2023년 10월 17일, 구미시 해평면, 선산읍, 무을면 순으로 방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