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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 ♡
요즘 가수 '나훈아'의 신곡 '테스 형' 으로 인해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다시금 부각되고 있네요~ㅎ
그런데 소크라테스하면 두 명언이 생각나지요?
"악법도 법이다"
자신에게 반역을 선동했다하여 사형을 선고한데 대하여
도망갈수도 있었지만 '악법도 법이다' 하면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지요
그리고 또 한 명언은
"너 자신을 알라" 이고요
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의 원조요
소크라테스는 제자를 잘 두었고요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글을 쓴게 없지요
다만 그의 말을 제자들이 모여 기록하였답니다
공자의 말을 제자들이 옮겨 적은것이 '논어' 이듯이
소크라테스도 그의 제자들이 그의 말을 옮겨 기록 하였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중 대표적인 사람이 '플라톤'
또 플라폰의 유명한 제자가 '아리스토텔리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교사 였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머리좋고 덕성이 높고 가장 용감한 4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플라톤,아스토텔레스,알렉산더 대왕이라 할수 있다면,
알렉산도 대왕이 30대초반 부터 죽을때까지 10여년동안
그 당시의 문명세계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만들었고,
그가 죽고나서 4나라로 갈라지고 헬레니즘(Hellenism) 시대가 열였고,
그리스 문명이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걸처서 퍼져나가
황금기를 만드는데~ 이때 만든 조각품이 세계 최고의 걸작품들 아니겠어요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물,조각품, 미술품 등이 바로 알렉산도 대왕
헬레니즘 시대 것이곘지요
소크라테스는 모든 문제를 평생 동안 토론을 통해 풀었답니다
욕심 없이 진리만 좇으며 열성과 지혜를 쏟는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 그를 '참지혜와 진리로 이끌어 주는 스승'이라고 칭송했답니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는 델포이의 신전에서 신의 뜻을 물어 응답을 받는 신탁이 이루어졌고
이 델포이 신탁이 "이 세상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고 응답했다네요
소크라테스는 가난과 세속적 평가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고
세번 보병으로 참전한 아군이 세가 불리해 후퇴할때도
동료들을 추수려 가장 늦게 물러난 담대한 인간이었답니다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재판과 죽움의 풍경에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그는 군중에게 영합하지 않았으며 '악법도 법이다'라며
스스로 독배를 마심으로서 지행일치(知行一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사람이니까요
추석연휴를 강타한 가수 나훈아!!
가수 나훈아의 열풍(熱風)으로 인해
세계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다시 우리에게 부각되고 있네요
이번 기회에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ㅎ
💎 인간 나훈아에 대한 이해 💎
추석 전날 저녁 KBS2 TV를 통해
가황(가요계의 황제)이라 일컬어지는 나훈아의 특별공연이 있었다.
무려 15년만의 TV를 통한 공연이라, 대면관객 없이도
대단한 인기 속에 인터넷 공연으로 성황리 진행되었다.
남진과 함께 1960~70년대를 수놓으며 한시대를 풍미한 불멸의 가수이지만,
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한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그는 의외로 히트곡 못지않게 많은 명언(?)을 남겼다.
이에 오늘은 노래에 관한 얘기보다는 그가 남긴 말 가운데
지금까지도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는 특별한 말들을 되돌아 보며,
가수 나훈아 보다는 인간 나훈아 (본명: 최홍기)에 대한 이해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나훈아는 1975년 첫 부인인 이숙희와 이혼 후,
이듬해 10년 연상인 배우 김지미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당시 대단히 쇼킹한 뉴스로써
엄청난 비난과 갈채를 동시에 받기도 하였다.
김지미의 고향인 신탄진에서 약6년간 살아오다가
1982년 나훈아의 가요계 컴백에 따른 갈등으로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그는 위자료 명목으로 자기의 전재산을
김지미에게 넘기면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여자는 혼자 살아 갈려면 반드시 돈이 꼭 필요하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말들이 잘 이해가 안되지만
1980년대 초반의 시대상과 나훈아의 대인배다운 모습을 감안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여하튼 나훈아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물론
공연료를 가불까지 받아서 이를 모두 김지미에게 건넸다고 한다.
◾1990년에 삼성측으로부터,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이건희 회장 등 삼성 고위임원 파티에 나훈아의 공연을 요청받였다.
물론 공연료도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금인 3천만원이었다.
노래 몇곡 부르는데 이 정도면 당연히 받아들이는게
일반적인데, 나훈아는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이에 삼성 비서실에서 총출동하여 나훈아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는 이러한 말을 남기며 거듭 거부의사를 밝혔다
“나 나훈아는 대중가수이다.
따라서 나는 대중앞에서만 노래를 부르지
이회장이 돈 몇푼 더 준다고 달려가 노래를 부를 나 나훈아가 아니다.
만약 꼭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할 때 공연티켓을 끊어서 들어오길 바란다.”
결국은 삼성의 나훈아 초청공연은 불발로 끝이 났다.
이는 삼성에서 초청한 연예인이 그 초청을 거부한 전무후무한 사례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펴낸 김용철 변호사는
이를 두고 나훈아를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삼성이 움직이면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일이 없었다.
정계 관계 언론계 모두 삼성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 나훈아의 단호한 태도 앞에서는 삼성이 결국 유일무이하게 KO패 하였기 때문이다.
◾2008년도에 여배우 김혜수를 놓고 일본의 야쿠자와 쟁탈전이 벌어져
나훈아의 신체 가운데 중요부위가 훼손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좀처럼 이 소문이 잦아들지 않자 급기야는
이를 해명하기 위해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을 하다가 웃통을 걷어부치고
단상위로 올라가더니 이렇게 일갈하였다.
“제가 여러분이 원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증명해 주세요.
제가 지금 여기서 딱 5분간만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
굳이 원한다면 아예 바지를 벗어
구체적으로 증명을 하겠다고 파격적인 발언을 하였던 것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내뿜는 그의 발언과 모션에 좌중은 압도되었다.
이에 열광적인 그의 팬들이 나훈아를 굳게 믿는다고 외쳐서
진짜로 바지를 내리지는 않고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기자회견 말미에는 루머의 대상이된 김혜수와 김선아에 대하여
“그 처자들이 너무나 억울하다. 무슨 죄가 있느냐?
기자 여러분들이 적극 보호해 달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나훈아는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한적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로 열린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가수 나훈아의 참여를 바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회 여기자포럼에 참석해,
“(김 위원장이) 오라고 요구했던 배우들이 오지 않았습니까. 나훈아라든가...”고 전했다.
도 장관은 이어 “스케줄이 있다’고 답하니, 북은 사회주의 체제라
국가가 부르는데도 안 온다니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나훈아는 그에게 정치입문을 권유한 사람들에게,
“나는 가수가 천직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등등 무수한 말들을 남겼다.
눈앞의 이익과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살아온 74세된
그의 깊이 있고 철학이 담긴 말과 행동들은 우리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있다.
💎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BTS(방탄소년단)의 빌보드 ‘핫 100’ 석권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음악처럼 그 깊이와 넓이가 무궁무진한 세계도 없는 것 같다.
비록 빌보드 차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서 조용히 발표된
나훈아의 신곡이 내겐 BTS의 다이너마이트 못지않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나이 나훈아가 어린애처럼 테스형을 애타게 부른다.
테스형! 그가 작사하고 작곡했다. 노래 제목이 ‘테스형!’이다.
아직 들어보지 못한 분은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한다.
요즘 트로트 인기가 대단한데, 아마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생활의 고단함을 토로하면서 노래는 시작된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팍팍한 삶의 아픔을 한바탕 큰 웃음에 묻으며 지내곤 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다.
오늘은 그럭저럭 보냈다고 해도 내일은 어떨까.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만 하다.
코로나19에 지친 거리를 모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듯,
엎치고 덮치는 고통이 이어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곧이어 테스형을 찾는 나훈아의 절규가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진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이 대목에서 필자 역시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 테스형의 정체는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세상이 왜 이렇게 살기 힘든지, 사랑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 이유 좀 알려 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듣고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아무리 서양 철학의 시조로 불린다고 해도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삶의 고통에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이미 그만의 답을 하나 내놓은 게 있다.
그것은 나훈아도 알고 우리도 대부분 알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서양철학사 2500년을 대표하는 말을
꼽으라면 최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을 명언이다.
그런 명구가 철학 교과서에는 2000년 넘게 만능키처럼 제시되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어떤가? 살아있는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죽은 교과서 속에서만 큰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드문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권력에 취하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와 정의와 사랑을 마치 자기만 아는 것처럼
착각하며 큰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혹시 내가 그런 것은 아닌가. 나의 무지가 함께 사는 사회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 테스형의 저 경구에 담긴 깊은 뜻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엔 겸손이 필요해 보인다.
겸손과 자신감은 병행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테스형이라 부르는 자신감이 노래 감상의 재미를 더해 준다.
^^나훈아 노래의 철학성^^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나훈아 신곡 ‘테스형’의 인기를 타고 각종 패러디가 잇따라 나온다. ]
테스형의 ‘테스’ 자리에 다른 사람 이름을 넣어 부르곤 한다.
"OO형, 세상이 왜 이래?” 이런 식으로 변형시켜 궁금한 걸 묻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겠지만 테스형의 테스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가리킨다.
그런데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그 이름에 눌려 더 중요한 것을 놓쳐선 안 될 것 같다.
테스형이란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이 왜 이래’라는 물음이다. 물음에서 철학은 시작한다.
2003년 ‘공’에서 2020년 ‘테스형’까지
삶의 의미를 묻는 순간 누구나 철학자
나훈아의 노래에 언제부터 이런 철학적 물음이 들어가게 된 것일까.
1982년 5월 2일 발행된 주간지 ‘선데이 서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훈아 마니아’인 이재술 와인소믈리에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수집해놓은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월간중앙’ 11월호 참조〉
‘선데이 서울’에는 나훈아와 영화배우 김지미 관련 기사가 실려 있었다.
당시 나훈아와 김지미는 부부 사이였다.
이 기사의 내용 중에 "나훈아는 노래에도 인생이 들어가고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부끼리 종종 주고받는다고 한다”는 구절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부부끼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노래에도 인생과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나훈아의 작사·작곡 능력은 일찍부터 발휘됐다.
72년에 가수 조미미가 부른 ‘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는
앞서 71년에 나훈아가 작사·작곡해 불렀던 노래다.
‘해풍’ ‘그리움’ 등이 담긴 나훈아 자작곡집을 72년에 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66년 데뷔부터 70년대까지 나훈아의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좀 약한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졌고 또 노래 가사의 의미도 깊어져 가는 듯한데,
그 분기점은 ‘선데이 서울’ 기사에 보이듯 80년대 초반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올해 발표한 또 다른 신곡인 ‘명자’라는 노래도 의미심장해 보인다.
크게 화제가 됐던 올해 추석 공연에서 나훈아가 ‘테스형’에 곧바로 이어 부른 노래는 ‘공’이었다.
필자에겐 이 ‘공’이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보였다.
노래를 배치한 순서가 절묘했다.
‘공’은 2003년에 나훈아가 작사·작곡해 발표했는데 이렇게 노래한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불교의 ‘공(空)’ 사상을 나훈아식으로 풀어낸 노래인데,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세태를 풍자한 테스형과 대비된다.
그는 아마 테스형이 몰고 올 파장을 미리 내다본 듯하다.
‘공’의 노랫말을 좀 더 보면 그런 느낌이 더 분명해진다.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철학은 거창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삶의 의미를 물을 때 우리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철학은 물음에서 시작해 비움으로 끝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나훈아 노래만큼이나 삶의 의미를 묻고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인과 사회는 밀접히 연결돼 있다. 물음은 개방적이어야 한다.
물음이 사라진 사회, 질문을 봉쇄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물음도 던질 수 있겠다. 사모펀드는 왜 이래,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왜 이래,
코로나19는 계속 왜 이래, 미세먼지는 또 왜 이래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많은 물음이 있겠지만 가장 소중한 질문은 밖이 아닌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물음을 나에게 던지며 살아가고 있는가.
**테스형과 예수형**
가황 나훈아가 신곡으로 발표한 ‘테스형’의 인기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날로 치솟아 오르고 있다.
많은 현역가수들이 ‘테스형’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테스형을 패러디해서 부르는 노래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또 음악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는 음악교실 에서는
테스형의 노래 한소절 한소절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방송사마다 앞다투어 패널들을 초청해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공연과 인기 있던 신곡 ‘테스형’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발시키고 있다.
아이돌같은 젊은 가수들이나 차지하던 음악차트순위에
테스형이 4위를 해서 사람들은 놀라워 하기도 한다.
그만큼 순식간에 트롯곡인 ‘테스형’은
전 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되어 버린 모양새다.
아마도 한동안 ‘테스형’의 인기는 식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이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그만큼 지금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지쳐있고
가난해져 있고 힘들어져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테스형’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의미하는 진짜 모델은 나훈아씨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에 테스형 대신에 아버지를 넣었다면
노래의 맛이 많이 감소되었을것이라고 음악 전문인들은 말한다.
그런데 ‘테스형’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소환해서
노래에 등장시키므로 철학적인 맛과 해학적인 멋과 신비함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있다. ‘테스형’에서 의문을 가졌던 여러가지 질문,
즉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테스형! 사랑은 왜이래?’
‘테스형! 먼저 가본 저세상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이런 여러 질문을 가지고 물어 봤더니 소크라테스가
모른다고 대답하더라고 ‘테스형’의 작사자인 나훈아씨는 대답한다.
그럼에도 그는 요즘 “별의별꼴을 다보고 사는”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서 해학적이고도 철학적인 노랫말을 만들어내었다.
현실의 고민을 꼬집고 테스형에게 일러 바치는 식의
기발한 발상으로 인해 ‘테스형’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와같은 노래가사의 신선함과 곡의 호소력 때문에
‘테스형’은 20-30대 젊은이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번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공연은 대성공이다.
더욱이 나훈아씨가 15년만에 한 공연에서 70대의 가수가
이처럼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나훈아씨와 제작진들이 2시간40분짜리
이공연을 위해서 들인 노력을 우리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훈아씨는 이 공연을 위해 무려 8개월이라는 시간을 공들여 기획하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오직 연습만이 특별함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면서...
나훈아씨는 오직 국민을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임했다고 한다.
공연시간 2시간 40분을 2분40초처럼 느껴지게 하겠다는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일일이 체크하면서 공연을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시청자들이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채널에 눈을 고정해서 보게 하기 위해서는 광고도 다 빼버렸다.
뿐만 아니라 나훈아씨가 29곡의 노래를 부르면서 19번이나 갈아 입은 무대의상.
그는 아예 무대에서 시청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직접 옷을 갈아 입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통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본방송은 못보았으나 10월 3일 편집해서 다시한 방송분을 보았다.
나역시 시종일관 감동을 느끼며 보았었다.
사실 처음으로 나는 대중음악의 매력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엔 각 분야에 정말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훈아씨는 54년간을 대중가요 가수로 노래를 부른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노래만 부르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작곡가이며 작사가이다. 곧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이다.
꽤 오래전에 가수로 국민 대중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훈아씨에게
국회의원으로 일해 달라고 정치계의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
맡겨진 그 일을 위해서라면 2시간40분의 공연을 위해서
8개월을 매일같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가황(가요계의황제)으로 불리는 나훈아씨이다.
KBS방송국 별관에 이번 공연 제작에 참여한 500여명중
그누구보다 일찍 나가서 연습에 임했다는 후문도 있다.
공연의 주인공인 사람이 가장 먼저 나와서 함께 연습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더욱이 그는 수억원의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개런티를 한푼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음악을 위해 그리고 그것을 보아줄 시청자들을 위해
수익을 전혀 따지지 않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국민들은 더욱 가황 그를 칭송하고 환호하고
존경과 사랑을 아낌없이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공연을 해왔지만 늘 구름처럼 많은 군중을 앞에 놓고
티켓한장에 10만원이 넘는 비싼 콘서트표를 팔고서야 공연을 했다.
우리나라 대재벌인 삼성가의 행사에 노래를 불러 달라고 백지수표를 주면서 초청을 하자,
그는 거절하면서 자기 노래를 들으려면 공연표를 사 가지고 와서 들으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언텍트(비대면)공연을 하면서도 조금도 소홀함 없이 최고의 공연을 했다.
그는가수로서의 실력과 함께 인격적인 성숙함을 갖추었다.
또 대중을 향한 리더쉽 또한 탁월하다.
이런 점에서 과연 그를 ‘가황’이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즉 ‘테스형’의 노랫말에 ‘테스형!’대신에 ‘예수형!’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피조물이고 인간인 소크라테스는 작금의 우리나라의 힘든 상황들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인 예수님은 능히 해답을 갖고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셨고
구하는 자가 구할것이고 찾는 자가 찾을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다.
영어의 history (역사)는 합성어이다.
(his+story)는 그래서 ‘그의 이야기’이며 여기서 his(그)는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작금에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모든 혼란과 힘듦을 예수님께 물어보자
‘예수형! 세상이 왜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예수형! 사랑은 또 왜이래’
‘예수형! 먼저가본 저세상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아~예수형! 아~예수형! 아~예수형! 아~예수형!’
우리 인생의 모든 질문이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마음의 위로뿐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변화와 해결로 화답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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