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詩는 우리나라의 시인, 평론가 등 115명으로부터 지난 2003년에 발표된 시 가운데 최고의 시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동아일보2004.3.12 A17면).
이 시를 쓴 詩人은 문태준(34세)이라고 하는데, 시를 읽어 보니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어 그 感想文을 써 보았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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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 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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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佛家에서 전해 내려 오는 雙林涅槃 槨示雙趺(쌍림열반 곽시쌍부; 두 그루의 사라나무아래에서 열반에 드시고 관 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시다)라는 얘기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위 얘기부터 하는 것이 순서같다.
불교경전(대반열반경 다비품)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입멸 3개월전 자신의 열반을 예고했었는데, 그 3개월후 쿠시나가라에서 두 그루의 커다란 사라나무가 있는 숲 속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오른쪽으로 누워서 열반에 드셨다고 한다(이 자세는 임종시 깨어있는 의식상태로 열반하기 위한 요가자세로 나는 알고 있음).
그리하여 제자들이 부처님의 시신을 입관한 후 火葬을 하고자 관에 불을 붙이려 하였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傳法次 먼 지방에 가 있던 수제자 마하가섭(제1대 전법후계자임)이 7일만에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 슬피 우니 부처님의 두발이 스르르 관 밖으로 나왔고 마하가섭과 대중들이 부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리자 다시 관속으로 들어 갔다는 것이다.
그 후 관에 불을 붙이니 그제서야 관에 불이 붙어서 다비식이 거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3일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신지 3일 후에 돌무덤에서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났다고 하는 얘기와 흡사한 것이다.
그런데, 마하가섭이 슬피 울자, 이미 돌아 가신 부처님이 어찌하여 두발을 관 밖으로 내민 것일까?
아무리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죽어서 시신이 되어 있는데 관 밖으로 두발을 내미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러한 의문은 종래부터 禪佛敎의 유명한 話頭의 하나이다.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부활하신 것일까?
과연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고 돌무덤에 묻히셨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 나신단 말인가?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신이 관밖으로 두 다리를 내미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온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인지는 신앙차원의 문제라고 생각되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자 한다.
다만 이것도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우연히 어물전 개조개가 그 촉수-맨발-를 내밀었다가 천천히 거두어 들이는 것을 보고서 위 槨示雙趺의 화두를 연상한 것 같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에 인도 카비라위국의 태자로 태어나 29세때 출가하셔서 6년의 고행 끝에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성취하셨다.
그 후 중생을 생.노.병.사의 근본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자 하는 자비심에서 45년동안 쉴 새없이 각지를 돌아다니며 진리를 전파 하고 다니셨다.
그러다가 이제 육신이 노쇠하여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자 열반에 들었던 것이다. 그 때 세수는 80세였었다고한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제자가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며 관 밖에서 슬피 울자 죽어 있던 석가가 그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민 것이다.
왜일까?, 왜일까? 그것이 무슨 메시지인가?
어물전 어항속에 있는 개조개는 조만간 찌개거리 등으로 팔려나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조만간, 죽음이 예정되어 운명인 것이다.
그러한 개조개가 어항속에서 촉수를 내민 것이다.
이는 아마도 먹이를 찾는 생리활동이겠지.
그 촉수에다 시인이 손을 갖다 대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촉수를 움츠렸다는 것이다.
부처는, 항상 그 자신의 내면을 觀 하고 있으므로 밖으로는 깊은 고요속에서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이는 그 자신의 하나 하나의 행동과 내면의 의식의 흐름에 대하여 예리하게 깨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의 제3자가 볼 때에는 뭔가 골똘히 사색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처음하는 궁리는 당연히 서툴 것이기 때문에 그 속도가 더 느릴 것이요, 그래서 가장 오래하는 궁리처럼 보일 것이다.
시인은 위 표현에 의하여 萬古의 고요함속에서 맑게 깨어서 살아가셨던 부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존재자체로 텅비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그런 상태로 사신 것이다.
이를 시인은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 왔을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간디‘라는 영화에서 깡마른 체격의 간디가 상체에다 사리를 걸치고 아래는 맨발인 채로 군중의 앞에서서 영국의 탄압에 항의하는 비폭력. 불복종의 행군을 이끄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 맨 발은 나와 대지와의 원초적 접촉수단이고 대화수단이다. 거기에 어떠한 매개물이 개입되면 가식이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맨 발은 그저 있는 그대로 순수함을 상징한다.
부처는 순수하게 깨어 있는 의식이다. 관념이 들어오면 가식이 생겨난다.
우리는 맨발로 태어났다가 맨발로 간다.
그래서 맨발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다.
또한 맨 발은 비장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맨발로 이 세상에 나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보호막에도 기대지 않고 자기자신만에 의지하여 살아 가야 한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맨발은 우리에게 비장한 마음이 들게도 한다.
부처님이라고 어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제자와 이별을 한 적이 없었겠는가?
이때, 부처라고 어디 슬프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부처는 맨발의 마음으로, 순수한 원래의 마음으로 맑게 깨어서 가슴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를 시인은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라고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그 자신은 이미 해탈하여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 났지만, 중생들의 고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자, 중생들에게 육도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설파 하면서 45년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힘든 사바세계에서 우리 중생들은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처님이 설파한 진리- 부처님이 전해주신 진리의 횃불-에 의하여 진리에 대한 우리의 정신적 배고픔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멈춘”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두발을 관 밖으로 내민 것인가? 예수님은 왜 부활하신 것인가?
槨示雙趺를 통하여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남기려 함이었던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가섭아, 슬퍼하지 말아라.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내가 살아 생전에 그렇게 누누이 가르치지 않았느냐. 집착이 모든 고통의 뿌리라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태어 났다가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본체는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는 것이다. 슬퍼하지 말아라.
그래도 나의 말을 못 믿겠는가? 너희들은 내가 죽었다하여 관에다 입관시켜 놓았지만 죽었다는 것도, 관이라는 것도 마음의 벽이고 경계에 불과한 것이다.
자! 보아라. 내 두발을 관 밖으로 내밀테니. 경계는 없다. 벽은 본래 없는 것이다. 경계에 집착하지 말아라.
이것이 나의 변함없는 가르침이니라.
가섭아, 슬퍼 하지 말아라. 네가 슬퍼 하면 나도 마음이 아프니라.’
결국 이 시에서 시인은 “맨 발”을 부처님의 자비심표시의 매개체로 본 것 아닐까?
부처님이 일생동안 맨발로 탁발을 다니신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것의 중요성 즉 자비심을 일깨워 주려한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의 벽을 깨뜨리는 것이며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얘기하려는 것으로 시인은 파악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부처님은 죽어서 관속에 들어 있으면서까지 중생을 위하는 지극한 자비심으로 곽시쌍부의 메시지를 남기신 것으로 본 것 아닐까?
그리하여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즉 어물전 개조개의 맨발을 통하여 우리에게 “모두들 마음의 벽을 깨뜨려라. 관념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어디 부처님만 중생을 위하여 탁발을 다니시는가?
우리들 家長 모두도 가족을 위하여 맨 발의 비장한 심정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매일매일의 생활전선에 뛰어 들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본다면 어물전 개조개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부처님의 모습 또한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첫댓글시도 시이지만 친구 병식이의 감상문 또한 깊이가 있어 이를 읽는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특히 마지막에 가족을 책임지느라 오늘도 맨발로 생활전선을 뛰드는 우리 가장들..., 이들을 부처님의 모습으로 견주는 대목에서 깊은 감동이 전해진다. 병식아 좋은 시와 감상문 전해주어서 고맙다.
첫댓글 시도 시이지만 친구 병식이의 감상문 또한 깊이가 있어 이를 읽는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특히 마지막에 가족을 책임지느라 오늘도 맨발로 생활전선을 뛰드는 우리 가장들..., 이들을 부처님의 모습으로 견주는 대목에서 깊은 감동이 전해진다. 병식아 좋은 시와 감상문 전해주어서 고맙다.
격려해 주어서 감사. 그렇지만 시인은 개조개의 촉수위에 모래성을 쌓았고 나는 시인의 시위에 또 다시 모래성을 쌓은 것 같아 개조개에게 미안.
근래에 보던 글 중에서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올려주신 친구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도 기회가 되면 짧은 글이라도 올리도록 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