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는 어떤 장소였을까?
김 성 교수
단순 저수장아니라 종합병원과 관련 있어
다섯개의 행각 중 한 곳에 기념교회 건설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 중에서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요 5:2-18). 그 이유는 이곳에서 천사가 가끔 물을 휘젓는 신비스런 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베데스다가 유명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온갖 중병 환자들이 몰려오는 장소로서 일종의 환자 요양소 내지는 종합병원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과연 베데스다는 어떤 장소였을까?
두 개의 저수지와 다섯 행각
1860년대 예루살렘의 성 안나 교회를 차지한 프랑스의 백의의 선교사회 신부들은 근처의 유적들을 부분적으로 발굴하고는 고대 기록들을 근거로 이 곳이 양문 옆에 위치했다는 요한복음서의 베데스다로 여겼다. 가까이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희생제물을 도살하고 씻는 과정에 필요한 많은 양의 물을 확보하기 위해 신약시대에 여러 개의 저수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1957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서 길이 52m, 폭 40m 규모의 북쪽 저수지와 길이 57m, 폭 48m 규모의 남쪽 저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베데스다에는 다섯 개의 행각, 즉 스토아가 있었다고 한다(요 5:2). 스토아는 그리스 건축에서 여러 기둥으로 이루어진 회랑을 의미하며 도시 한가운데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터인 아고라에 위치한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이 안에서 철학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논쟁을 즐겼다 해서 이른바 스토아 학파가 유래되었다.
베데스다의 두 개의 저수지는 다섯 개의 회랑과도 그 구조면에서 일치한다. 즉, 두 개의 저수지 사이에는 폭 6m의 분리 벽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의 모양은 날 일(日)자 형태를 띠고 있었다. 따라서 두 개의 저수지 가장자리에 돌아가며 회랑이 있었다면 사이의 분리 벽까지 합해 모두 다섯 개의 회랑이 있는 셈이다.
그리스식 종합병원 아스클레페이온(Asklepeion)
그렇다면 왜 베데스다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 있었는가? 발굴을 통해 베데스다의 유적은 서기전 200년경 최초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1세기에는 저수지와는 별도로 깨끗한 물을 받아서 마실 수 있는 급수대도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베데스다는 단순한 저수장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로마 시대 도시들에 널리 퍼져 있었던 종합병원 즉, ‘아스클레페이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베데스다가 원래 히브리어로 ‘베잇트 하스다’, 즉 ‘자비의 전당’이라는 뜻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또한 서기 2세기 ‘폼페이아 루킬리아’라 불리는 한 로마 여인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그 대가로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이 현장에서 발견된 한 비문을 통해 밝혀졌다.
서기전 700년경부터 그리스 본토에서 아스클레피오스가 의학의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했고 서기전 6세기에는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클리닉이 세워졌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목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스클레페이온의 한 가운데는 맑은 물이 흐르는 분수대와 저수장이 있었다. 피부병의 경우 진흙 마사지를 받게 했고 태양 볕 아래 맨발로 걷는 것도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였다.
음식요법으로서 포도주나 기타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금식을 하기도 했다. 증상에 따라 약초를 비롯한 필요한 약재가 동원되었고 간단한 수술이 시행되기도 했다. 한 밤 중에는 신전의 제사장이 하인들을 거느리며 환자들의 병상을 방문하여 상태를 확인하고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아스클레페이온에서 가장 중시하는 치료법은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아스클레페이온에 극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연극과 음악 감상을 통해 환자들의 안정을 유도한 심리치료도 했다는 사실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베데스다의 두 저수지 사이의 분리 벽 아래쪽에서 양쪽으로 통하는 구멍이 발견되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북쪽 저수지로부터 물이 남쪽 저수지로 흘러내리게 고안된 것이다. 신약학자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이 장치를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빗물이나 지하수가 서서히 북쪽 저수지에 고여 일정한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면 수로를 열어 병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남쪽의 목욕장으로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아스클레페이온의 가장 중요한 치료 요법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목욕하는 것이기에 이 구절은 더욱 베데스다의 병원 기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 안나 교회
서기 5세기 중엽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한 순례자는 이곳의 기념교회를 베데스다의 기적을 상기하여 ‘불구자의 교회’로 명명했다.
또한 서기 6세기부터는 이곳이 마리아의 생가라는 전승이 생겨나 다섯 개의 행각 중 하나에 이를 기념하는 교회가 건설되었다. 서기 1100년경 십자군들은 이곳에 마리아의 모친을 기념하는 성 안나 교회를 세웠고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십자군 시대의 건축물로 손꼽힌다. 거의 대부분의 십자군 시대 교회당들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의 성 안나 교회가 완벽하게 보전된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슬람 신학교인 마드라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고, 나아가 침상을 정리해 이동하게끔 했기에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율법 위반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요 5:16). 오늘날의 유대인들에게는 ‘피쿠악흐 네페쉬’라 부르는 율법의 예외 조항이 있다. 가장 엄격한 안식일 율법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면 예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진 것을 구해내는 것 등이 피쿠악흐 네페쉬에 속한다(마 12:11). 양 한 마리의 생명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구덩이는 물웅덩이를 뜻하기 때문에 양이 빠져 죽을 경우 사체가 부패해서 사람들은 물론 가축들도 이 더 이상 그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 설명’
베데스다 발굴지
1950년대의 집중적인 발굴을 통해서 베데스다에는 두 개의 저수장과 다섯 개의 행각(회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약 시대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종합병원이었던 아스클레페이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협성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