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夜 마실가자!
시인, 칼럼니스트 김인희
계절이 지나가는 길 어귀에서 일탈을 꿈꾸는 시인에게 ‘백제 夜 마실가자’가 내민 손은 달콤한 프러포즈였다. 시인은 촘촘하게 대기하고 있는 다른 일정을 제치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태양이 석양에 자신을 쏟아부어 붉게 물들이더니 시나브로 다가오는 땅거미 따라 귀뚜라미 노랫소리가 가을밤을 초대하고 있었다. 안내받은 행사장 부여 객사에 당도했을 때 체온을 재고 열이 없다면서 증표로 예쁜 스티커를 팔에 붙여주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풍경이다.
부여 객사는 조선 시대 부여현의 숙소를 담당했던 관아 건물이었다. 객사는 고려 시대부터 각 고을에 설치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사신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조선 시대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기도 했던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역사의 상징 객사 마루가 무대였기에 감동은 배가되었다. 가야금과 국악기가 나란히 서서 출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적인 공간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으로 들어간 듯했다.
“산유화야 산유화야, 이포에 남당산은 어찌 그리 유정턴고, 매년 팔월 십육일은 왼 아낙네 다 모인다 무슨 모의 있다더냐.” 산유화가 가사 일부다. 산유화가는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에 전승되어 오는 일련의 노동요라는 사회자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춘앵무(春鶯舞)를 감상하면서 봄기운이 완연한 아지랑이 속에서 노란 꾀꼬리가 앙증맞은 춤을 추는 모습을 연상했다.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나이 마흔 살을 경축하기 위하여 마련한 춤이 춘앵무라고 했다. 춘앵무 속에는 효명세자의 지극한 효심과 봄처럼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다.
무대 공연이 끝난 후 초롱을 들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관북리 유적을 찾아갔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님의 발굴에 담긴 스토리를 들으면서 참가자 전원이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은하계의 별자리 같았다.
관북리 유적은 왕궁의 존재와 관련하여 대규모의 건물터다. 이 건물은 기와 파편을 다량 섞어 흙을 다지며 터를 돋은 후에 초석이 놓일 자리에 흙을 겹겹이 다져 쌓은 후 적심 시설을 만들었다. 건물 규모가 웅장하고 단층이 아닌 2층 이상 건물로써 국가의 중요한 행사나 사신을 맞이하는 일을 담당하였던 백제의 왕궁 건물 중 일부라고 추정하고 있다.
일행과 함께 초롱을 들고 부소산성을 오르면서 피부에 닿는 가을바람의 감촉을 느끼면서 1400년 전 가을의 감촉은 어땠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쳤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도성(都城)이다. 성왕이 538년 웅진(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여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국도를 수호한 중심산성이었다.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으며 흐르는 백마강에 접해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을 먼저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라고 한다.
부소산성은 백제 왕궁의 북쪽에 위치하여 왕궁과 도성을 방어하는 구실과 왕궁의 후원 역할을 했다는 안내를 들으면서 반월루 정각에 다다랐다. 신발을 벗고 정각에 올라가야 하는 것에 일순 망설임이 있었으나 ‘반월루에서 바라보는 부여의 야경은 100만 원짜리입니다!’라는 담당자의 달콤한 유혹이 솔깃하여 운동화를 벗었다.
정각에 올라 바라본 부여 야경은 밤하늘 수놓은 별과 다르지 않았다. 캄캄한 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이 그대로 땅으로 내려와 별자리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눈 부신 네온사인과 가로등 별이지만 사비 시대에는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별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내내 행복했다.
초롱을 들고 부소산성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야릇했다. 매미가 목청을 돋우어 노래하는 여름과 찬기를 머금은 바람이 별을 희롱하는 가을과 조우하는 길목에서 조선 시대와 백제 시대를 여행하고 21세기 최첨단의 과학시대로 귀환하는 기분이었다. 백제로 마실가서 한바탕 야(夜)하게 잘 놀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