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리랑>은 1935년 포리도루( Polydor ) 레코드에서 발매했던 곡입니다. <그리운 아리랑>은 일제시기 크게 유행했던 신민요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신민요는 조선의 전통 민요에 외래 음악이 결합된 음악형식이었지요. 민요에 특출난 재능이 있던 기생들이 잘 부르는 장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곡을 부른 사람은 일제시기 인기 가수였던 선우일선 님입니다. 선우일선 님은 1919년 출생한 기생 출신 가수입니다. 선우일선 님의 구성진 목소리에 실린 <그리운 아리랑>은 더욱 감칠 맛이 나지요. 유명한 <애수의 소야곡>, <나는 열일곱살이예요>, <가거라 삼팔선> 등의 작사가인 이부풍 선생님은 선우일선 님의 목소리에 대해 “ 마치 하늘나라에서 옥퉁소 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녀의 아름답고 청아한 음색은 신민요라는 경지를 한층 더 밝혀주었다 ” 라고 회고하기도 했지요.
다음은 <그리운 아리랑>의 가사입니다.
1. 가신님 발자욱 찾을 길 없네
몽롱한 안개에 사라졌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떠나간 곳이라고 잊지를 마소
2. 엄동이 다가고 춘삼월되면
강산도 봄이라 꽃이 피련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언제나 우리 님은 돌아오려나
3. 가랑잎 구르는 무너진 산에
무심한 달빛만 고요히 흘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저믄날 종소리에 이밤도 우네
<그리운 아리랑>은 표면적으로는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곡입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가신 님은 잃어버린 고국인 조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조선총독부의 혹심한 검열로 민족, 독립, 국권 등의 용어들은 사용할수 없어 은유적인 표현이 사용됐지요.
이 곡의 가사는 일제시기 가요에 흔히 보이는 표현들로 점철되어 있지요. 특히 2절 가사에 보이는 “ 춘삼월 봄이 돌아와 강산에 꽃이 피는데 우리 님은 언제 돌아오나 ” 라는 표현은 당대 많은 가요들에 등장하는 구절이지요. 그러므로 이 곡은 일제시기 유행했던 신민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곡으로 여겨집니다.
<그리운 아리랑>을 만든 분은 한국 최초의 여성 작곡가인 이준례 님입니다. 이준례 님은 1905년생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서구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입니다. 1927년 경성방송국 실황 연주 때는 만돌린 악기를 가지고 서구 음악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이준례 님은 여성 작곡가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인형작가로 선회하지요.
그러나 대중가요 창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간간이 작곡을 했다고 하는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조경수 님이 1978년 발표하여 크게 히트한 가요 <행복이란>이지요. 이밖에도 이준례 님이 지은 곡들이 여럿 남아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 공개되기를 기대합니다.
https://youtu.be/HbSt1l5u9o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