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바탕에 구멍을 내는 공空이 되라]
일상인들은 세상이 견고하고 확실한 것으로 여긴다. 세상에서 출세하거나 생존하려는 사람들은 <존재의 확실성>이라 견고한 땅을 딛고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간다. 만약 존재할 이유가 희박하거나 아예 없다면 살아갈 의욕이 나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존재라는 게 조건에 따라 변하는 불확실성과 가변성을 지닌 고유한 속성이 결여된 가상이라면 어쩔 것인가? 사실 ‘존재’ 와 ‘확실성’은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좌뇌가 조작해낸 개념이다. 모든 개념은 사회활동의 산물로서 문화적 밈meme이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자원을 무제한적으로 개발하여 문명을 번성하게 하고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무상하며 텅 비어 있다. 세계는 불확실하고 결정 불가능하며 확률적 과정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구의 중력에 구속된 인간은 발 딛고 있는 땅을 견고한 발판으로 여기면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설친다. 그런 인간은 존재와 세계가 견고한 실체라고 믿는다. 이에 따라 자신과 대상사물도 확고한 실체로 여긴다. 오히려 그에게는 ‘실체로 여긴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현실을 실체로 여기지 않는 삶이 가능하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물론 처해 있는 상황이 극단적으로 고통스럽거나 자유가 박탈된 상태라면 환상을 지어내어 현실의 부정적 조건을 견디고 참아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世人들은 이미 사회문화적으로 틀 지워진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사는 삶에 적응되어 있다. 현대인들의 삶을 제일 강력하게 틀 지우고 있는 사회제도는 자본주의체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과 분노, 폭력과 무지를 동력 삼아 굴러가는 눈 먼 기차다. 누구도 그 기차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며, 그 방향을 통제할 수도 없다.
미친 속도로 달려가는 욕계의 열차의 현실은 이렇다. 특실이나 고급 칸에서 오래도록 타면서 호사를 누리고 싶어하는 무리가 있는 반면 일반 칸이나 아래 칸, 뒤 칸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내릴 수 있는 틈은 주어지지 않는다. 승객을 무한정으로 태우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도 내려주지는 않는 열차에게 ‘멈추는 정거장’이란 없다. 그래서 무한궤도, 악의 순환, 윤회라 한다. 일찍이 현자나 각자들은 열차에서 내리고, 열차를 멈추는 사건을 창조했다. 그건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으며 영웅적 사업이었다.
자본주의 열차에서 내리려는 사람은 아무 일 없이 굴러가는 자신의 일상이 탐진치를 부추기는 욕계의 사회문화적 구조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생활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탐욕과 분노, 전쟁과 폭력, 무지와 사견에 물들어 있는지, 아니면 거기에 끌려 들어가 추종자가 되고 공범자가 된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욕계에 길들여진 자신의 삶을 전복하지 않으면 욕계의 노예로서 살아갈 뿐 자유는 없다. 욕계에 익숙해진 자기 존재가 침몰하지 않으면 불안과 갈등만 있을 뿐 평온과 안식은 없다. 진부함의 반복이라는 바퀴로 굴러가는 일상의 열차에 구멍을 내고 ‘달림이 멈춘 쉼(열반)’을 볼 때야만 욕계에 갇힌 존재가 침몰함으로써 자본의 논리에 포획된 적이 없는 약동하는 생명(앨랑 비탈 elan vital)이 빛나리라.
威音古調虛空骨, 위음고조허공골
孤鶴一聲天外長. 고학일성천외장
태초 이전 부처가 노래한 옛 곡조는 허공의 뼈.
절대독존 鶴의 울음 소리가 하늘 밖으로 뻗는구나!
-2024년 동안거에 들어가면서 쓰다.
첫댓글 <소수의 작은 모임을 만들자는 말씀 넘 고마워요>
승가(僧伽) 공동체, 禪수행공동체, 불교의 希望을 만드는 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네 명이면 된다. 네 명이 안 되면, 세 명, 세명이 안되면, 두 명 이어도 된다. 두 명도 안되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가능하다.
바르고 의로운 願力을 서원(誓願)하는 사람, 단 한 사람만이 있어도 세상을 바꾸고 救援한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불교와 승가(僧伽)에 대한 관심과 원력(願力) 때문이다.
또한 용기(勇氣)를 내지 못하는 佛子와 스님들에게 용기를 傳하기 위함이다.
원담스님 小數의 작은 모임을 만들자는 말씀 넘 고마워요.
글구 거처를 꼭 대구 또는 부산으로 이전 하소서! 서울이면 더욱 좋구요.
동안거 늘 健康 챙기시고 살피시고 더욱 智慧를 發하소서! 부산 지금 여기 깨달음센터 日震스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