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창 3:9-10)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 시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위대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종교처럼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창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기원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찾아오셔서 최초로 하신 말씀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실까요?
1.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십니다.
마9:13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눅19:10에도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나는 평생에 거짓말을 해 본 일이 없다.”라는 거짓말이 1위를 수상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은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 죄인이라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이나 헤롯왕보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세리와 창기들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1,500년간이나 율법을 가지고 연단하신 것도, 사람이 자기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했습니다.
2. 한편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십니다.
앞의 말씀과 반대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창18:26에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서 의인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소돔에는 의인 50도 45도 40도 30도 20도 마지만 의인 열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돔성이 멸망 당했습니다.
계3:2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데교회에서도 의로운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데교회는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 받아 흰옷 입은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큰 교회 목사가 죽어 다시 깨어나 한 말인데 천국에 가서 보니 자기 교인 중 흰옷을 입은 사람이 많지 않더랍니다.
흰옷에는 칭의의 옷과 성결의 옷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그의 속죄의 공로를 믿고 양심의 평안을 지키는 사람이 칭의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면서도 항상 정죄감 속에서 산다면 흰옷을 입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칭의부터 이렇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사61:10에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셨다 했습니다. 이처럼 칭의의 속옷, 성결의 겉옷까지 입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과 함께 하시고 이런 사람을 귀히 쓰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요4:23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동물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는 예수님이 제물이시고 우리가 제물입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 드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위해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잘 드리는 사람, 예배 잘 드리는 교회를 찾으십니다. 사람들도 은혜로운 예배를 좋아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제물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기도하고 그만큼 준비하고 힘써야 합니다. 오순절에도 열흘이나 전무하며 기도했는데 내 준비는 없이 무임승차만 하려고 하니까 안 됩니다.
예배를 위해 준비한 것과 준비하지 않는 것, 한 시간 준비한 것과 두 시간 준비한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준비하지도 않고 텁텁한 마음으로는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설교도 찬송도 대표기도도 준비하되 기도함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함께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런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4.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삼상9:20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암나귀가 아니라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했기 때문입니다(삼상9:21).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시사저널에서 국내의 CEO 최우수경영자 10명을 선정하여 살펴보았더니 공통점은 한결같이 겸손했습니다. 모두 삶의 원칙을 지키고 성실했습니다. 거짓말하고 수단 좋은 사람이 성공하는 줄 알지만 진짜 크게 될 사람은 오늘만 보고 내일 안 볼 것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부흥사 R. A. 토레이는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7가지의 이유를 말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무디는 하나님께서 찾으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5. 하나님 마음에 맞는 일군을 찾으십니다.
사6:8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사야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받아 일하는 선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간절하고 애타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마음에서 하나님의 심정이 타오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도 나도 예수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요일2:13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했듯이 하나님의 깊은 심정을 이처럼 헤아릴 수 있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기 위해 말씀을 읽고 기도함으로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찾으시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은 자신을 죄인이라 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인된 사람, 참된 예배자, 겸손한 심령, 하나님의 마음 가지고 충성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이런 마음의 주인공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더욱 사랑과 친밀과 영광으로 찾아오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