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화엄경 강설 39】 3
(8) 열 가지의 광명을 보이다
佛子야 此菩薩이 坐彼大蓮華座時에 於兩足下에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諸大地獄하야 滅衆生苦하며
“불자여, 이 보살이 큰 연꽃자리에 앉았을 적에, 두 발바닥으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큰 지옥을 비치어 지옥 중생들의 고통을 소멸하였느니라.”
▶강설 ; 여래의 직책을 맡은 제10지위의 보살은 그대로 여래의 책임과 의무를 남김없이 다 수행하는 보살이다. 여래의 책임과 의무를 남김없이 수행하는 사람은 곧 여래다. 예컨대 대통령의 책임과 의무를 대행하는 사람이 곧 대통령인 것과 같다. 그래서 이와 같은 지위에 있는 보살은 한마디로 지혜와 자비의 능력이 여래와 똑 같아서 지혜와 자비의 상징인 광명을 놓는 것도 그대로 여래의 광명을 놓는 것이다.
열 가지 광명중에 먼저 두 발바닥으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큰 지옥을 비추어 지옥 중생들의 고통을 소멸하였다. 두 발바닥은 사람 몸의 가장 밑이므로 지옥중생을 상징한 것이다. 또 설사 하루종일 고통만 받는 지옥과 같은 삶을 살더라도 진리의 광명과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받는 이라면 그는 곧바로 지옥의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여래의 직책을 맡은 10지보살의 덕화가 이와 같음을 밝혔다.
於兩膝輪에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諸畜生趣하야 滅衆生苦하며
“두 무릎으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여러 축생 갈래에 비치어 중생들의 고통을 소멸하였느니라.”
▶강설 ; 양 무릎은 축생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상징하였다. 또 설사 축생과 같이 하루종일 먹고 배설하는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이라도 진리의 광명과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받는 이라면 그는 곧바로 그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여래의 직책을 맡은 10지보살의 덕화가 이와 같다.
於臍輪中에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閻羅王界하야 滅衆生苦하며
“배꼽에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염라왕 세계에 비치어 중생들의 고통을 소멸하였느니라.”
▶강설 ;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에 살면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사문과 도인을 공경하지 않으며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이가 염라왕이다. 비록 왕으로서 중생들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그들은 모두 지옥에서 살고 있다. 지장보살과 같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업에 이끌려 염라왕이 되었다면 그 삶이 오죽하겠는가.
염라왕오천사자경(閻羅王五天使者經)에 의하면 “염라왕은 지옥에 떨어진 이에게 이승에서 자기가 보낸 5명의 천사(天使)를 보았는지 묻는데, 그 5명의 천사란 태어나는 모습ㆍ늙는 모습ㆍ병든 모습ㆍ죽는 모습ㆍ죄짓고 관리에게 잡혀 형벌 받는 모습이다. 이렇게 5가지의 모습 속에서도 무상함을 알지 못하고 악업만 일삼으며 선행(善行)에 힘쓰지 않고 경(經)과 계(戒)를 받들거나 몸과 입과 마음을 단정히 하지 못한 점을 문책하고 그에 따른 형벌을 가한다.”고 하였다.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이에게도 진리의 광명과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받게 되면 그는 곧바로 그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여래의 직책을 맡은 10지보살의 덕화가 이와 같다.
從左右脇하야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一切人趣하야 滅衆生苦하며
“좌우의 옆구리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인간에게 비치어 중생들의 고통을 소멸하였느니라.”
▶강설 ; 석가모니는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근거하여 석가모니는 바라문 다음의 왕족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또 옆구리는 인체의 중간이기 때문에 좌우의 옆구리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인간에게 널리 비치어 중생들의 고통을 모두 소멸한다고 하였다.
從兩手中하야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一切諸天과 及阿修羅의 所有宮殿하며
“두 손바닥으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천상과 아수라들의 궁전에 널리 비치었느니라.”
▶강설 ; 육범사성(六凡四聖)을 십계(十界)라 한다. 십계는 6종의 범부계(凡夫界)와 4종의 성자계(聖者界)로 나눈다.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의 6계를 6범(凡)이라하고, 성문(聲聞)ㆍ연각(緣覺)ㆍ보살(菩薩)ㆍ불(佛)의 4계를 4성(聖)이라한다. 이것은 불교일반에서 나누는 법이고 이 경문에서는 위에서 나열된 것과 같다. 즉 인간 다음에 아수라가 나왔다. 10지 보살이 두 손바닥으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천상과 아수라들의 궁전에 널리 비치었다.
아수라는(阿修羅)는 6도의 하나며, 10계(界)의 하나다. 아소라(阿素羅)ㆍ아소락(阿素洛)ㆍ아수륜(阿須倫)이라 음역하는데, 줄여서 수라(修羅), 비천(非天)ㆍ비류(非類)ㆍ부단정(不端正)이라 번역한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다. 인도에서 가장 오랜 신의 하나이기도 하다. 리그베다에서는 가장 수승한 성령(性靈)이란 뜻으로 사용하고, 나중에는 무서운 귀신으로 인식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그리고 실재하든 아니든 10지 보살은 두 손바닥으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천상과 아수라들의 궁전에 널리 비치어서 선한 경지로 만들었다.
從兩肩上하야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一切聲聞하며
“두 어깨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성문들에게 비치었느니라.”
▶강설 ; 다음에는 광명이 두 어깨로 올라왔다. 즉 네 선자의 세계로 올라온 것을 상징하였다. 네 성자 중에서는 성문이 가장 낮다. 성문은 3승의 하나이다. 가장 원시적 해석으로는 석존의 음성을 들은 불제자를 말한다. 대승의 발달에 따라서 연각과 보살에 대할 때는 석존의 직접 제자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교법에 의하여 3생(生) 60겁(劫) 동안 4제(諦)의 이치를 관하고, 스스로 아라한 되기를 이상(理想)으로 하는 1종의 저열한 불도 수행자를 말한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을 소승의 다른 이름처럼 보고, 성문으로 마치는 이와 대승으로 전향(轉向)하는 이를 구별하여 우법(愚法)ㆍ불우법(不愚法)의 2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10지 보살은 두 어깨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성문들에게 비치어 그들을 모두 보살대승으로 나아가게 한다.
從其項背하야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辟支佛身하며
“목덜미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벽지불들의 몸에 비치었느니라.”
▶강설 ; 벽지불(辟支佛)은 발랄예가불타(鉢剌翳伽佛陀)ㆍ벽지가불(辟支迦佛)이라고도 쓰며, 연각(緣覺)ㆍ독각(獨覺)이라 번역한다. 꽃이 피고 잎이 지는 등의 외연(外緣)에 의하여 ‘스승 없이 혼자 깨닫는 이’라는 뜻으로 연각이라 하고, 혼자 깨달았거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지 않고 혼자 누리고 만다는 뜻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연기의 이치를 깨달은 이, 또는 혼자 깨달은 이라 하면 석가모니도 역시 벽지불이며 연각이며 독각에 해당된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깨닫고 나서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즉 열반과 해탈을 많은 중생들에게 베풀고 나누려고 80노구를 이끌고 인도의 그 뜨거운 햇빛을 견디면서 전법의 길을 다니신 자비와 지혜의 보살행이 있었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대승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아무튼 10지 보살은 목덜미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벽지불들의 몸에 비치어 그들을 모두 대승보살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從其面門하야 放百萬阿僧祇光明하야 普照十方初始發心과 乃至九地諸菩薩身하며
“얼굴로 백만 아승지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과 내지 9지 보살의 몸에 비치었느니라.”
▶강설 ; 보살(菩薩)은 보리살타(菩提薩埵,bodhisattva)의 준말이다. 부살(扶薩)ㆍ살타(薩埵)라고도 하고, 각유정(覺有情)ㆍ깨달은 중생ㆍ개사(開士)ㆍ대사(大士)ㆍ시사(始士)ㆍ고사(高士)라 번역한다. 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넓은 의미로는 일반으로 대승교에 귀의한 이며, 보살이란 것은 큰마음을 내어 불도에 들어오고, 4홍서원을 내어 6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3아승지 100겁의 긴 세월에 자리(自利)ㆍ이타(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位)의 수행 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