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수필
도쿄(東京)에서 아다미((熱海)온천까지
오전 9시경에 모두 사진관으로 갔다. 외손녀딸 돌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사진관은 도쿄시내 딸이 사는 아파트 바로 맞은편이다.
가족사진 먼저 찍고 손녀딸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지를 아는지, 그 자리에 서서 여러 동작을 취하고 웃는 것도 예쁘게 웃는 등 제법 포즈를 취해준다.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서 고르는 작업을 하는데, 어느 사진을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좋은 사진이었다. 사진관 주인 가족들의 몸에 베인 친절은 여기가 일본의 수도임을 알려주는 듯 소름 끼지는 감탄이다.
오후에는 사위가 휴가를 얻어 온천 여행을 하기로 했다. 신간센(新幹線) 열차를 타고 온천에 간다고 했다. 사위의 여동생 하루미(春美)양은 중학교부터 대학(한양대)까지 한국에서 다녔기 때문에 한국말을 너무나 잘한다. 하루미(春美)양은 한국어 통역사로, 영화촬영 현장 등에서 통역사로 일하는데, 도쿄(東京)시내 관광은 하루미(春美)양이 시켜준다고 했다. 아내는 딸의 두 시누이가 한국말을 잘해서 모여 앉아 이야기 하다보면 사위만 일본 사람이고 모두 한국사람 같다고 몇 번이고 말하며 좋아한다.
하루미(春美)양은 아내와 나를 다찌가와(立川) 전철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가면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위와 딸은 아기를 보듬고 함께 전철역까지 걸어갔다. 하루미(春美) 양의 차가 경차이기 때문에 다 못 타기도 하지만, 전철역까지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여서 걷는데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은근한 질서의식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도착시간을 맞추려고 늦게 출발하였지만 우리가 전철역에 도착했을 때는 딸 일행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전철을 탔다. 도쿄역(東京驛)이 가까워질수록 빌딩 숲이었다. 도쿄역(東京驛)에서 신칸센(新幹線)열차로 갈아탔다. 우리가 탄 신칸센 열차는 쉬어가는 역이 많아 250km이상 속력은 내지 않는다고 했다. 열차가 쉬어있을 때 반대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고속열차는 열차의 모양은 보이지 않고, 무늬만 보이는 느낌이었다.
신요꼬하마(新橫浜)와 요꼬하마(橫浜)도 지난다. 도쿄(東京)에서 멀어질수록 일본 전통가옥과 일본 농촌의 풍광이 보이는 것이었다.
온천에 갔다가 오늘 바로 집으로 올 줄 알고, 캠코더와 물은 상극이기에 캠코더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1시간 이상을 달려 ‘아다미(熱海)’에 도착하였다. ‘아다’의 한문 표기가 熱이다. 뜨겁다는 얘기다. 우리도 갑자기 뜨거운 것을 만질 때 ‘앗다 뜨거워!’한다. 어원이 그런데서 생긴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아다미(熱海)가 온천지구이기 때문이다.
내려서 사위는 호텔에 전화하여 차를 나오라고 하는 모양이다. 차가 나오기 전에 근방 구경을 했다. 조형물에 일본의 역사적 인물 등을 넣어 의미부여를 한 것 등이 인상적이다.
호텔에 도착하였다. 8층에 여장을 풀고 바로 온천욕을 했다. 온천욕을 하고 바로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자고 간단다. 정희가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저녁식사 전에 일본식 옷으로 갈아입고 1층 온천에 갔다. 기대한 것보다는 시설이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물은 맑았다. 따뜻한 물이 다. 온천수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 물어보았다. 온천수가 “맞다.”며 물이 남아돌아간단다.
1시간도 못되어 사위는 나가자는 시늉을 하였다. 나와서 동전 100엔을 넣고 기계안마도 받아보았다.
바다가 훤하게 보이는 호텔 8층은 다다미방이다. 저녁식사는 우리가 머무는 방에 차려주었다. 개별적으로 여러 음식이 나왔다. 몇 점 안되는 것 같아도 다 먹기에는 부담 가는 음식의 양이다. 술기가 있는 매실 엑기스 한 잔,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도 내다 마셨다. 자리도 호텔 측에서 깔아주었다. 손녀딸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잘 논다.
바다에는 배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해수욕장이 있는 바다도 아니란다. 그래서인지 바닷물이 깨끗하고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웠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다. 아다미(熱海)의 밤하늘은 별빛과 별빛을 감싼 어둠의 바다였다.
한 번 더 온천탕에 들어갔다가 잠을 자기로 했다. 손녀딸은 자고 있다. 자다 깰 것을 예상하여 아내와 정희가 먼저 탕에 가고 사위와 나는 남았다. 피곤함이 늦게 가도록 하였는지도 모른다.
기차 소리가 해조음(海潮音)이 되어 크고 가깝게 들려온다. 그 소리는 파도에 부딪쳤다가 오는 모양이다. 파도소리만은 아닌 해조음은 일본에서 나만이 느끼는 정취 같았다.
두 번째 온천탕에 들어갔을 때는 땀이 빨리 나고 더웠다. 시간적으로 첫 번째 보다 빨리 탕에서 나왔다. 히로시는 땀이 많이 나는 나를 콧물로 보았는지 감기 걸린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정희가 “아빠 감기 걸렸어?”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다미(熱海) 온천의 날이 밝아온다. 바다는 어슴푸레한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항구가 아니어서인지 바다에는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사라지는 바다는 점점 은빛 파도로 찰랑거리고, 바닷가 우거진 숲에선 산새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아, 아름다운 아다미의 아침이여! 어제 가져오지 않은 캠코더 생각이 더 간절하다.
어제 밤 23:30경에 취침했는데, 아내는 “아, 잘 잤다. 화장실 한번 안 가고 잘 잤다.”고 말한다. 자다가도 몇 번씩 화장실에 가는 아내는 그만치 푹 잤다는 얘기다.
아침 목욕은 상쾌했다. 손녀딸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위와 목욕을 갔다. 어제보다 덜 뜨거운 것 같다. 간단히 하고 돌아왔다.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혼자 목욕하러 간 모양이다. 해는 이미 열 발이나 솟아있었다. 바다 물결은 잔잔하다. 아다미의 하루는 그렇게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해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 일본의 동쪽에 아다미는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아침은 3층으로 내려가 공동으로 식사를 했다. 거의 노인들이다. 한 상에 두 명씩 앉아서 식사를 한다. 현재 일본도 노인 문제가 사회문제는 아닐까를 생각해본다.
아다미 역으로 가기 전에 평화통(平和通)이란 시장에서 구경하였다. 먹거리와 화장품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시장이 깨끗한 것 외에는 우리의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신칸센(新幹線) 열차를 타고 어제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 도쿄역(東京驛)에서 내려 전차를 탔다. 60년대 우리의 전차와 비슷하다. 전차에서 내려 도쿄항(東京港)에 갔다. 거기서 유람선을 타고 도쿄의 바다 구석구석을 관광할 수 있었다. 도쿄타워보다 더 높은 도쿄스카이트(634m)가 공사 중인 것도 보았다.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배에서 사진을 찍고, 일본에서 제일 큰 어시장인 중앙어류(中央魚類)를 지나고 부산영도다리 모양으로 큰 배가 지나갈 때 올라가는 다리도 보았다. 요미우리신문( 讀賣新聞)사의 큰 건물도 보인다. 바다를 정교하게 양쪽으로 갈라 그 안으로 배가 다니게 한 일본인들. 아사이맥주의 상징물이 꼭 똥 같이 생겼는데, 불꽃의 상징이라 했다. 강처럼 생긴 바닷길을 따라 도쿄(東京)시내의 곳곳을 보면서 배에서 내려 늦었지만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일본 소바를 먹으려고 했는데, 딸이 밥 종류로 들라고 해서 시켜놓고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시무외(施無畏)라 쓴 액자가 보인다. 불교를 믿는 집이구나 생각하면서 자세히 보았더니 식당 한쪽 구석에 불단을 조그마하게 차려놓고 전기촛불을 밝혀놓았다. 그 옆 벽에는 관세음보살상을 그림으로 붙여놓았다. 불교가 우리나라의 통합불교와는 달리 조상 숭배적 사상과 융합되어 종파불교임이 확인된 셈이다. ‘시무외(施無畏)란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선운사의 대웅보전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부처님의 수인(手印)이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이때 역시 ‘나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수인인 것이다. 일본 밥이 어찌 우리의 밥맛과 같으랴.
도쿄(東京)시내 한 복판에 있는 금용산(金龍山) 천초사(淺草寺)를 갔다. 淺(얕다. 엷다. 부족하다)의 약자로 천초사라 했다. 딸은 천자의 약자를 “얕은 곳을 뜻한다.”고 말한다. 옳게 알고 있었다. 지대가 얕은 곳이니 저지대임이 분명하다. 허나 도쿄(東京)시내 전체가 평지 같아 어디가 저지대인 줄 알 수가 없었다.
금용사(金龍山) 사천왕인 듯한 문을 지나 곧게 가면 천초사(淺草寺)가 나온다. 금용산(金龍山) 문에서부터 천초사까지 양쪽으로 천막 같은 상점이 길고 화려하게 늘어서 있고, 중간 길에는 관광객이 발 디딜 틈이 없이 많다. 사무행사(寺舞行事)인 듯 금색 용(龍)을 막대로 10여명이 받쳐 들고 비룡9飛龍)의 내며 천초사로 갈 예정인 것 같았다. 이른바 사무행사를 운 좋게 본 것이다. 금빛용과 일본식 가마를 탄 여인들이 피리인 듯한 악기를 불면서 용의 뒤를 따르고, 일본식 의상과 짙은 화장 등이 일본의 수도에 온 것을 느끼게 한다.
사천왕인 듯한 형상이 사천왕인 줄 알았더니, 사천왕이 아니고 번갯불을 방지하는 신이라고 한다. 두 번째 문에 또 사천왕상 같은 조형물이 두 분 서 있는데, 사천왕상 아니면 금강역사로 추측해본다. 천초사 안에는 부처나 보살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만다라(曼多羅) 식의 부호 앞에 한국 절의 복전(福田)인 듯 싶은 큰 상자에 돈을 넣고 일본식 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절 안에도 시무외(施無畏)란 현판이 새겨져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말하는 듯하였고, 천장에는 연꽃을 든 동자 2명이 비천(飛天)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어있었다.
금용산문(金龍山門) 왼쪽에 5층 탑이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듯 높이 솟아 있는데, 탑 안은 사람이 계단을 통하여 올라가는 옥탑(屋塔)이었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나 금용산이나 천초사와 더불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화려하면서도 웅장하였다.
금용산에서 천초사까지 약 1km 길 양 옆에 각종 상가가 쫙 들어서 있는데, 그 안에는 그야말로 비켜서기도 힘들 만큼 사람들이 빽빽하다. 토, 일요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단다.
천초사에서 나와 신교역(新橋驛)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왔다. 다찌가와역(立川驛)에서 집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출퇴근 시간의 역 안은 정말 붐볐다. 일본의 수도다웠다. 그러나 도로사정은 우리가 훨씬 깨끗하고 넓게 보였다.
피곤했다. 아내는 베게도 없이 설핏 잠이 들었다. 샤워하고 TV 앞에 잠간 앉아 있는 듯 하였는데, 23:30을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