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연초면 한내리, 달성 서씨(達城徐氏) 경의재(敬義齋)와 병암사(屛巖祠)>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다음 소개하는 ‘경의재기[敬義齋記]’는 연초면 명상리 출신으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거제도 최고의 유학자였던 명계(明溪) 김계윤(金季潤 1875∼1951) 선생이 기록한 글이다. 명계 선생은 거제학자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선생과, 곡구(谷口) 정종한(鄭宗翰 1764~1845) 선생과 더불어 거제도 출신으로서 현재까지 한문학 문집을 남긴 유일한 분이다. 그리고 한내(汗內)의 옛 지명은 한해(捍海)였다. 고종(高宗) 26年(1889년) 한내리(汗內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연초면 한내리의 경의재(敬義齋)는 서씨 집안에서 학문을 닦던 재사(齋舍)이고 병암사(屛巖祠)는 달성 서씨 집안의 사당이다. 옛날 ‘경의재‘는 6개의 기둥 즉, 5칸의 건물이었다.
◯ 다음 글은 명계(明溪) 김계윤(金季潤) 선생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자신의 출생지 한내를 방문해서, 서씨 집안의 경의재(敬義齋)를 직접보고 소회를 간략히 적은 글이다. 경의재(敬義齋)는 서씨 집안의 의(義)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역>이나 남명 조식이 주장한 철학인, “경(敬)과 의(義)를 스승으로 삼아라.” “군자는 경(敬)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한다.”는 교훈적인 철학을 실천하고자 세운, 재사(齋舍 공부하던 집)의 명칭이다. 또한 서씨 집안 후예들에게 당부한 가훈이자, 마음에 담으라는 글귀이기도 하다.
● 경의재기[敬義齋記] 연초면 한내(한해,捍海). 달성 서씨(達城徐氏) 재사(齋舍) / 김계윤(金季潤 1875∼1951)
나의 고향은 옛 읍치(고현성)의 북쪽 물가에 있는데 앵산(鶯山)이 우뚝 솟아있고 수 리(里)를 넘어 가야한다. 그 서남쪽에 마을이 있는데 한해(捍海, 현 한내)라고 한다. 서씨(徐氏)가 오랫동안 거주해왔다. 근년에 창립한 선조의 사당은 바위가 병풍을 친 듯한 병암(屛巖) 아래 1궁(一弓, 6척 또는 8척)의 땅이었다. 사당 앞 좌측에 건립한 재사(齋舍)는 6개의 기둥과 문미로 세웠고 경의(敬義)를 표하며, 서군(徐君)의 자취는 영보(英甫)에 있고 여기에서 거주했다. 교훈적인 집안의 자제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였다.
일찍이 나에게 청하기를, “놀이삼아 사당을 구경하려 오세요“ ”붉은 재사(齋舍)가 빛나고 아름다우니, 이른바 사당의 문이 화창하게 반겨줄 것이다.“ 하였다. 그대가 말하길, “처음 창건할 때에는 힘이 미력한 땅이라 재실을 기록할 수 없었으나 원컨대 한 말씀 높이 걸게 해주소서.” 하여, 나는 “그 집안사람도 아닌데 어찌 감히 도둑질하듯 읊으며 그침 없이 입을 놀리랴”하였다.
《주역》〈곤괘(坤卦) 문언(文言)〉에 “군자는 경(敬)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한다.” 진서산(眞西山)의 경의재명(敬義齋銘)에도 “경(敬)과 의(義)를 스승으로 삼아라.”했고, 산해부자(山海夫子, 남명 조식) 또한 “우리 집에 경의(敬義)가 있는 것은 하늘에 일월(日月)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금 덕산(德山)에 경의당(敬義堂)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지금 그대가 거처하고 잠자는 여기에서 마음의 안(內)을 주장하여 경(敬)으로써 곧게 하고 밖으로 일에 응해라. 바야흐로 의(義)로써 선조의 사당을 제향하는 땅에서 정성을 다해 경(敬)을 이루어내고 후생(後生)에게 겸손하라. 인(仁)을 따르고 의(義)를 행하라. 앞으로 곧게 보고 학도(學道)를 수행(修行)함이 서씨 집안의 의(義)이다.
[吾鄕舊治之北澨有鶯山屹立跨數里 而其西南有村曰捍海也 徐氏居之者久矣 頃年創立先祠於屛巖下一弓地因卽祠前之左建齋舍六楹楣以敬義徐君實英甫居是而敎訓門子弟者夙矣 嘗請余以遊賞祠之丹雘齋之華美可謂閎暢矣 君曰綿力創始之地齋尙無所記願得一言之揭 余非其人何敢開喙無已則竊有誦焉 易坤二曰敬以直內義以方外眞西山亦有敬義齋銘而山海夫子亦曰吾家之有敬義猶天之有日月今德山敬義堂以是也 今君居宿於是心主於內而直之以敬事應於外而方之以義先祠祭享之地 克誠盡敬後生揖遜之地蹈仁行義則將見直方之道行於徐氏之門矣]
● 올린 사진들은 전국의 각종 재사(齋舍) 모습이다. 그리고 차후에 거제도 윤씨, 옥씨, 제씨 집안의 글도 차례로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