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제(齊) 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열녀(烈女)는 두 사내를 섬기지 않는다.”하였다. 이는 『시경(詩經)』의 「백주(栢舟)」편과 같은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전에서는 “다시 시집 간 여자의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라고 하였다. 이 법을 어찌 저 모든 평민들을 위해서 만들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시작된 이래 사백 년 동안 백성들은 오래오래 교화(敎化)에 젖어 버렸다. 그래서 여자들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집안의 높낮음도 가리지 않으면서, 절개를 지키지 않는 과부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드디어 풍속이 되었으니, 옛날 이른바 ‘열녀’가 이제는 과부에게 있게 되었다. 시골의 젊은 아낙네나 뒷골목의 청상과부들을 부모가 억지로 다시 시집보내려는 것도 아니고, 자손의 벼슬길이 막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과부의 몸을 지키며 늙어 가는 것만으로는 수절하였다고 말할 만한 게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광명한 햇빛을 스스로 꺼 버리고 남편을 따라 저승길 걷기를 바란다. 물불에 몸을 던지거나 독주를 마시며, 끈으로 목을 졸라매면서도, ㉠마치 극락이라도 밟는 것처럼 여긴다.그들이 열렬하기는 열렬하지만, 어찌 너무 지나치다고 하지 않겠는가.
(나) 내가 안의(安義) 고을을 다스리기 시작한 그 이듬해인 계축년 어느 날이었다. 밤이 차차 샐 즈음에 내가 어렴풋이 잠이 깨어 들으니, 청사 앞에서 몇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다시 슬피 탄식하는 소리도 들렸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데도 내 잠을 깨울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제야 소리를 높여 “닭이 울었느냐?”라고 물었더니, 곁에 있던 사람이 대답하였다.
㉡“벌써 서너 번이나 울었습니다.”
“바깥에 무슨 일이 생겼느냐?”
“통인(通引) 박상효의 조카딸이 함양으로 시집가서 일찍 과부가 되었습니다. 오늘 지아비의 삼년상이 끝나자 바로 약을 먹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 집에서 급하게 연락이 와서 구해 달라고 하지만 상효가 오늘 숙직 당번이므로 황공해하면서 맘대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빨리 가 보라.”고 명령하였다. 날이 저물 무렵 ㉢“함양 과부가 살아났느냐?”라고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묻자 “벌써 죽었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서글프게 탄식 하면서 “아하 열렬하구나. 이 사람이여.” 하고는, 여러 아전들을 불러다 물었다.
“함양에 열녀가 났는데. 그가 본래는 안의(安義) 사람이라고 했지. 그 여자의 나이가 올해 몇 살이며, 함양 누구의 집으로 시집갔었느냐? 어릴 때부터의 행실이 어떠했는지 너희들 가운데 잘 아는 사람이 있느냐?”
여러 아전들이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박씨 집안은 대대로 이 고을 아전이었는데 그 아비의 이름은 상일(相一)이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죽은 뒤로는 이 외동딸만 남았는데, 그 어미도 또한 일찍 죽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할아비와 할미 손에서 자라났는데, 효도를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열아홉이 되자, 함양 임술증(林述曾)에게 시집와서 아내가 되었지요. 술증도 또한
대대로 함양의 아전이었는데 평소에 몸이 여위고 약했습니다. 그래서 초례(醮禮)를 치르고 시집으로 가서 반년도 채 못 되어 술증이 죽었습니다. 박 씨는 그 남편의 초상을 치르면서 예법대로 다하고, 시부모를 섬기는 데에도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고을의 친척과 이웃들 가운데 그 어진 태도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정말 그 행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한 늙은 아전이 감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 여자가 시집가기 몇 달 전에 어떤 사람이 말하길 ‘술증의 병이 골수에 들어 살 길이 없는데, 어찌 혼인날을 물리지 않느냐.’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할아비와 할미가 그 여자에게 가만히 알렸더니, 그 여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답니다. 혼인날이 다가 와 색시 집에서 사람을 보내어 술증을 보니, 술증이 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폐병으로 기침을 했습니다. 마치 버섯이 서 있고 그림자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답니다. 색시 집에서 매우 두려워하며 ㉣다른 중매쟁이를 부르려 했더니, 그 여자가 얼굴빛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지난번에 바느질한 옷은 누구의 몸에 맞게 한 것이며, 또 누구의 옷이라고 불렀지요? 저는 처음 바느질한 옷을 지키고 싶어요.’ 그 집에서는 색시의 뜻을 알아차리고 원래 잡았던 혼인날에 사위를 맞아들였습니다. 색시는 비록 혼인을 하였다지만 사실은 빈 옷을 지켰을 뿐이랍니다.”
얼마 후 함양 군수 윤광석이 밤중에 기이한 꿈을 꾸고 감격하여 「열부전」을 지었다. 산청 현감 이면제도 또한 그를 위하여 전(傳)을 지어 주었다. 거창에 사는 신돈항도 문장을 하는 선비였는데, 박 씨를 위하여 그 절의(節義)를 서술하였다. 박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한결같았으니, 어찌 스스로 “나처럼 나이 어린 과부가 세상에 오래 머문다면 길이길이 친척에게 동정이나 받을 것이다. 이웃 사람들의 ㉤망령된 생각을 면치 못할 테니, 빨리 이 몸이 없어지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랴?
아아, 슬프다. 그가 처음 상복을 입고도 자결하지 않았던 것은 장사를 지내야 했기 때문이었고, 장사를 끝낸 뒤에도 죽음을 참은 것은 소상(小祥)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상을 끝낸 뒤에도 죽음을 참은 것은 대상(大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대상도 다 끝나서 상기(喪期)를 마치자, 지아비가 죽은 것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어 그 처음의 뜻을 이루었다. 어찌 열부가 아니겠는가?
어휘 풀이
*소상: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
*대상: 사람이 죽은 지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
0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전기적 요소를 활용하여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② 공간적 배경이 바뀌면서 서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③ 예화의 나열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④ 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이 사건 전개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⑤ 대화를 통해 인물의 내력과 행실을 요약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02 <보기>는 윗글의 (가), (나)를 간략하게 도식화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것은?
<보기>
(가)
(나)
ⓐ박 씨의 생애
→
ⓑ박 씨의 죽음에 대한 반응과 서술자의 논평
ⓐ박 씨의 생애
→
ⓑ박 씨의 죽음에 대한 반응과 서술자의 논평
① (가)는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도입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② (가)에서 서술자는 과부의 개가 금지라는 풍속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③ (나)의 ⓐ는 서술자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직접 들은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다.
④ (나)의 ⓑ에서 사대부들은 박 씨가 죽자 그녀를 위한 글을 지었다.
⑤ (나)의 ⓑ에서 서술자는 박 씨의 죽음이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03 ㉠~㉤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것은?
① ㉠: 남편을 따라 자결하는 것을 영예롭게 여기는 세태를 빗댄 표현이다.
② ㉡: 박상효를 빨리 함양으로 보내 주고 싶은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③ ㉢: 박 씨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서술자의 바람이 담긴 표현이다.
④ ㉣: 임술증과 파혼하고 박 씨를 다른 사람과 혼인시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⑤ ㉤: 박 씨와의 혼인으로 인해 임술증의 병세가 나빠졌다는 의혹과 관련이 있다.
도움자료
[2015 EBS 인터넷 수능] 문학(B)
10 박지원, 「열녀함양박씨전」
01 ⑤ 02 ⑤ 03 ⑤
작가인 박지원이 실제로 안의 현감으로 재직하던 때에 겪었던 사건을 토대로 지은 작품이다. 개가를 금지해서 평범한 여인들까지 자살을 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일찍 과부가 된 여인이 깊은 고독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동전을 굴리면서 아들 형제를 키운 이야기를 삽화로 넣어 수절의 어려움을 밝힌 소설이다. 작가는 함양 박 씨의 죽음에 대해 그 여인의 평소 행실에 드러난 덕을 기리면서 한편으로 정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목숨을 버리는 우리나라 열녀 풍속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수절을 하는 여인들의 고통과 열녀 풍습의 문제점
전체 줄거리
박상효의 조카딸인 박 씨는 대대로 고을 아전을 지낸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릴 때부터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는데, 효도가 극진하였다. 19세에 함양의 임술증에게 시집갔으나, 술증이 본디 병이 있어 혼인을 한 지 반년이 못 되어 죽었다. 박 씨는 초상을 치른 뒤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여 시부모를 섬기다가 남편의 대상 날에 약을 먹고 죽고 만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⑤
이 글은 서술자가 질문을 하고 아전들이 답변하는 대화 형식을 통해 박 씨의 내력과 행실을 요약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① 이 글에 전기적 요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② 이 글에서 공간적 배경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③ 대화를 통해 박 씨와 관련한 예화의 나열은 확인할 수 있으나 그것이 박 씨의 심리 변화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④ 이 글에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글의 아전들은 서술자에게 박 씨의 삶과 행실을 알려 주고 있을 뿐이다.
02 서사 구조에 따른 작품 감상 ⑤
박 씨가 정혼한 사람과의 혼인을 고집하고, 남편이 죽은 후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며 삼년상을 치른 것은 당대의 규범과 풍습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지,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은 아니다. 이 글에서 박 씨가 남편을 사랑했다는 구체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다.
① (가)는 박 씨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화제를 제시하는 도입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② ‘그런데 우리나라 법전에서는`~`저 모든 평민들을 위해서 만들었겠는가?’, ‘그들이 열렬하기는 열렬하지만, 어찌 너무 지나치다고 하지 않겠는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③ 서술자가 아전들에게 전해 들은 박 씨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④ 함양 군수 윤광석, 산청 현감 이면제, 거창에 사는 신돈항 등은 박 씨의 죽음을 절의를 지킨 행동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박 씨에 대한 글을 지은 것이다.
03 세부 정보의 이해 ⑤
㉤은 젊은 과부인 박 씨가 과연 수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이웃 사람들의 생각과 관련이 있다. 술증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것이 다른 사람을 통해 박 씨의 조부모에게 알려질 정도이므로, 이웃사람들은 박 씨와 혼인해서 술증의 병세가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① 수절을 위해 자결하는 것을 극락을 밟는 것처럼 여긴다는 표현은 수절을 위한 자결을 영예롭게 여기는 세태를 빗댄 것으로 볼 수 있다.
② 닭이 서너 번이나 울었다는 것은 날이 이미 새었다는 의미로 박상효를 빨리 함양으로 보내 주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③ 다음 문장에 나오는 ‘나는 서글프게 탄식하면서’와 연결할 때 서술자는 박 씨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술증의 병세를 전해 듣고 술증의 상태를 확인한 후 다른 중매쟁이를 부르려 한 것이므로, 이는 파혼의 의도가 있는 것이다.
첫댓글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