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엔코 장성 산행일기--
이전에는 출장 등으로 인해 타 지역을 가도 산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나
지금은 그 지역에 무슨 산이 있는지 알아 보는 것도 하나의 준비다.
지난주 출장에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산맥을 경험하기 위해 가급적 기차를 타고 이동 했다.
그것은 섬서성에서 감숙성까지 펼쳐진 산맥 인데 다름아닌 진령(秦嶺)이다.
주봉은 섬서성 보계(宝鸡)에 위치한 태백산이고 해발3767미터이다.
이곳은 중국 대륙 중부를 동서로 가르는 산령(山岭)으로 남방과 북방 경계가 된다.
이를 기준으로 현저한 문화적 차이가 있고 현재도 진령산맥과 장강을 기준으로 북쪽은 난방이 되고 남쪽은 그렇지 않다.
섬서성 보계(宝鸡)에서 사천성 면양(绵阳)까지 이어진 이 산맥을 따라 기차로 간접 산행을 하면서 북경과 사뭇 다른
산들을 밟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특히 보계의 태백산은 꼭 한번 등반하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시간상 여의치 않아, 토요일 산행을 위해 금요일 저녁
북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금주 목적지는 명나라 때 것 그대로 보존된 지엔코 장성이다.
이를 테면 천국의 계단(天梯),북경 매듭(北京结),독수리가 거꾸로 나는 모양(鹰飞倒仰),마법의 성 등이 단조로운
장성 산행에 재미를 더해 주는 곳이다.
출발하는 날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만리까지 뻗어 나간 장성을 감상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생각보다 적은 인원이 신청해 19명이 오붓했다.
경승 고속도로는 주말의 번잡함으로 익숙했고, 이를 잘 아는 우리는 태연한 모습으로 잠을 청하거나 창 밖을 보며
여유로운 마음 이었다.
나는 익숙치 않은 앞자리에서 이전과 달리 하루 일정을 머리 속에 그리며 가끔씩 고문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며
산행 지에 도착 했다.
어줍잖은 구령으로 체조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 하는데 몇주 전과는 너무도 다른 가을이 우리를 맞았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밤이다.
그들은 창문을 열어 마지막 가을 햇살을 쐬며 답답한 구속에서 막 벗어 나고 있었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밤꽃 냄새 진동 하던 천문산 산행이 어제 같은데 벌써 결실을 맺은 토실한 열매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오르니 푸른 잎들 사이로 가을에 기가 꺽인 나무들이 가끔 갈색으로 남달랐다.
하늘은 저만큼 멀어 졌고 공기는 선선하여 모든 초목들이 가을옷을 준비 할 수 밖에 없다.
잘 포장된 길=>포장을 준비하는 넓은 돌 무더기=>본격적인 숲터널 산길이 순차적으로 나와 지겹지 않는 산행이다.
그렇게 경사진 길을 한 시간 가까이 오르니 푸른 하늘에 우뚝한 망루가 이정표 되어 마지막 힘을 준다.
오랜 시간 내려다 보며 적을 경계 하다, 이제는 등산객의 표지석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한 길을 좌측으로 돌아 장성의 잔등에 올라 타고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허물어진 망루에 올랐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절벽을 기어 오르고, 멀리 도망 가는 장성을 축지법 같이 끌어 당겨 미동도 못하게 하고 기념 했다.
후대와의 무전은 인원이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언제나 신명 나게 날아 다니며 조금이라도 틀린 방향에는 구체적으로 질책한다.
절벽을 따라 오르는 장성에는 중국인 등산객이 붙어 있고, 그 뒤로 우리 팀도 용기를 내었지만 정체된 앞길과
굴러 내리는 돌로 인해 포기하고 안전한 곳으로 우회 했다.
숲길을 따라 뒤쪽으로 오르니 정상에서의 즐거움이 있다.
그 높은 장성 옆에는 부추 꽃을 따르는 나비가 부드러운 날개 짓으로 가을 낭만을 키운다.
마치 영문 모르고 잡혀 온 병사의 마음속에 있는 고향 여친 나나(娜娜)와의 순정을 기리는 듯 했다.
위정자에게 짓밟혀 힘없지만 순수한 로맨스가 숨어 있는 현장에서 돌아 가며 인증 하고 내려 왔다.
잎떨어지는 가을을 맞아 그늘이 얼룩얼룩한 곳에서 식사 자리를 펴고 숫자를 세어 보니 9명이 오지 않았다.
한사람은 길을 찾지 못하여 후대가 합쳐 질 때까지 식사 장소 바로 위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만 반복 했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라 큰 염려 없이 식사 했고,그 중간 은실님의 안내로 합류했다.
역시 발 없는 무전기라고 깔보지 말고 꼭 붙어 다녀야 서로가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산행지는 무티엔위(慕田峪)방향의 마법의 성이다.
1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천년 성루 그늘을 등에 지고 윷놀이를 하며 가을 산행을 만끽 했다.
나를 포함한 선두는 절벽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마치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장성이 우리를 태우고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힌구름 그림자는 능선 여기 저기에 늘려 있고, 창문같은 장성 구멍에서는 태고의 바람이 들어 왔다.
바깥쪽 힌벽에는 담쟁이가 빨갛게 치장을 해 마치 명나라로 떠나는 특급열차 같다.
어떤 곳은 문이 없이 달리는 기차처럼 위험해서 떨어 질뻔했지만, 반대편 보라색 싸리꽃이 안심 시킨다.
그사이를 넘나드는 도마뱀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998마리까지 세다가 그만 두었다.
그렇게 장성 열차는 마법에 걸린 듯 달까지 달리듯 했는데,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은 한정된 시간 이었다.
마법의 성을 20~30분 정도 앞둔 산마루에서 차는 섰다.
돌아 올때는 완행 기차처럼 중간 중간 그늘 좋은 곳에서 휴식 했다.
몇시간 동안 고대 열차를 탄것 같은 산행은 즐겁고 아름다웠다.
몇달 지나 눈내리는 날 진나라의 겨울 왕국으로 떠나는 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전(经典)의 문을 삐걱이며 하차 했다.
산위 노점에서 꽁꽁 언 물을 사서 마시지 못하는 불만을 녹여가며 하산 하니
벌써 다 내려갔는지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유 있는 시간이라 천천히 걸으며 더 깊게 가을을 느꼈다.
강아지 풀은 갈색 솜털을 흔들었고, 고들빼기는 땅에 바짝 붙어 평수를 넓힌다.
청솔모는 숲속에서 곡선의 저녁을 그리며 배부른 귀가를 한다.
올라 갈 때 없던 밤은 빛을 받아 바닥에 떨어졌다.
입에 넣으니 한바탕 가을 소란을 피우며 고소하게 부서졌다.
말 그대로 오감의 가을를 즐긴다.
본대에 진입해 맥주로 시원하게 등산을 마무리 하고 귀가 길에 올랐다.
짧고, 알찬 산행에 동참한 여러분께 감사하며 후기를 마친다.
--만리장성--
수 천 년의 시간!
휘청이는 능선을 그림자로 버팀목 삼아
승천하듯 구불 되며 달까지 미치는 곳
높은 언덕을 허물어지는 낙타 등처럼 올라
콧노래 같은 여유로움 평지에서 펼쳐 들면
매듭 진 성루에는
허기를 긁는 토기 소리와
배고픈 졸음이 초병의 창을 누인다.
태양에 뒤쳐진 장성이 검어 지면
무명 군복에는 남루한 달빛이 매달리고
상념에는 향수(鄕愁)의 눈물이 오롯하네
어둠이 노을을 태워 밤이 오듯
암흑을 소진한 새벽이 서릿발을 세우면
밤샌 전투의 영혼들이
어머니의 품인 양 산마을 찾아 들던 곳
이제!
만고의 적은 소멸하고 장성의 등줄기는 쇠잔해도
방어의 본능은 분량 없는 시간을 자르며
새로운 천 년을 달린다.
첫댓글 진링에 지엔코우 장성까지.. 가을을 확실히 느끼십니다...
파이팅..
만리장성 열차에서 하차한다니.. 참 시적인 표현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지엔코 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산행~~마법의 성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을 율립님의 글로 달래봅니다~^^
산행과 장성을 열차로 표현한것이
참 재미있네요. 참 잘 했습니다.
운틴님,유니짱님 다음 겨울 왕국 열차 함께 타시길 바랍니다.
공감해 주신 분들께 감사!
겨울왕국 열차라면?
전 엘사???ㅎㅎ.
낼잊고(렛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