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호수♡마리아
▪마태오 28, 16 - 20
+찬미 예수님
오늘은 전교주일이죠?
전교주일에 맞물려 쉬운 질문 하나 할게요.
여러분들 주변에 천주교 신자 아닌 분들 많죠?
그분들이 여러분 성당에 다니는 것 알고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도대체 기독교가 어떤 종교야?’
기독교와 그리스도교는 같은 말이죠?
기독은 한자로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를 포함합니다.
구교와 신교, 개신교와 천주교,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위의 질문에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가장 쉬운 말로 ‘교리반에 나와 봐.’할 수 있지만,
그때 그분에게 딱 꽂히는 말을 해주면, 그분은 그것으로 교리반에 나올 힘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이런 가장 기초적인 것을 누가 물었을 때, 바로 답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전교입니다.
만일 이제껏 살면서 이 질문에 답을 못했다면 공부해야 합니다.
누군가 묻지 않아도 내가 누군가에게 전교하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성당 나와 봐’가 아닙니다.
‘무조건 나와봐.’가 아니에요.
뭔가 이성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끔 가장 기초 중의 기초를 그 사람 마음 밑바탕에 깔아주어야 해요.
그런 다음 동기부여를 해주는 거죠.
서울 방장은 어떻게 답하겠어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을 찾아 나서는 계시 종교이다. 또, 당신이 응답만 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
지금 서울 방장의 답에 핵심은 다 나왔어요.
‘계시 종교이고 하느님 쪽에서 말을 건네는 종교다.’
정답이에요.
계시 종교 이야기를 상식 차원에서 조금 해볼까요?
종교는 크게 계시 종교와 자연 종교, 그리고 무속 신앙이나 민간 신앙이 있습니다.
계시 종교는 말 그대로 인간 쪽에서 무엇인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절대자라 하는 신의 계시로 교리와 그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만들어집니다.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세계 3대 계시 종교입니다.
이슬람의 뿌리도 구약에 있죠.
사라가 아이를 못 낳으니 아브라함이 사라의 몸종을 취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죠.
그런데 이삭을 낳으면서 쫓아내죠.
그때부터 독기를 갖고 유대인과 원수가 된 것이죠.
다시 말해 유대인과 이슬람 민족은 아버지는 아브라함으로 같고, 사라냐 하갈이냐 엄마만 다른 거죠.
이렇게 그리스도교는 앉아서 기다리는 종교가 아니라 태초부터 하느님이 먼저 찾아 나섰던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똑같이 찾아 나서야 해요.
요즘은 불교도 포교원이라 하고 도심으로 내려왔죠.
산속에만 있으면 오는 사람만 기다리게 되니, 찾아 나서기 시작한 거죠.
20여 년 전부터 불교도 선교사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를 모방한 거죠.
오늘 복음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나옵니다.
또 마르코 복음 16장 15절에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나옵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났죠.
아무튼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쫓아냈는데, 하느님 마음은 편하셨을까요?
절대 편하지 않았을 겁니다.
죄짓고 숨어있는 아담을 사실은 선악과 따먹고 난 다음부터 찾아갔잖아요.
하지만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가 벗은 것을 알고 창피해서 나무 뒤로 숨었죠.
하느님이 여느 때와 같이 이렇게 걷고 있으면 반가워서 달려나 올 아이들이 안 보이죠.
그래서 물으시죠.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왜 너와 나의 관계성이 깨졌냐고 물으십니다.
신앙은 관계성입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깨지면 인간은 숨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지면 어느 한쪽은 숨고 안 만나요.
나 자신과의 관계가 깨지면 나를 학대하고 마지막은 자살까지 해요.
인간은 이런 관계성이 깨지면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하느님은 범죄하고 숨어서 덜덜덜 떨고 있는 아담을 찾아가신 거예요.
아담이 ‘하느님, 나 어떡해? 용서해주세요.’ 하며 하느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아담을 찾아가셨죠.
그리고 말을 건네시고 대화를 나누셨죠.
그냥 처음부터 아담이 핑계를 대지 않았다면 어쩌면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해주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아담은 ‘당신이 짝지어 주신 여자’ 때문이라며 하와 핑계를 대죠.
또 하와는 ‘안 먹으려 했는데 뱀이 저것만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해서 할 수 없이 먹었다.’라며 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뱀도 할 말이 없었을까요?
‘내가 사과를 따서 입에 넣어주었니? 그리고 나는 진실만을 이야기했지. 눈이 밝아졌으니 너 벗은 것도 보이잖아?’
나에게는 잘못 없어요.
이것이 유혹의 정체죠.
유혹은 항상 이런 식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서 들어 올 만한 것으로 유혹이 옵니다.
여러분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유혹을 받아본 적 있어요?
저도 교황이 되고 싶은 유혹을 받아본 적 없어요.
아예 못 올라갈 나무는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마귀는 절대 그런 것으로 유혹하지 않아요.
손만 까닥하면 눈 한 번 지끈 감으면 내 주머니에 들어올 것들로 유혹하죠.
그리고 그 유혹한 자도 하느님 앞에서 할 말이 있죠.
‘내가 따서 주었나요, 주머니에 넣어주었나요. 단지 상황 설명만 했을 뿐인데,
자기가 판단했어야지 왜 제가 책임을 집니까?’
아담과 하와가 책임 전가만 안 했어도, 글쎄요, 내가 하느님이라면
‘그래, 큰 경험 했다. 뱀이 어떤 달콤한 이야기 해도 넘어가면 안 돼.’ 하셨을 겁니다.
낙원에서 쫓겨난 결과는 고통과 죽음이죠.
낙원에서 쫓겨난 그 자체가 벌은 아닙니다.
그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고통이 오고, 또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그와 그 후손들은 체험하기 시작한 거죠.
하지만 하느님은 쫓아내고 난 다음에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어요.
그것이 가죽 재킷의 시초가 된 거죠.
또 아담과 하와가 벗은 것을 가리려 나뭇잎을 엮어 가리잖아요?
그것이 바느질의 시작인 거죠.
재봉하시는 분들이 섬겨야 할 분이 하와예요.
지금 제가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면서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했지만,
이 대목에서도 전교가 무엇이고, 또 우리가 찾아다닐 때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이 만일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가지 않고,
그냥 천사를 시켜 내쫓으셨다면 아마 깊은 상처를 받고 나왔을 겁니다.
자기가 규칙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할 말은 없었죠.
하지만 죄를 짓고도 어떤 이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상처를 받는가 하면,
어떤 이는 ‘나 같은 죄인도 다시 살 존재 가치가 있구나’ 합니다.
이것이 치유입니다.
또 가죽옷을 입히면서 그것만 하셨습니까?
‘만일 얘네들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라는 말씀도 하셨죠?
정말 할 수 없이 쫓아내면서도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가 상처를 받고
험한 세상에 나가 고생 덜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신 거죠.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근본적으로 계시 종교라고 하는 것은 치유시키는 종교, 찾아가는 종교,
즉 찾아가서 치유시켜야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요즘 시대는 찾아가는 것보다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서로 대화하면서 얼마든지 전교할 수 있어요.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도교는 방문 오기를 기다리는 종교가 아니라 방문을 다니는 종교이고,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종교가 아니라 찾아 나서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알듯 이런 일은 동생인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잘해요,
천주교는 차갑다는 소리를 듣죠.
제가 언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한 사무실에서 과장, 계장으로 십수 년을 같이 지냈는데, 그 과장은 조그만 고상을 책상에 모셔두고
틈만 나면 레지오 교본 공부하고, 차 타고 다니면서도 묵주기도 하더래요.
자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분이 한 번만 나를 불러주면 나갈 텐데 하면서 15년을 기다렸대요.
과장과 술 먹은 것도 많은데 단 한 번도 성당 나갈 생각 없느냐고 물을 적이 없었대요.
계장은 기다리다 자기 발로 찾아갔어요.
예비자 등록하면 입교 동기에 대부분 평화를 얻기 위해서, 아내의 권유로 등을 쓰는데,
이 사람은 ‘성질나서’라고 쓴 겁니다.
나중에 따로 불러 물으니 이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기는 정말 말 한마디만 하면 나가려고 스텐바이하고 있었대요.
이것이 천주교 신자들의 불성실한 자세를 말해주는 거죠.
개신교 신자들은 하느님이 아담 심방(尋訪) 가듯 심방 가잖아요?
우리는 방문이라 부르지만 사실 심방만큼 좋은 말이 없어요.
‘축복 주러 간다’라는 말이 심방 안에는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방문은 많은 방문이 있을 수 있죠.
빚쟁이의 방문, 판매원의 방문, 강도의 방문 등, 방문에는 축복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있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낮게 세상에 오신 것도 심방 오신 거예요.
구속강생(救贖降生)이라 부르죠.
강생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죄를 안 짓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십계명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할 때마다 예언자도 보내주셨죠.
하지만 구약의 인간들이 해결이 안 되어, 삼위일체 하느님은 누가 갈 것인지 회의를 하셨대요.
그런데 성부는 천국을 지키셔야 하잖아요,
그래서 성부가 가시고 성령도 때가 되면 내려가겠다고 결론을 내렸대요.
그것이 성령 강림이죠.
다시 말하면, ‘너 나 있는 곳까지 올라와.’, 이것은 눈높이 사랑이 아니죠.
똥구덩이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의 자리에 내려가서 팔을 잡아끌고 허리춤을 딱 잡아서
같이 똥을 묻히며 끌고 나오시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죠.
‘나는 고상하고, 먼지 티끌 하나 묻히기 싫으니 네가 올라와. 계명 있잖아. 따라와’
그것이 아니죠.
강생의 신비는 눈높이 사랑입니다.
천사를 시켜 쫓아낼 수도 있는 하느님이 아담을 방문한 것은 바로 눈높이 사랑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직접 찾아오셨죠.
삼위일체 하느님이 인간을 심방하신 것은 징벌을 위함이 아니라, 치유시켜주고 마귀로부터 해방하게 하기 위함이요,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거듭 말하지만 심방하는 종교이고, 심방에는 구속강생과 치유의 의미도 있죠.
어찌 오늘만 전교주일이 되겠습니까?
일년내내 우리 삶 자체가 모두 전교의 날이 되어야 해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심방을 받고 있고, 또 내가 심방을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심방은 그 사람이 가고 나면 내가 더 행복해지고, 더 은혜롭게 변하는 심방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사람만 왔다 가면 내가 지옥에 빠져 아주 기분이 나빠지는 심방이 있어요.
그것을 우리는 영성에서 천사의 심방, 사탄의 심방이라 구분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사탄의 심방을 받아본 적 있고, 천사의 심방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겁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다른 집에 가서 사탄의 심방을 하고 온 적도 있을 겁니다.
분열을 일으키고, 말을 함부로 하여 잔잔하던 가슴에 돌을 던지고도 옵니다.
우리는 스스로 뒤돌아보면 어떤 심방을 하고 왔는지 양심을 통해 압니다.
내가 방문해서 나를 통하여 축복의 심방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의 심방 가운데 2가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첫째, 혼란스러운 심방이 있어요.
공공연히 남의 집에 쏘다니면서 분열을 일으키고 다 깨놓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자가 자기 영혼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만 성령을 받아 하느님을 직접 본다고 하고, 성모님 메시지 들었다 하며,
방문하여 예언하고 겁을 주고, 또 축복을 준다고 하면서 봉투를 노리는 인간들도 꽤 있어요.
몰려다니면서 패거리가 되는데, 그러면 그 인간이 교주 노릇을 하는 겁니다.
또 그 사람들의 추정자도 또 있죠.
본당 신부님들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죠.
북이스라엘에 예로보함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가장 큰 죄는 돈만 내면 제사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투자한 것이 있는 가짜 제사장들은 축복해준다, 예언해준다 하며 돈을 긁어모았죠.
제가 3일 전에도 성모님 메시지 가운데 ‘시대의 징표를 읽어라’를 이야기했죠?
그중 하나가 오류가 번진다고 했죠.
거짓 그리스도라는 교주들이 세상에 범람할 것이라 했습니다.
요즘 우리 주의를 보면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다고 소문이 하면 부도수표 같은 축복도 난발하고,
복점 같은 예언에 취해 무분별하게 그 사람의 심방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아주 교묘하게 다니며 자기의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이 혼란스러운 심방입니다.
또 예전에 피정 지도 갔다가 시간이 남아 어느 자매 집에 갔는데, 반원들이 모여서 문 열어놓고
본당 신부 욕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한 것 기억나죠? 내가 몇 번을 헛기침해도 몰랐어요.
이런 것들이 바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넓은 의미로 사탄의 심방입니다.
천사로 가장하여 들어와 축복을 준다고 하고서 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결과가 좋지 않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자기는 커지고 하느님은 자기 뒤에 혹은 발밑에 내려놓고,
겉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방문했지만, 나중에 보면 자기 자랑해요.
또 사탄의 심방하면 이단들의 방문이 있죠.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제칠일 안식일교회, 구원파, 신천지, 대순진리회 등 수없이 많아요.
이런 곳에서 심방 한번 받으면 큰일 납니다.
여호와의 증인, 그 사람들이 얼마나 끈질깁니까?
그 사람들은 봉고차에서 내려 한 마을에 두 명씩 가요.
봉고차에서 내리기까지 그 과정은 어마어마한 훈련을 받죠.
6개월은 최소 합숙 교리 하면서 성경 달달 외우고, 대상자의 반응에 대처하는 공식을 배운대요.
그리고 소위 장로 6명 앞에서 시험을 보아 모두에게 합격을 받아야 해요.
이렇게 훈련받고 나온 사람들은 상대한다고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가게에 천주교 신자라는 문패 있으면, 그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에요.
왜? 천주교 신자는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또 몰라도 아는 척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붙임성 있는지 몰라요,
가게도 청소해주고, 아이에게도 관심주고, 이것이 다 훈련받은 거예요.
‘신부님, 옆집에 여호와증인 이사 왔는데 사람은 괜찮아요.’
아유. 그렇게 해서 끌려간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하긴, 천주교 신자들은 쌀쌀맞기만 하고, 내가 몇 달을 성당에 안 나가도 옆집에 살아도
‘요즘 안 보이시네요.’ 하면 그걸로 끝나는 거죠.
하지만 사이비종교들의 심방은 사탄의 심방은 맞습니다.
‘축복받으십시오. 파수대 한 번 읽어 보시죠? 하나님의 이름으로 문 두드립니다.’하며 옵니다.
지금 여호와증인과 신천지에 앉아 있는 인간들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제일 많대요.
정말 창피해요.
이런 사탄 심방의 반대가 천사의 심방이지요.
오늘 저를 방문하신 분들의 심방은 천사의 심방이겠죠?
하지만, 이제 여기 왔다 간 후 신부님 접시가 몇 개고, TV가 어떻다는 둥 떠들기 시작하면 웃기는 심방이 되는 거죠.
축복 심방을 하러 온 천사들을 잘 대접하여 역사를 만든 사건이 있죠.
지친 나그네 모습으로 방문한 천사 세 명을 아브라함은 정성껏 대접합니다.
심방의 결과는 축복이었죠.
또, 암 환자를 위해 반원들이 심방해 지극정성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나요.
신약에서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이 자캐오집을 심방하신 일이 있죠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자캐오에게 예수님은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오늘은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다 하시죠.
그리고 집에 가신 후 자캐오의 재산 포기 선언을 들은 후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또, 코르넬리우스 가정도 신약의 대표적 축복 심방 가정으로 나오죠.
우리는 이교인의 집을 방문할 때 항상 그리스도가 동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축복의 기도로 심방을 시작해야 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누군가 방문하면 사담 나누기 전에 무릎 꿇고 기도해주어요.
천주교 집에 와도, 아무리 친한 친구 집이라도 먼저 기도해주어요.
하지만 우리 신자들은 문 열면서부터 너 파마 했구나 하며 수다를 떱니다.
그 집주인은 내 친구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일 어른께 인사드려야지요.
또, 오늘 집을 나서시면서 십자가 앞에서 잠시 서서 예수님께 인사드리고 나왔나요?
우리 신자들의 집주인은 매매계약서에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축복 심방의 시작은 축복기도입니다.
기도 후의 모임은 마귀가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귀가 유리창 밖에서 보니, 들어와서 예수님께 눈길조차 주지 않고 수다만 떨어.
마귀는 이때부터 ‘아, 너희는 내 밥이다.’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기어들어 가서 ‘자 험담 시작! 누구 씹기 시작!’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심방으로 변질하는 거죠.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말씀 선포하고, 병자 고쳐주고, 마귀를 쫓는 능력도 같이 주셨죠.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하는 심방에는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빈손으로 세상에 파견하지 않으셨어요.
여러분이 사적으로 어느 집을 방문하더라도 넓은 의미의 공인입니다.
사제만이 공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세례받았을 때,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여러분도 공인입니다.
여러분도 사제이고, 예언자이고 왕입니다.
그렇기에 파견할 때 예수님이 주셨던 세 가지 능력을 믿으셔야 합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일단 한마디 꺼내 보세요.
‘세상에, 어떻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지?’
그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내 입을 가지고 하시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나, 성당 따라 나갈게.’, 냉담하던 사람이 ‘아, 이제 성사 봐야겠네.’ 합니다.
그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잠시라도 내가 기도해주면 안 될까?’ 해보십시오.
기도해준다는데, 하지 말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 이 집의 장부가 많이 아픕니다.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같이 눈물을 흘릴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 집 아들이 컴퓨터 게임이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면 같이 기도해주세요.
이것이 바로 천사의 심방이고 전교주일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 전교주일은 오늘만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입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어요.
저는 사제로서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살아왔고.
의식이 있을 때까지는 아마 병상에 누워서라도 단 몇 마디라도 강론할 것입니다.
오늘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집안도 돌아보면 전교할 분 많죠? 냉담자도 많아요.
아마 우리 집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야기 아실 거예요.
어머니 동창 숙자 아줌마, 마리아.
옛날에 우리 아버지 사업 실패하시고, 엄마 친정살이하시러 오셨죠.
잘나가던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결혼식 주인공들이 그리되니, 엄마는 우울증에 빠졌어요.
그때 숙자 아줌마가 찾아온 거예요.
엄마 고집이 세서 1년간 나가지 않다가, 일 년 만에 끌려갔죠.
저는 그때 보너스로 엄마에게 붙어서 같이 나가 교리 배우고, 엄마와 같이 세례받았죠.
그 숙자 아줌마 불씨 하나 때문에, 지금은 우리 친가와 외가가 모두 신자가 되었고 사제가 둘이 나오고,
수도 생활하시는 분이 나왔어요.
마리아 아줌마가 우리 엄마 끌어낼 때 이런 역사가 생기리라 생각이나 했겠어요?
제일 친한 친구가 지금 우울하니 끌어내야겠다 하며 ‘그래도 믿음 하나 가져봐’ 한 거죠.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실 때, 자기 집안이 구원받으리라 생각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마리아 아줌마를 통해서 우리 집안은 구원받았거든요.
우리는 어느 한 사람을 전교할 때는 ‘내가 이 사람을 전교함으로써 이 집에 축복이 내릴 것이다.’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도 내 주변에 내가 따뜻하게 말 한마디만 건네면, 혹은 천주교 서적,
신부님 강론 유튜브 강론 소개만 해주어도 나오실 분 있습니다.
실제로 제 강론을 친구가 알려줘서 듣다가 입교하셨다고 이메일 보낸 분들도 있습니다.
결과는 하느님이 만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시작만 하면 됩니다.
찾아 나서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느님의 알아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믿도록 합니다.
아멘
여러분 사랑합니다.
♣2021년 연중 제30주일 (10/24)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