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2월 개통된 거가대교는 물과 섬을 연결시켰다. 국내 최초로 두 개의 사장교와 침매터널은 남해안 실크로드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를 쏘아 올린 다리이다. 최대 수심 48m의 해저터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순전한 우리의 기술력이 동원되었다. 아름다운 해안 절경과 어우러진 수려한 풍경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재촉했고, 그로 말미암아 부산의 대형 백화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매스컴들은 연이어 보도를 내보냈다.
거제도를 오가는 예전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여객선이었다. 해상에 풍랑주의보라도 내리는 날에는 뱃길을 꽁꽁 묶었고,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버스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누구에게나 안태(安胎)고향은 있기 마련이다. 거제도가 고향인 나 역시 마음 언저리에는 늘 비릿한 갯내의 잔물결이 찰랑대고 있다. 도시에서 자란 아들은 시골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의 아련한 향수의 감회를 모를 것이다.
거가대교가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을 때쯤이다. 부산에 살고있는 초등학교 친구 모임에서 고향에 한번, 다녀오기로 의논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고향을 떠난 뒤로 다녀올 기회가 없었던 터라 모처럼 좋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식구들의 식사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우려하던 내 마음과는 달리 흔쾌히 등을 떠밀었다. 그 덕분에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해버린 뒤에서야 고향을 찾아가게 되었다.
뱃길은 과거와 엄청나게 달랐다. 옛날에는 여객선을 타고 세 시간 가깝게 거친 파도에 시달렸다. 앞에서는 육지가 빤히 보이지만 뱃속에서는 토사곽란이 일어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되었던 그 당시 고향 가는 길은 고단하고 지난했다. 그때는 정말 편하게 빨리 갈 수 있는 다리가 하나 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당찮았던 그 바람이 지금 이렇게 현실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탓던 배와 달랐다. 쾌속선은 수십 대의 차량을 싣고 한 시간 남짓이면 거제도에 도착한다고 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이랑을 이루었지만, 흥분에 들뜬 우리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폭소를 자아내며 신나게 웃었다.
승객들의 모습도 달랐다. 승객들이 손에다 과자를 올려놓으면 갈매기들이 날아와 받아먹었다. 뱃길에서 바라봤던 거가대교 대공사의 웅장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물과 섬을 이어 굴을 뚫은 해저터널까지 만들었다니 우리나라의 대단한 건설 발전에 감탄했을 뿐이다.
수다를 떠는 동안 그리던 고향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향의 모습은 마치 TV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지중해의 경치를 직접 보는 듯 정신이 혼미했다. 유럽풍의 빨갛고 파란 뾰족집들이 울창한 숲과 바다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고향이 변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어릴 적 고향이 정겨운 집들은 사라지고 관광객을 위한 펜션과 모텔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경치 좋은 곳에는 틀림없이 지어져 있었다.
부두에는 고향을 지키며 살고있는 친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친구들 역시 세월은 비껴가진 못했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친구, 약간의 건강을 잃은 친구, 영원히 볼 수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모처럼 만난 반가운 친구들 덕분일까, 잊지 못한 거제도의 억샌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을에서 이장 일은 보던 친구가 도다리와 해삼을 잡아 찾아온 도시 여인들의 입맛을 즐겁게 만들었다. 우리는 옛날을 추억하며 바다 양식장 뗏목 위에서 짭조름한 갯 냄새까지 마시면서 즐거운 고향의 하루를 보냈다. 흐르는 세월 앞에 모든 게 변했지만, 우정만큼은 여전히 고향의 맛 그대로였다. 고향 친구란 몇십 년을 만나지 않아도 만남 그 자체가 이루어지는 순간,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날 화제는 거가대교였다. 고향의 엄청난 변화에 객지 친구들은 말을 잃었고,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친구들은 흥분되어 있었다. 배를 타거나 농사일에 매달리던 친구들은 대형조선소가 세워지고 거가대교가 개통되는데 힘입어 하늘 치솟은 땅값으로 부(富)를 축적한 듯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다음날 몇 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칠백 리 한려수도를 일주했다. 눈앞에 보이는 갯벌은 옛날 내 어머니가 바지락을 캐던 텃밭이었다. 살아생전에 모든 고통을 보듬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검푸른 물결 위에 오버랩되었다. 지나치던 찻길 옆으로 예전의 우리 논이었던 곳에도 화려한 양옥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청정의 바다는 예전과는 달리 양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하얀 모래 알갱이가 물결 따라 살랑거리는 바다, 작고 예쁜 돌멩이가 밀려오는 파도에 내 유년의 푸른 추억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고향에서 나는 나그네로 서성이다 황망하게 떠나왔다. 저마다 꿈을 안고 객지로 떠났던 고향이었기에 비릿한 갯 냄새가 더욱 그리웠다.
어느 친구가 말했다. ‘생이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끝으로 갈수록 더 빨리 풀려 버린다’고. 세월은 저만큼 달아나 버렸지만, 마음만은 오롯이 유년의 추억에 맴돌고 있다.
이제 고향은 마음속에 깊이 수장된 채 사계(四季)를 두고 추억을 반추할 것이다.
첫댓글 고향은 엄마 냄새가 나는 곳이지요. 최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거제도 장승포가 고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