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가해)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아집과 비움
자녀들은 한 부모에게서 났지만 모두 다르기에 부모에 게 힘도 되고 때로는 기도 거리도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 의 맏아들과 다른 아들도 천양지차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에서 암적인 존재로 꺼림을 받았던 세리와 창녀들을 맏아들로, 백성의 원로로 사회의 인정을 받고 정치권력을 쥐고 있었던 율법학자들과 수석 사제들을 다른 아들로 지칭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생의 마지막 날을 보내실 예루 살렘에 도착하셨습니다. 시민들은 그분에게 열광적인 환 호를 보내며 정치적 변화를 기대했고, 그분은 성전 상인들 을 쫓아내시면서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득권층의 수 익 체계에 정면으로 맞서셨습니다. 정권을 쥔 수석 사제 들을 배출하던 사두가이들은 예수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 기다 깜짝 놀랐습니다.
율법과 관습의 세세한 준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재건을 기대하던, 율법학자들로 대표되는 바 리사이들은 일찍부터 예수님을 제거해야 할 이로 낙인찍 었습니다.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의 정치적 입장과 신 앙 이해는 상반되었지만,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주저 없이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권력욕과 머릿속을 가득 채운 나만의 생각은 자유와 사랑이 살아 숨 쉬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 들일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녀와 같이 자신의 부족과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스스로 똑똑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배움에서 앞섭니다. 성당에서도 소소한 것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 ‘아냐!’를 외치는 저 자신을 보고 문득 스스로에게 경악합니다. 내 자리와 지 위에 대한 집착, 세월과 함께 굳어지는 마음,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태도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됩니다. 나를 중심에 둔 삶은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나를 품고 있는 대자연이 시야에 들어오고 생명을 선사하시고 동행하시는 주님이 느껴집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므로 내 뜻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 을 때 낙담하지 않고 그분의 섭리를 신뢰합니다.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분의 길을 가로막지도, 그분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지도, 자신의 기준으로 그분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순례자입니다. 완성된 이가 아니라 열려 있는 이며,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3)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필리 2,7 참조) 그 예수님이 하느님의 맏아들이십니다.
- 신정훈미카엘 신부 | 해외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