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마틴 선교사는 1916년 용정 캐나다 선교부에 도착하여 제창병원을 개원하여 용정에서 근대식 진료를 시작한 최초의 서양인 의사입니다.
그는 1919년에 일어났던 용정의 3.13독립 만세 시위의 순국자들의 시신을 병원에 안치하였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부상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1920년에 일어난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만행의 적극적 증언자로 일본의 잔학상을 캐나다와 서방세계에 알렸습니다. 특별히 장암동교회 36인 학살사건을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사진과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래 글은 보고사가 펴낸 <스탠리 마틴 의료 선교사의 편지 1916~1941>61,62,63쪽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저는 혼란스러운 한국상황을 알리기 위해 봉인한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15개의 마을이 불에 탔고 도망가는 한국인들이 총에 맞았다는 확실한 뉴스가 있습니다. 단 지 7명만이 생존했다고 전해집니다. 대략 30개의 기독교 교회가 이미 불에 탔고 많은 경우 교인들이 건물 안에서 불에 탔습니다. 한국인 의사와 우리 병원 비서는 생명을 위해 도망가야만 했고 약제사와 두 명의 외과 도우미들은 구타로 묵사발이 되지 않기 위해 병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구타를 당해서 팔다리가 소켓에서 거의 빠져나온 사람들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하 세탁실에는 19구의 시신 사진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본 경찰이 중국인들에게 시켜 총격으로 희생당한 한국인들입니다. 기독교 소녀 중 한 명은 기독교 남자 학교 교사의 아내인데 그녀는 붙잡혀 갔고 발견 당시 옷이 모두 벗겨진 채로 구타당한 상태였습니다. 이 지역 모든 기독교학교 교사들은 죽었거나 감옥에 갇혔거나 러시아로 도망갔습니다. 이 곳의 여학교 교사는 이 운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한 달 반 동안 갇혀 있는데 부당하게 다루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암스트롱씨는 멍둥과 그 곳에 있는 기독교 학교를 아실 것입니다. 비록 여기는 중국 영토지만 이 곳을 지난 밤에 일본 경찰이 포위했습니다. 어떤 재물이라도 파괴되다면 묵덴에 있는 H.B.M. 영사에게 보고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미 여기에서 총격이 있을 때 이미 연락을 취했습니다.~"
스탠리 마틴 의료 선교사의 편지에서
2024년 10월 28일 묘시
우담초라하니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