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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포쓰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섯 처마에 3층 건물인 바로 다베이거(大悲閣)이다. 높이가 무려 33m나 되는 웅장한 건물 안에 동으로 주조한 22.28m의 천수천안관음보살상(千手千眼觀音菩薩像)이 있기 때문이다.
다베이거에 들어서니 먼저 불상의 다리가 보인다. 고개를 들어 바라봤지만 어두워서인지 불상의 전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곳도 사진을 찍지 못하는 곳이라고 한다. 유물의 가치가 높고 진품일수록 촬영이 까다롭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각 층마다 유물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3층까지 가파른 계단을 다 올라가니 다퉁포(大銅佛) 또는 다베이푸사(大悲菩薩)라고도 하는 천수천안관음의 장엄한 윤곽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송나라 시대인 서기 971년에 세워졌는데 몸체도 훌륭하지만 42개나 되는 팔이 인상적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팔도 있고 안쪽으로 꺾인 팔도 있다. 보듬은 듯한 팔도 있고 쭉 펼친 팔도 있다. 둥근 원을 그리는 듯 빙 두른 팔도 있다. 각 팔의 동작도 다 다르지만 손에 든 물건들도 다 다르다.
어떻게 이 큰 불상이 건물 안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불상을 먼저 세우고 나서 다베이거를 지었다니 이해가 된다.
이 사원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나무 두 그루가 있다. 펑화이(鳳槐)와 룽화이(龍槐)이다. 800여 년이 지난 홰나무라고 한다.
어느 날 노예가 주인집 딸과 눈이 맞아 도망을 쳤는데 주인이 사병을 내어 쫓았다. 이곳으로 도망 온 두 사람은 각각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의 위는 천상에 닿아있고 나무의 뿌리는 천하를 아우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봉은 황후를, 용은 황제를 상징한다. 그만큼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어 이런 전설이 만들어졌나 보다.
사원 안에서 잠시 하늘을 바라보니 참으로 쾌청하다. 건물 위로 푸르른 하늘과 쭉 뻗은 나무들이 사원의 풍취를 더욱 멋지게 꾸미고 있다. 대불을 짓고 건물을 짓지 않았다면 이 파란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뤄 더욱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비바람 때문에 나무로 만든 불상이 지금껏 남아있기 어려웠을 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2) 바오딩保定 하루 밤에 연인과 3번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따라 베이징 시내를 벗어났습니다. 너무도 청아한 하늘입니다. 베이징 서쪽 외곽인 스두(十渡)를 지나 허베이 성 바오딩에 있는 예싼포(野三坡)로 드라이브를 떠났습니다.
베이징 서쪽 팡산취(房山區)를 거쳐 외곽 도로에 접어드니 작은 계곡이 나타나고 그 계곡을 따라 흐르는 하천에는 다리가 하나씩 놓여져 있다. 스두의 두(渡)는 ‘건넌다’는 뜻이니 스두는 이런 다리를 열 번 건너면 나타나는 곳을 말한다.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은 좁고 길어 하천의 물은 많지 않지만 졸졸 흐르지도 않는다. 하천을 따라 뗏목이나 보트를 타고 래프팅(漂流)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산에는 다양한 형태의 암석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홉 번째 다리인 쥬두(九渡)와 스두(十渡) 사이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마차를 타고 여유롭게 관람을 해도 좋다. 드라이브 가는 중이라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사방이 구름으로 덮인 동굴인 셩구관인둥(聖古觀音洞)과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가 있어 화베이디이챠오(華北第一橋)라는 곳이다.
18번째 다리인 스바두는 베이징과 허베이 성의 경계이다. 이제 허베이 바오딩의 유명한 국가지질공원인 예싼포에 접어들었다.
한적한 산골 도로를 달리다 보니 산맥으로 뻗어나고 있는 곳에 조그만 마을이 나타난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이 있는데 관광이 아니라 교통수단으로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어서인지 번잡하지 않고 한가해 보인다.
강물을 바라보며 식당 2층에서 닭 요리와 양고기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당 마당에는 개 한 마리가 앉아서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즐기고 있다. 강에 있는 작은 섬에는 풀을 뜯고 있는 백마도 있고 오리 몇 마리가 유유히 강을 헤엄치고 있기도 하다. 하천 다리 위에는 말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 있다.
점심을 먹으며 들었는데, 예싼포(野三坡)의 발음이 예싼(夜三)과 같다는 것이다. 농담이겠지만 ‘하루 밤에 연인과 3번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고 한다니 재미있기도 하고 짓궂기도 하다.
강을 따라 길게 높이 솟은 산들이 가파르게 보인다. 산골마을은 산 능선을 따라 계단으로 밭을 만들었다. 꼬불꼬불하고 험준한 도로를 따라 계속 드라이브를 한다. 해발 약 2천 미터나 되는 산을 넘어가는 길은 정말 기분이 좋다. 포근한 산골마을도 만나고 독특함을 자랑하는 산의 형세도 보기 좋다.
3) 탕산唐山 지진의 흔적은 사라지고 항진기념탑만 남아
탕산은 2008년 쓰촨 지진이 있기 전까지 중국 최대의 지진피해지역이다. 1976년 새벽 발생한 엄청난 지진(7.8)은 도시를 완전 전쟁터로 바꿨다. 이제는 지진의 상처도 대부분 사라졌고 항진기념탑 광장은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가 됐다.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작은 북을 치면서 군무를 연출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하려는지 일사불란하게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북 치고 춤사위를 하고 있다.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연들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데 중국의 어느 도시나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높이가 33미터인 항진기념탑보다도 더 높이 연이 날아오르고 있다.
기념탑 아래에는 지진 복구장면을 그린 벽화가 있다. 벽화 옆으로 한 꼬마아이가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고 있어서 함께 놀았다. 꼬마는 항진기념탑을 오르려는지 안간힘을 다 해 용을 쓴다. 해맑게 생긴 꼬마가 엄마 따라 항진기념탑 광장에 나와서 재미난 장난감 하나를 찾은 셈이다. 기념탑 주변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논다.
광장 바로 옆에 기념관이 있어 들어갔다. 기념관에는 지진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탕산 시의 경제개발과 사회문화적 변화를 홍보하는 곳이기도 하다.
탕산 지진은 1976년 7월 28일 새벽 3시 42분 53초에 발생했다. 7.8도에 이르는 강진은 공업도시이던 탕산을 일순간에 평지로 만들어 버렸다. 지진이 발생한 사진은 물론 피해 복구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 전국 각지에서의 성원들을 모두 담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을 나와 시내 번화가인 신제(新街)를 찾았다. ‘새로운 거리’라 이름이 붙여졌으니 최근에 조성된 거리인가 보다. 골동품도 팔고 길거리 음식도 많으며 옷 가게도 즐비하다. 한국철판구이(韓國鐵板燒烤)를 파는 포장마차가 하나 있는데 영락 없이 중국 맛인데 ‘한국’이란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
원목으로 만든 공예품들을 파는 촨이쉬엔(傳藝軒)이 눈길을 끌었다. 강아지와 같은 동물에서부터 부처나 옛날 위인들을 조각한 나무공예품들다. 가격이 1000위엔부터 몇 만 위엔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지진 피해지역인 탕산은 지진을 복구한 후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일사천리로 지역개발을 벌렸으며 이제는 환발해경제권(環渤海經濟圈)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항진기념탑 광장은 서민들의 휴식처가 됐으며 그 어디에도 지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4) 칭허清河 수호지 무송이 태어난 곳
중국 4대 소설 중 하나인 <수호지>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武松)이야말로 단연 드라마틱한 영웅 중 한 명이다. 무송의 고향 허베이 칭허를 찾았다. 산둥 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도시인 칭허가 바로 무송의 고향이다.
칭허는 중국 최대의 양모 가공 및 생산지로 유명하다. 촌 동네라 무송공원을 빼고 나면 역사적으로 그다지 가볼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문을 들어서자 원숭이 같기도 하고 고릴라 같기도 한 바위 하나가 보인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나 볼수록 참 독특한 인상을 가진 바위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이 공원의 이름은 금병매원(金瓶梅園)이었다가 무송공원으로 바뀐 것이라 한다. 중국 4대 소설 중 <수호지>와 <금병매>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 무송이고 책 이름보다는 영웅의 이름을 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긴 하다.
이 공원 곳곳에는 수호지와 관련한 표지판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108협객들의 근거지인 양산(梁山) 표지판이 있다. 실제로 양산박은 이곳에서 약간 동남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육합탑(六合塔)도 있다. 무송이 출가한 곳이며 노지심이 죽은 항저우에 있는 육합탑의 모형이라고 한다. 육합이란 불교에서 하늘과 땅, 동서남북 즉, 천하를 뜻한다.
공원 안에는 여러 개의 다리와 호수가 있고 정자들이 세워져 있다. 산보하기 좋은 시민들의 휴식처이며 청춘 남녀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아이들 놀이시설도 있지만 시설이 다소 낙후됐고 날씨도 쌀쌀해서인지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다.
귀신 성이라는 구이청(鬼城) 간판을 보고 가까이 가니 꼬마아이가 혼자 문을 지키고 놀고 있다. 이 안에 뭐가 있냐고 물으니 웃으며 ‘귀신’이 있다고 한다. 음료수 병을 한 줄로 죽 바닥에 깔고 놀고 있는데 참 능청스럽다.
웅풍장소(雄風長嘯), 위풍당당한 풍모와 커다란 고함소리라는 뜻이 적혀 있는 담벼락이 있다. 높이는 10미터, 길이는 30미터에 이르는데 해와 달, 나무들이 새겨져 있으며 <수호지>의 영웅스토리가 조각돼 있다.
벽 반대편에 108영웅들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정면에는 송강, 무송, 노지심 등 지도자급 영웅들이 있다. 나름대로 인물 캐릭터를 잘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왠지 만화 같은 느낌이며 산만해 보인다.
무송공원의 하이라이트는 무송타호(武松打虎) 조각상이다. 호랑이를 때려잡는 무송의 용맹함이 느껴진다.
이곳 칭허는 무송과 그의 형 무대랑(武大郎) 무식(武植)의 고향일 뿐 아니라 형수인 반금련(潘金蓮)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반금련의 남편을 무대라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무씨 형제 중 가장 큰 형이라는 뜻으로 무대랑이라 하고 무송은 둘째라는 뜻으로 무이랑(武二郎)이라고 불러서 생긴 오해이다.
호수 위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쭈이셴챠오(醉仙橋)에 할아버지 몇 분이 소일거리로 새를 데리고 나왔다. 새를 파는 것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새 지저귀는 소리로 취미를 삼는 것이다. 새장을 걸어두고 한담을 나누며 햇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무송공원이라고 하지만 108영웅이 그려진 벽이나 호랑이를 때려잡는 조각상이 아니라면 <수호지>의 흔적이 그다지 많지 않다. 무송이 태어난 고향이긴 하지만 관광지로 자리잡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화려한 관광지라고 해서 역사의 내용이나 인물의 됨됨이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송나라 시대 민간소설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가슴 후련한 통쾌함을 주는 인물인 무송을 만난 것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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