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립도서관 영상강의실에서 시민의 행복 지수 제고와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북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당진시립도서관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책과 음악, 이야기가 있는 북 콘서트를 개최하며 독서 활동을 장려하고 있는데요. 북콘서트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자 2023년 상반기 1회, 하반기 2회 총 3회의 북 콘서트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올해 북 콘서트의 첫 번째 주자는 굵직한 작품과 수상 내역을 보유한 김애란 작가인데요. 작가는 특유의 감수성과 필사적으로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로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독보적 문학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은 ‘소설,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주제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수지 사회자가 작가의 이력을 간단하게 소개를 해 주었는데요. 김애란 작가는 1980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난 뒤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시절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이 작품이 2003년 문예지 <창작과비평> 봄호에 실리며 등단을 했습니다. 단행본으로는 2005년 <달려라, 아비>와 2007년 <침이 고인다>, 2012년 <비행운>을 냈고, 2011년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베스트셀러가 되며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후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강동원 송혜교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기타리스트 김나린의 오프닝 공연을 들으며 감성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김나린씨는 2013년도부터 공연을 시작하여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핑거스타일 주법으로 연주하는 여성 솔로 기타리스트인데요.
BTS의 '버터', 'Butterfly'와 핑거스타일 기타의 대표적인 연주곡 'Big blue ocean', 'Phunkdified'를 선보였습니다. 공연내내 연주자의 다양하고 현란한 핑거의 묘미에 매료된 열정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오프닝 공연 후 작가 강연이 이어집니다. 작가는 문학은 삶과 멀고 막연한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삶과 가까운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김애란 작가는 '소설, 삶을 담는 그릇'이란 주제로 작품 속 인물들이 머물고, 지나온 공간을 통해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와 소설의 의미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작가가 글을 쓰게 된 과정과 배경, 경험들을 재미있는 일화 중심으로 들려주며 그 경험들이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읽어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 작가는 노동자 부모님에게 전해 들은 인천과 달동네라는 공간, 어릴 적 자리 잡은 고향 충남 서산 대산, 대학 시절 지냈던 서울, 대학가 등 그가 살아온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특히 면 소재지에서 자란 청소년기와 스무 살 처음 만난 서울의 모습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요. 데뷔 후 17년 동안 가족과 도시, 두 갈래 이야기를 썼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의 경험은 집이 아닌 방, 방이 아닌 칸에 사는 친구들의 안부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젊음의 삶과 사랑을 다룰 때는 ‘방식’보단 ‘공간’에 방점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선배들이 쓴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다 한국 문화 근현대 중단편에 단골소재로 등장한 우리 청년기의 갈등과 고난, 방황, 가난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선배 세대의 가난과 요새 청년들의 어려움을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한 사물과 풍경이 뭘까 고민하다 컴퓨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된 여동생은 애인이랑 데이트하러 나가고 애인이 없는 오빠는 집에서 막 비빔면을 끓여 먹으며 컴퓨터하고 노는 이 두 개의 밤이 교차하는 <성탄특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왠지 행복을 흉내내야 할 것 같아서 과소비를 잔뜩한 뒤에 우울해져버린 젊은 커플은 광화문 근처에서 모텔을 찾는데요. 젊은 커플은 대목에는 대부분의 숙박업소가 방이 다 찬다는 사실을 잊어 모텔 순례를 시작합니다. 작가는 작품 속 가난한 연인들의 모텔 순례길과 같이 ’어떻게’가 아닌 ‘어디서’ 하는지에 집중했다고 하는데요.
작가는 <성탄특선>속 문장들은 작가를 포함한 모든 청년들을 생각하며 썼던 문장이라고 하네요.
<성탄특선>작품 속 문장을 옮겨 보았습니다.
사내는 '요즘 세상에 배는 곯아도 인터넷은 좀 하고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도 말했다. 상경 후 쥐구멍 같은 방에 살 때부터 그랬다.
그곳은 동생과 나란히 놓으면 더 이상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매우 좁은 방이었다. 그 방에서 가장 비싸고 또 자리를 많이 차지한 것은 사내의 고물 컴퓨터였다.
컴퓨터는 블룩한 모니터에 커다란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방 안쪽에 보기 싫게 튀어나와, 작동 시 어마어마한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동생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모니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사내의 굽은 등을 바라보곤 했다.
사내가 밤새 인터넷을 하는 통에 잠을 설칠 때도 많았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컴퓨터의 웅웅대는 소리가 마치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한 손으로 힘겹게 돌리는 발전기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세대들이 제한된 좁은 공간을 16인치, 18인치 윈도우를 통해 다른 세계와 접속하고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을 확장하며 세상과 소통하는데요. 작가도 청소년시절 노트북으로 미드나 영드를 보며 먼 나라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경험하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선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보습학원 알바를 하는 주인공이 퇴근길에 반짝이는 서울을 보며 '나는 왜 여전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 걸까' 회상하는 장면을 읽어줬는데요. 작가는 소설이 쓰인 게 14년 전 임에도 많은 공감을 얻는 것은 지금도 청년의 거주, 삶의 문제가 변하지 않거나 악화한 것 일거라고 합니다. 작가는 운이 좋아서 칸에서 칸으로, 방에서 또 다른 방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경험을 해 보았다고 하는데요. 이런 경험들이 동시대적 경험이 된다면 성장의 이름으로 건강하고 온전한 사회가 될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서른>이란 작품을 쓸 때는 또래, 혹은 내 아래 세대를 떠올리며 ‘성장했다’가 아닌 ‘나 홀로 탈출했다’란 기분에 부채감도 들고,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주었습니다. 문학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훨씬 많다고 하는데요. 문학이 우리에게 뚜렷한 구원과 선명한 대안을 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은 게임보다 소설과 비슷하다고 하네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게임처럼 용을 무찌를 수도 없고 아이템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동료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미션을 클리어 했다고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과제를 수행했음에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데요. 설상가상으로 복수나 배신의 형태로 돌아오기도 하는 게 우리 인생과 같다고 합니다.
작가가 한국의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소개하며 문학의 존재 이유를 다뤘습니다.
고통에 찬 사람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여기서 소리는 말이 아닌 울음, 비명, 침묵, 탄식이기도 한 비언어적 형태의 여러가지 소리라고 하는데요.
김애란 작가는 어른이 됐지만 반드시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반성을 했으면서도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인생에 대해 딱 한 가지 알고 있는 게 있다고 하는데요. 그건 앞으로 우리의 삶과 인생에 무수하고 다채로운 그릇이 있고, 어떤 것도 우열을 다룰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릇안엔 좋은 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을 거라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우리가 특별히 운이 나빠서는 아니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기본값, 기본세팅, 존재 조건 같은 것들인데요.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과 훨씬 나쁜 소식 앞에서 말이 아닌 소리밖에 안 나올 때, 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때 그 소리를 말로 바꾸고 언어화시키는 과정에서 내 삶의 이야기에 지위를 주는 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김수지 사회자가 작품활동을 하며 글이 써지지 않아 힘들땐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요. 작가는 첫문단에서 작품의 리듬, 분위기, 톤 같은 게 정해져서 첫문단 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첫문단을 쓰며 자기 의심과 막 싸우기도 하고,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한 초고를 다음 날 읽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요. 창작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신화하거나 낭만화 하지 않고 그냥 노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성인들이 직장에서 감당하는 스트레스 크기 보다 더 무겁지도 덜하지도 않은 정도의 어려움이라 작가가 치뤄야 할 차비라고 생각한다고 하네요.
사회자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나만의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팁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습니다. 작가는 어디선가 읽었던 '미감이나 취향은 작은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하는 문장에 공감한다고 하는데요. 그 작은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감각을 열어놓고 벼리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술적인 방식으론 메모를 강조했는데요. 오늘 처음 본 것, 늘 봤다고 생각하는데 스쳤던 것들, 재밌는 문구들을 계속 메모하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관객과의 소통시간을 가졌습니다. 작가의 팬이라는 독자가 소설들의 영감과 소재를 어디서 얻는지와 요즘 관심있는 이슈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요.
초기에는 작가의 경험해서 많이 썼다고 하는데요. 내안에 있는 것을 그물을 건져서 끌어 올리듯이 이야기를 꺼내 썼더고 합니다. 이후에는 취재나 공부를 통해 다른 사람들 얘기를 쓰고 있다고 하는데요. 지금도 신문기사들을 통해 가장 많이 도움을 받으며 메모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쳇 GPT라고 합니다. 쳇 GPT의 가장 큰 무능이 '모른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이기에 정보를 수집해 막 지어낸다는 느낌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장르적인 소설은 굉장히 잘 쓸 것 같아 AI 소설가를 좋아할 수는 있어도 존경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AI 소설가에게는 삶의 무게나 불안정한 인간이 이상을 위해 애썼을 때 주는 감흥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독자의 질문이 이어졌는데요. 어렸을때부터 주변에서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고 자랐는지와 언제부터 글쓰기에 흥미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작가는 어린시절 작은 면소재지에 살다보니 조금만 잘해도 주위에서 큰 격려와 박수를 받고 자라서서 스무살 즈음까지 인생을 알 것 같다는 착각속에 살았다고 하네요. 막연히 그냥 활자 주위에 있는 직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정한아 장편소설 <달의 바다>에 나오는 첫 구절 '꿈꿔본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나요. 당신은 틀림없이 실망하게 될 거예요' 라는 문장을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것을 원했다가 그 근처에 갔을 때 겪게 되는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꿈이 목표가 된다면 막상 도착했을 때 실망하거나 아무것도 없어서 당황하거나 그 다음 행보를 정할 때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작가에게는 꿈이 소중했던 게 아니라 글을 계속 쓴다는 이런 점이 좋았다고 합니다. 살면서 실망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꿈꿔왔던 곳에 도착했을 때 회의나 권태, 허무, 실망을 관리하는 기술을 작가는 글쓰기와 글 읽기로 배웠다고 하네요.
북콘서트에 참여한 분 중 작가가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과 청소년들에게 글쓰기와 글 읽기가 목적지가 아닌 삶의 방식이자 과정이며 존재 방식이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북콘서트를 마무리하며 작가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습니다. 작가는 강연을 갈때마다 소설 독자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고 하는데요. 봄꽃이 흐드러지게 펴 누릴 것, 놀 것이 많은데도 이자리에 참석한 독자들의 시간을 선물받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편하게 진행해 준 사회자와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AI 시대에 끝까지 살아남는 직업은 총체적인 사고력, 감각력, 판단력이 있는 연출자라고 하는데요. 총체적인 판단과 사고를 도와주는 것이 독서와 글쓰기라고 합니다. 오늘 '책과 음악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북 콘서트'를 통해 총체적 사고의 폭이 조금은 향상된 것 같아 봄꽃처럼 기분이 좋은 시간이었는데요.
북콘서트를 마치고 작가의 책에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