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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9일 성령강림절 후 열아홉째 주일예배
성경: 엡4:1-6절(신314)
제목: 하나 된 교회(나경수 목사)
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 10주년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 교회의 창립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 연장 혹은 확대입니다. 이는 주님의 교회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작은 부분에서 그 교회를 연장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4:1-6)을 통해서 교회의 여러 속성 중에서 하나인 ‘교회의 통일성(하나 됨)’을 다시 확인하며, 그것에 근거하여 우리 자신의 이해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분명하게 알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분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부분(1-3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 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내용, 즉 그의 복음’입니다.
둘째 부분(4-6장)은 1-3장에 근거한 윤리적인 권면(명령들)이며, 각 단락은 다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4:7-16절의 단락은 예외). 이러한 바울의 윤리적 권면은 하나님의 복음(1-3장)에 근거하기에 바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4:1-6)도 ‘그러므로’로 시작하며,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부분(1-3)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라는 권면들이며, 둘째 부분(4-6)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조에 근거한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한 추가적인 실증(이유)들입니다.
1. 하나가 된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라는 하나님의 권면들입니다(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도록).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첫째로 바울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기를 권면합니다”(1).
여기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던 일(그 부르심)’에서 ‘그 부르심’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그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통하여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1:18)를 알기를 기도하였고, 본문의 4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반복합니다.
그러면 그의 부르심, 즉 그의 부르심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1장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1:18절의 앞에서 말하였고, 1:18절의 뒤에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로 삼기 위하여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과 예정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에 대한 찬양(1:4-6)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의 피로 구속하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1:7)를 설명한 후에, ‘하나님의 뜻의 비밀, 즉 그의 계획’을 말합니다. 1:8-10절입니다.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계획)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의 비밀(계획)’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의 머리 아래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10)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계획에 따라 우리(바울을 포함한 유대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첫 소망으로) 그의 기업이 되었고(11-12),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이방인)도 복음과 약속의 성령으로 그의 기업(소유)가 되었다(13-14), 즉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1:18), 즉 이것을 알도록 기도한 후에,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20-22절입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의 부르심의 소망’은 그의 복음으로 만물의 머리(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몸, 즉 하나 된 교회’을 가리킵니다. 골3:15절입니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바울은 하나님 은혜의 구원을 말한 후(2:1-10), 이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한 새 사람, 한 몸, 하나님의 권속, 성전)’을 2:11-22절에서 계속 설명하며, 3장에서도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3:2), ‘그리스도의 비밀’(3:4), ‘그 비밀의 경륜’(3:9), ‘이제 (하나 된) 교회로 말미암아 .. 하나님의 각종 지혜’(3:11)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이것(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계속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1)라는 권면은 ‘하나님의 복음을 통하여 너희가 그의 부르심으로 하나 된 교회에 합당하게 행하라’, 즉 그 하나 됨을 깨지 말고, 그것이 더욱 이루어지도록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3절의 권면과 연결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여기서 우리가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미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이미 하나 된 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3)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안의 매는 줄’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2:16-18절입니다.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성령은 평안의 복음으로 하나 된 교회를 만드셨고, 그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시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사도신경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고백한 후에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고백합니다.
여기서 ‘성도의 교제(communion)’는 모든 성도가 공동으로 소유한 것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복음과 성령으로 우리가 주님의 몸(교회)으로 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복음과 성령으로 이미 하나 된 주님의 몸의 지체로서 서로 연합하고 합심하여 우리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 위하여(1) 그리고 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키기 위하여(3) 구체적으로 권면합니다(2). “모든 겸손과 온유와 함께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당시에 ‘겸손’은 굴욕적으로 주인에게 복종하는 노예의 상태를 가리키는 부정적 용어였으나,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빌2:7-8)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종으로서의 자세, 즉 겸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겸손’은 기독교 신앙에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성 어거스틴)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 되었습니다.
‘온유’는 자기의 생각이나 본능적 욕구를 자제하는 미덕입니다. 즉, 자신의 중요성이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주님의 주권에 두면서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겸손’과 쌍벽을 이루는 성품으로 ‘겸손 없이는 온유’는 불가능합니다. 마11:29절입니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오래 참음’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 해를 받았을 때 보복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며 인내하는 미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는 ‘오래 참음’의 확대된 미덕입니다.
특히 이런 권면들은 ‘주 안에서 갇힌 내가’(1)라는 바울의 자기 이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기록하는 동안 실제로 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습니다(3:1).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들을 위해서 주 안에 갇힌 죄수라고 이해합니다. 즉 자신이 옥에 갇힌 것은 주의 종(예수 그리스도의 죄수)으로서 이방인들을 섬기기 위해서 주의 뜻에 따라 된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에 근거한 바울의 자기 이해입니다. 고후4: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가 주가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러한 자기 이해, 즉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종으로서 자기 이해에서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함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2. 삼위일체의 구조에 근거한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추가적인 실증들입니다(4-6).
바울은 이것들(1-3)에 추가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조’에 근거하여 ‘교회의 하나 됨의 실증들’, 즉 주님의 몸(교회)에 속한 우리가 우리의 하나 됨을 힘써 유지하여만 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것의 첫 번째의 실증은 성령이 중심인 4절입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몸이 하나요’는 문자적으로 ‘한 몸’을 의미합니다. ‘한 몸’은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가리킵니다(1:23, 2:14-16, 4:12-13). 그러므로 한 몸인 교회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 몸 안에 ‘한 분이신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몸은 ‘한 분이신 성령’에 의해서 세워지고 유지되고 성장합니다(고전12:3-14). 한 분이신 성령은 나누어질 수 없기에 하나 된 교회는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의 부르심의 한 소망’은 그리스도의 머리 아래에 만물을 하나 되게(1:10) 하시는 하나님의 뜻(계획)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의 창조의 목적이요, 그의 구원, 즉 그의 복음의 목적이기 때문에 ‘교회의 하나 됨’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두 번째의 실증은 주(예수)님이 중심인 5절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여기서 ‘주도 한 분이시요’는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으로(1:20-23, 롬10:9, 14:8-9, 고전8:6, 12:3, 빌2:9-11)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만유의 머리(왕권, 주권)가 되심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한 분이신 주의 몸이기 때문에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하나요’에서 ‘믿음’의 내용은 오직 한 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하는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기’(갈1:7)에 ‘믿음도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 복음을 ‘하나의(동일한) 믿음’으로 한 분이신 주의 몸이 된 하나인 교회는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도 하나요’에서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에 연합되어 있다는 외적인 표적인 물세례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는 성령 세례(인 치심)를 상징합니다. 갈3:27-28절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같이 한 분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세례는 하나이기 때문에 주의 몸인 교회의 하나 됨이 깨져서는 안 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세 번째의 실증은 하나님이 중심인 6절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됨의 마지막 원리(실증)로 만유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신 ‘한 분 하나님’을 제시합니다. 즉 궁극적으로 교회의 통일성은 한 하나님, 즉 만유의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3:14-15). 고전8:6절입니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만유의 아버지이신 한 분 하나님은 그의 형상에 따라 따로 분리되어 살 많은 사람이나 많은 가족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머리 아래서 한 가족’으로 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그들을 통하여 ‘한 가족’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다스리라’(창1:28)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한 분 하나님이 만유의 아버지(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만유는 하나로 통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나님의 뜻(계획)이요(1:9), 그의 은혜의 경륜이요(3:2), 그리스도(복음)의 비밀입니다(3:4).
그렇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order)’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로 깨진 것은 ‘창조의 질서가 고장(out of order)’ 난 것입니다. 현재 세계는 고장 난 상태입니다.
또한, 만유의 아버지(창조주)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는 유일하신 분’, 즉 만유를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유를 어떻게 섭리하실까요? 당연히 하나님은 고장 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도록, 즉 만유의 통일을 위해서 오늘도 만유를 섭리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유의 아버지(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에 만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그의 뜻(계획)에 따라 아담의 죄로 인하여 ‘고장 난(분열된) 창조의 질서’를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원래 상태보다 더 큰 영광’으로 회복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 된 교회는 결코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하는, 즉 선교의 목적입니다(2:17-18, 3:6).
특히 한 분이신 하나님, 만유의 아버지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가 통일되도록 섭리하고 계시기에 교회의 하나 됨은 더욱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의 통일, 특히 교회의 하나 됨(가정과 사회에서도 공동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창조의 목적이요, 그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방향이요, 복음과 선교의 목적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거슬러서 가는 바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성도 여러분, 진리를 희생하면서 교회의 하나 됨을 주장하면 안 된다, 즉 교회의 분열을 ‘진리를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 본문은 ‘거짓’이라고 선언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욱 벌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서로 원수들이 ‘한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어 ‘한 성령 안’에서 ‘한 분 하나님 아버지’에게 나아가게 하는 화평의 복음입니다(2:14-18).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같이 ‘개인적인 인격(individual personality)’이면서 ‘공동체적인 인격(corporal personality)’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권면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정)의 하나 됨에 따라가는 바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이해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인격이나 권리 보다 자신의 공동제적인 인격이나 의무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타락한 육신의 영향이 아직도 있기에 우리는 자신의 인격이나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복음의 진리에 의하여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종)로서 주님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용어도 ‘일체의 삼위 하나님’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삼위’ 보다 하나님의 ‘일체(유일성)’를 먼저 생각하여 우리 생각의 변화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미약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고 그의 뜻에 따라 살기를 소망하면서 살아간다면, 복음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강력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섭리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는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찬송 570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