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시대의 거대한 유혹
한 대형교회 목사가 남의 설교를 표절하여 사용한 것이 들통이 나서 한창 시끄럽습니다. 이를 고발한 네티즌은 원 설교자와 이를 따서 전하는 목사를 대비하여 유튜브에 올려놓았기에 발뺌할 수 없이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한편에서는 표절도 지식을 훔치는 부도덕한 것이라고 정죄를 하고, 또 옹호하는 분들은 그렇게 따지면 다른 설교자의 도움 없이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영감과 지식으로만 전하는 목사가 어디 있겠냐고 합니다.
저 역시 바른 설교는 무엇인지에 대한 원론적인 정의를 되새기면서 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다른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듣는 편이고 제가 전하는 설교에 부분적이지만 응용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갈등속에 제가 속한 교역자회에서 챗 GPT를 응용한 설교문 작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교회에 돌아와 제 사무실에서 강사께서 일러 준 대로 다음 주에 제가 설교할 것에 대한 데이터를 입력하였습니다.
세부적으로 설교의 방향, 그리고 설교를 듣는 청중의 연령대와 현대인이 품고 있는 갈등의 요소들을 입력하여 결과물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저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첫째는 논리가 뚜렷하였고,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감성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의 내용이 제가 제시한 성경 구절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고 주석적인 측면에서도 건전하였습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하는 목회자에게 이것은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 나무 열매’와 다름이 없어 보였습니다. 세련되게 작성한 문장에 적절한 예화를 삽입하고 목회자 자신의 영감을 섞어 넣으면 누가 뭐라 해도 독창적인 자기 설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의 설교를 작성하기 위하여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주석서를 펴놓고 이리저리 본문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이 물거품처럼 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밥값을 절약하여 사 모은 신학 서적들이 이제는 장식용으로 꽂혀 있는 듯하였습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에 묻혀서 영성을 뒤로 젖히게 되면 그 자리에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드는 마귀가 저를 노려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