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26-33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하세롯을 떠나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 진을 쳤다(민 12:16, 13:26).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약속의 땅으로 올라갈 것을 명령하셨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신 1:21) 하지만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그 땅을 먼저 정탐하길 원했다(1:22). 좀 더 신중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세는 그들의 말을 좋게 여겨 수용하여 각 지 파에서 정탐할 사람을 한 명씩 뽑았다. 그들은 지휘관이요 수령으로서 유능한 사람들이었다(2,3). 모세는 그들에게 정탐할 내용을 제시했다. “❶거주민이 강한지 약한지, ❷많은지 적은지, ❸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❹땅이 [살기에] 좋은지 나쁜지, ❺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❻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❼땅의 실과를 가져오라”(18-20)
모세의 명령대로 그들은 40일 동안 약속의 땅 가나안을 두루두루 살피고 돌아왔다. 그들은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벤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얻은 포도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서 가져왔다. 막대기에 꿰어 멘 이유는 포도알이 굵은 것도 있지만, 포도의 특성상 신선하고 안전하게 이송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 땅의 과일[포도, 석류, 무화과 등]을 보이고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27) 젖을 생산하는 소와 양을 많이 키울 수 있는 풍부한 목초지가 많고, 꽃과 화초가 많아 꿀을 풍성하게 채취할 수 있는 살기 좋은 땅이었다. ❹❺❻❼이 충족되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은 기뻤다.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광야에서 고생한 대가를 받는 것 같아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 보고부터 갈리기 시작했다. 12명 중 10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31)고 결론 내렸고 12명 중 2명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고 보고했다. 왜 똑같은 것을 보았는데도 엇갈리는 보고를 했을까?
보고가 계속되었다. “❶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❷❸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❸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산성]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28,29) ❶❷❸에 대한 결과이다. 이 보고는 10명만의 보고가 아니라 12명 전체의 보고였다. 모세의 지시에 충실한 정탐 보고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이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은 신변의 위협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민심이 심하게 술렁이기/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10명이 기름을 부었다. 쐐기를 박았다.
❶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28, 31)
❷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32)
❸ 모든 백성들의 신장이 장대하며(32)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28, 33)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3)
Albert Ellis가 “정서의 ABC모델”(1962)을 주장했다. A(Activating Event)는 선행사건이나 역경이다. B는 이러한 역경이나 사건에 대한 내 생각 또는 신념(Beliefs about A)이다. C는 그로 인한 결과(Consequence)이다. 거주민이 강하고, 성읍이 크고 견고하고, 거인 자손이 살고 있다는 것은 팩트/선행사건이다(A). 12명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에 이스라엘과 10명의 정탐꾼은 그들의 생각 즉 비교 의식과 열등감을 집어넣었다(B). 그러자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C).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젖과 꿀이 흐른 땅은 힘 있는 다른 나라에 삼킬 땅이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같이 형편없고, 그들도 우리를 그렇게 볼 것이라고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에다가 부정적인 패배론을 주장했다. 그들은 "모세 말대로 정탐하지 않고 그냥 올라갔다면 어찌할 뻔했겠는가? 큰일날 뻔하지 않았는가! 정탐하길 잘했다"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객관적 전력으로 보았을 때 이스라엘이 무조건 열세이다. 맞는 말이다. 보는 눈이 탁월하다. 하지만 그들에겐 하나님의 눈이 없었다. 그리하여 약속의 땅을 약속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없었고 그들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해석하다 보니 열등감에 두려워서 패배를 운운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실 복을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하고 있지 않는가?
블레셋을 물리치고 돌아온 사울의 군대를 환영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라고 외쳤다. 사울은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18:8) 그러자 그는 블쾌하여 심히 분노했고, 다윗을 주목[시기, 질투]했으며, 이 악감정으로 인해 다음날 악령이 힘 있게 사울에게 내렸고, 수금을 타며 사울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다(18:8-11). 사울은 갑자기 다윗을 두려워했다(18:12).
사람이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기 효능감이 없어지고 담대함이 사라진다. 이때 희망을 품을 수 없다. 품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희망적인 말을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이 희망을 꺾어버린 누군가를 타깃 삼아서 사냥한다. 탓하고 비난하고 현실을 원망하며 지금보다 더 나았던 과거의 삶을 운운하며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열등감을 회개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함을 회개하자.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 땅 거주민이 강하고, 성읍도 크고 견고하며, 아낙 자손과 같은 거인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보았다[A]. 하지만 그 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했다[B].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해석할 수 있었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과 비교했다. 그러자 그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 즉 약속한 땅이었다[C]. 희망의 땅이었다.
민 14:7-9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하나님의 선물/축복] 9 다만 여호와[약속의 말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정복에 대한 확신] 그들의 보호자[그늘]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심히 아름다운 땅(토바 하아레츠 메오드 메오드) '심히'[메오드]는 2번 반복된다. 최상급이다. '아름다운'[토바]는 '풍부한', '편한', '잘되는', ‘좋은’ 등의 뜻이다. 요단강이 흐르고 곳곳에 호수와 샘이 있었다. 이는 가나안 땅이 자신들이 보아왔던 그 어떤 땅보다 비옥하며 풍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축복되고 은혜로운 땅임을 확신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열국이 탐내는 땅 그래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물의 땅으로 보았다. 다수가 두려워했던 우월한 요소들이 둘에겐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보였다. 선물 앞에서 누가 두려워하는가? 대부분 기쁠 뿐이다. 그들은 40일 동안 정탐하는 내내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가나안 땅을 보면서 은혜에 젖어 감사했을 것이다.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이다. 가는 곳곳마다 감탄했을 것이다. 이 소식을 하루빨리 이스라엘 동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어떤 열등감도 좌절도 부정적인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에 부응하고 싶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정탐을 보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둘에겐 하나님이 흐르고 있다.
여러분은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그 부정과 긍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특히 역경과 고난 앞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난 다 해 보았다. 이제 난 절망적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풀어]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말씀하시는데 이런저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거부한다면 10명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음/말씀의 눈[가치관/세계관/시각]으로 그 역경과 고난을 해석한다면 이 역경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되고, 능히 물리칠 수 있는 것들이 되고, 역경 후에 올 복까지 거머쥘 수 있다.
롬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고난/복/말씀/상황이 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 있다. ABC모델을 기억하면서 B에 비교의식, 열등감,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느냐,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결과[C]가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를 위해 항상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