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피앗재~화령재 구간을 달려 형제봉과 봉황산을 다녀왔다.

[雲峰]

<2022년 3월 5일 백두대간 피앗골, 화령재 구간 형제봉>

안내산악회 대간 팀 계획에 따라 '피앗재 산장 - (접속)→ 피앗재 → 형제봉 → 갈령 삼거리 → 비조령(비재) → 봉황산 → 화령재'의 16km, 7시간 30분 코스의 백두대간 구간을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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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은 봄가을에는 가물어 산불이 나기 쉽고, 잘 나기도 한다. 해서 산림청과 환경부에서는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 산불 예방을 위해 입산 금지 기간을 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증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이나 단체에서는 이 기간 입산 금지된 산에서 한 인증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로 인증꾼이나, 산꾼에게 있어서는 고난의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산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기준은 알 수 없으나, 내 생각에 산불위험이 덜하다고 생각되는 남쪽 나라와 중부의 몇몇 지역 산은 개방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자체의 허가를 받으면 이 기간에도 산에 오를 수도 있다. 당연히 국립공원공단과 산림청에서는 특정 봉우리와 코스의 통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 평소 애용하는 안내산악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산행은 극히 한정적이다. 대부분 이미 갔던 산이거나, 가성비 최악의 산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산악회에서 평소 눈도 돌리지 않던 산의 산행 계획을 세운다는 거! 지난주에 다녀온 '진도 첨찰산, 동석산[산행기]'이 그렇고, 4월 30일 갈 예정인 '전남 일림산, 사자산, 제암산 연계 산행[산행안내]'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산행은 극히 드물어, 작년까지만 해도, 담배 끊은 지 20년 가까이 되고, 산불 통제 기간에는 산에서 라면도 끓이지 않아, 조심해서 대중교통으로 원하는 산을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눈치 보는 게 싫고, 가지 말라는 시기에 굳이 가야 할 필요도 크게 못 느껴 개방된 산만 다니기로 했다. 그렇다고 매주 북한산만 다닐 수도 없어, 고민하며 대안을 찾다가 백두대간이 눈에 띄었다. 즉 이 기간에 천고지 산을 목표로 띄엄띄엄 다녔던 백두대간을 연결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지리산 중산리부터 북진으로 북설악 칠절봉까지 백두대간 남쪽 구간을 안내산악회 대간 팀 기준에 따라 나눈 후, 천고지든 인기든 어떤 이유로든 달린 구간을 확인했다. 그 결과 총 65개 구간 중 38개 구간은 달렸고, 27개 구간이 남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27개 구간 중에는 부분적으로 이미 달린 구간과 중복되는 코스도 꽤 있다. 이후 안내산악회 대간 팀 산행 계획에 따라 연결해야 할 구간의 산행 일자를 맞췄다. 그 결과 그 첫 번째가 이번 주 토요일 피앗재~화령재 구간을 달리는 산행이다. 이전에는 딱히 갈만한 산이 없을 때 대간 팀을 따라 달렸는데, 당시만 해도 달리는 구간 중에 내세울 만한 봉우리가 있어, '산행 안내'나 '산행기'에 그 산을 전면에 소개했었다. 하지만, 이번 구간에는 '형제봉'과 '봉황산'을 통과함에도 그 어디에서도 이 두 봉우리에 관해 인용할 만한 글을 찾지 못해 소개를 못 한다. 사실 남은 27개 구간 대부분 마찬가지다. 이미 알만한 산이나 봉우리가 있는 구간은 다 달린 후다. 그리고 구간이 중복되는 이유도 그 잘 알려진, 유명한 산 때문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피앗재~화령재 구간을 달리는 토요일 날씨는 바람이 강하고, 영하에 가까운 기온이라, 추울 거로 예상돼, 겨울 산행과 같은 준비를 할 예정이다. 물론 지난 진도 방문과 같이 이것저것 다 때려 넣지는 않고, 그 반대로 최대한 무게를 줄인다. 짊어지고 백두대간 17km를 달려야 하므로. 그런데, 2호 차까지 동원하고도 대기자가 꾸준히 늘어나자, 산악회에서 2호 차의 차량을 27인승에서 36인승으로 바꿔버렸다. 좀 편하게 갈까 하고 자리를 세심하게 선택했는데, 쓸데없는 짓이 돼버렸다. 1호 차가 아니라 2호 차의 버스를 바꾼 이유는 인솔 대장과 같이 대간을 달린 인원이 대부분이라,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선택권을 준다면 먼저 신청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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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산에 가거나, 다녀오는 노년의 등산객이 대중교통에서 빈자리에 앉기 위해 혈안이 되는 걸 보고, 대놓고 말은 못 하고 '산에 왜 다닐까?'하고 속으로 뭐라고 했는데, 요즘은 막상 내가 그렇다. 불광역까지 걸어가기 싫어 좀 이르지만, 마을버스를 타는 바람에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38분경으로, 추위에 떨며 산악회 버스를 15분가량 서서 기다려야 한다. 해서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그 시간을 보낸 후 버스가 정차하는 국립외교원 앞으로 간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건가? 6시 52분경 역사를 나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는 길은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답게 엄청난 인파로 뚫고 가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외교원 앞에 도착해 조금 지난 6시 55분경 정선 민둥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선두로 7시 출발 버스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는 산악회의 산행지만 17개에 인기가 좋은 산은 버스가 두 대씩 동원되고,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나름 이름값을 하는 두 개 산악회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상황이라 양재역 12번 출구부터 국립외교원을 지나서까지 버스가 정차해 자기가 타야 할 버스를 찾아 헤매는 등산객으로 일대는 대혼란을 빚고 있었다. 와중에 백두대간 피앗재로 향하는 버스 두 대가 나란히 도착한 게 아니라, 간신히 버스를 찾아 짐칸에 배낭을 넣고 자리에 가 앉았다. 와중에 승객 한 명이 2호 차를 찾지 못해 약간 출발이 지연돼 예정보다 3분 정도 늦은 7시 5분경 들머리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잠을 청했다. 웬만하면 움직이는 차에서 잠을 못 자는 인간인데, 최근에는 자려는 의지만 있으면 잠이 든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그리고 깨어 보니 옥산 휴게소다. 몇 번 와 본 거 같은데, 위치가 기억나지 않아, 지도로 확인해보니, 경부고속도로상에 있다. 딱히 볼일이 있는 건 아니나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다 주차해 있는 산악회 버스를 보며 목적지가 어딘지 하나씩 살펴보다가 수도권 안내산악회의 세력 판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어느 분야나 부익부 빈익빈이다.

20분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들머리인 피앗재 산장으로 향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어 약간 당황했다.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의 코스나 주의사항에 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마이크조차 잡지 않았다. 물론 지도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런데 누구도 질문이 없는 거로 봐서, 대간을 달리는 사람들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거 같았다. 그래도 다른 대장은 몇 마디 했는데. 버스가 고속도를 벗어나 지방도로 들어서는 순간 지도를 확인해 보니, 들머리가 멀지 않아, 등산화 끈을 조이고, 미니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고,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패딩을 벗었다. 추울 거 같아 입고 왔는데, 날씨가 화창해 더울 거 같아 벗었다. 다만,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버스에 두지 않고 배낭에 넣어간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조금 있자, 버스가 섰다. 그 시각이 9시 35분이다. 그러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 없이 큰 소리로 마감은 5시 10분이라고 공지했다. 이번 산행 중 대장의 유일한 공식 발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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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핸드폰의 등산 앱을 기동하려고 보니, 그룹핑해둔 앱이 사라졌다. 내가 취해서 삭제했나? 그럴 리는 없는데! 모든 앱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찾아보니 제일 마지막에 있었다. 마지막에 있다는 건 가장 최근에 설치했다는 거로, 내가 잠자는 사이에 스스로 업그레이드했다는 얘기다. 자동 업그레이드야 내가 설정한 거니 문제될 게 없어 뭐가 바뀌었나, 실행하는 순간 당황했다.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화면에 기동 방법도 달라, 사용 방법을 연구하고 나서 어떻게 간신히 기록을 시작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빠른 대간꾼은 벌써 저 앞에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폰의 등산 앱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당분간 테스트를 거쳐야 해, 스마트 워치의 등산 앱에 의지하기로 하고 아무것도 볼 거 없이 순수하게 백두대간 연결을 위한 산행을 시작했다.

[백두대간 삽당령]


[백두대간 구룡령]

백두대간 피앗재로 향하는 길(대간꾼은 접속구간이라 부르는)은 계곡을 따라 포장도로 이어지다가, 주차장에서 8분여를 올라가자 비포장의 등산로가 나타났으나, 그것도 과거에는 임도로 사용했던 길이었다. 아직은 등산로가 아니다. 사실 산행 전에 산악회 게시판에 있는 코스를 보고 조금 살펴본바 ‘피앗재 산장’이 있는 주차장에서 피앗재까지의 구간이 제일 힘들 거로 예상했다. 대부분 산행이 일단 능선에 도착하고 나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거라, 과히 힘들지 않다.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능선까지 오르느라 힘을 다 뺐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능선까지 올라가는 깔딱, 대간꾼 용어로는 접속 구간! 그나마 백두대간이 인기 있고, 많은 사람이 종주할 수 있는 건, 백두대간이 남북을 관통하며, 동과 서를 나누어 놓아, 비교적 낮은 고개에는 오랜 옛날부터 그 둘을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고, 근대에 오면서 국도나 지방도로 사용하기 위해 웬만한 도로는 다 포장해 차가 올라갈 수 있다는 거다. 즉, 가장 힘든 구간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해서 노련한 인솔 대장은 대간 종주 계획을 세울 때 가능하면, 접속 구간을 없앤다. 그래서 무박도 마다하지 않고, 평속 3km가 넘게 달리기도 하고.

역시 이번 백두대간 피앗재까지 오르는 접속 구간도 쉽지 않았다. 와중에 나도 모르게 업그레이드된 등산 앱은 기존과 다르게 제공하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업그레이드 전에는 실시간으로 지도와 고도, 속도, 평속, 이동 거리 등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유용하게 활용했는데, 후에는 지도 외에는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내가 찾지 못하는 거로 생각해 가던 길을 멈추고 폰을 들여다보며 앱의 여기저기를 확인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결국 못 찾았다. 와중에 트랙도 중간중간 끊어져 이동 거리가 명확하지 않아 기록으로써 의미도 없었다. 이제는 전적으로 스마트 워치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자주 시계를 보며 거리와 속도를 확인하며 가다가 위를 보니, 일군의 등산객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피앗재다. 그 시각이 10시 6분경이다. 고개의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등산객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그냥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줄을 서 있었다. 뭐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피앗재에서 화령재에 이르는 구간의 백두대간 인증 장소가 세 개로 그중 피앗재도 있었다. 고로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는 거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가만이 있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자세로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걸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나, 인증이 중요할 뿐 사진 찍는 거에는 관심 없는 사람은 그 줄에서 벗어나, 인증 대상이 바뀌는 찰나의 순간 셀카를 찍고 바로 다음 인증 장소로 떠났다. 그리고 애초 인증 따위에는 관심 없는 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화령재로 향하는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했다. 가끔 뒤로 보이는 속리산 천왕봉을 사진으로 남기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불 방지를 위해 입산이 금지되는 시기에는 백두대간을 연결하기로 한 이상 조금 전에 떠난 피앗재와 속리산 천왕봉을 연결하기 위해 다시 피앗재로 올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한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건 좋아하지 않아 거꾸로인 속리산 문장대에서 시작해 피앗재로 가는 코스가 있으면 그걸 선택하기로 했다.

업그레이드된 등산 앱의 기능을 활용하지 못해 현재 상황을 확인하는 건 국립공원공단에서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으나,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놓은 걸로 보이는 이정표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다. 피앗재에서 24분 거리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현재 고도는 764m다. 이 구간 가장 높은 봉우리인 형제봉이 800여(정확한 높이는 등산 앱에서 지도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미터니, 멀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15분 후에 만난 이정표에는 현재 고도가 832m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럼 형제봉이 가까운 건 알겠는데, 해발 850m가 넘는 높이였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전진해 10시 50분에 형제봉에 도착했다. 형제봉은 두 개의 암봉이라기 보다는 정상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었고 그중 하나에 정상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많은 대간꾼이 인증 장소가 아니라 올라갈지 지나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인증 장소가 아니나 나에게는 중요한 정상이라 바위를 기어올라 도착해 보니, 정상석 뒤로 여기도 이미 만원이었다. 미처 몰랐는데, 위험한 암벽을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올라오는 길이 있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등산객이 너무 많고,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에 정상석 앞을 가로질러 갈 수가 없어 바위 아래로 내려가 반대편에서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했다. 정상석 뒤가 아니라 앞으로 가서 정상석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다. 잡을 곳과 디딜 곳을 확인하기 위해 아래부터 위까지 훑어 올라가는, 인증 대상이 바뀌는 순간 다른 사진사가 가로질러 오는 게 보였다. 아니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머리를 치며 내려왔던 우회로로 다시 바위로 올라가 교대 순간 앞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 교대 순간을 노려 정상석을 찍었는데, 해발이 832m다! 아래에서 본 이정표 높이와 같다. 둘 중 하나는 틀렸다. 그렇게 사진을 남기고 미련 없이 내려가려는 데 옆에 있던 등산객이 부르더니, 사진을 부탁했다. 그 당시 주위에는 이미 인증을 찍은 사람은 내려간 후고, 아직 신규 인증 인원이 도착하지 않아 한가했다. 해서 서로 도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기대하지 않았던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상석 뒤로 보이는 속리산 전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바위에서 내려와 다음 목표인 봉황산을 향해 갔다.

높은 봉우리가 없는 모든 능선이 그렇듯이 백두대간 역시 보이는 거라고는 나무밖에 없는 길을 따라 형제봉을 떠나 11분 정도 가자, 저 앞 위로 다시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 아래 의자에 모여 쉬거나 점심을 먹고 있는 등산객이 보였다. 당시 시각이 11시 8분이라 점심으로는 좀 이르니, 간식을 먹고 있었나? 뭐든 가까이 접근해 보니,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정표 옆 의자에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거였다. ‘갈령 삼거리’ 이정표로 백두대간 인증장소다. 인증을 찍고 있는 대간꾼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주변의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3.6km 거리의 다음 고개인 비재를 향해 바로 출발했다. 밧줄이 매여 있는 곳을 지나기도 하고, 작년 9월에 올랐던 구병산[산행기] 갈림길도 지나며 뒤를 돌아보니, 좀 전에 인증을 찍었던 형제봉의 두 형제 바위가 보인다.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고 폰의 등산 앱이 아니라 스마트 워치로 상황을 파악하며 남진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언덕? 봉우리에 있는 헬기장을 지나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데 나뭇가지에 이상한 물건이 매달린 게 보여 읽어 보니 기상청 고층 대기 관측 1회용 소모품이고, 폭탄이 아니니 겁내지 말라는 글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기상청의 이런 노력 덕분에 이번 산행도 만족하는 중이다. 날씨는 전반적으로 맑으나, 기온은 영하를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강할 거라는 예보에 맞춰 산행을 준비한 결과다. 사실 그 강한 바람에 대비해 바람막이 모자를 계속 달고 왔고, 그 모자를 눌러쓴 덕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의 표시를 잠깐하고 다시 작은 봉우리에 올라 아래를 보니, 마치 공연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 설치한 좌석처럼 배치된 의자가 보였다. 여기에 공연장이 있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휴식을 위한 의자라기에는 너무 많아, 그 정체가 궁금한데, 앞서가는 등산객이 입간판 앞에서 열심히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평범한 지도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해서 서둘러 내려가 소개문을 봤는데, 백두대간 유일의 못(연못)인 "못제"란다! 후백제 견훤의 전설이 서려 있는!

못제를 떠나, 11시 43분에 비재까지 2.3km 남은 ‘억시기’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 갈림길도 기록으로 남기고 강한 바람에도 뭔가 볼만한 전망이 있지 않을까 좌우는 물론 뒤로 돌아보기도 하며 백두대간의 남쪽 끝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남진하다가, 뒤로 지금까지 달려온 백두대간과 속리산의 전경을 보자, 그냥 갈 수 없어 나뭇가지의 방해가 없는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멀어져 잘 보이는 않는 형제 바위도! 그런데 12시가 넘었고, 배도 슬슬 고파와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어디 주저 않아 밥 먹을 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웬만하면 어디든 자리 잡고 먹을 텐데, 그러기에는 바람이 너무 강했다. 해서 바람 피할만한 장소를 찾아 계속 가니, 저 아래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잘 만든 나무계단이 보였다. 정확히는 목재를 땅에 고정한 계단. 그리고 무언가 인위적인 길도. 해서 폰의 등산 앱(비탐방 전용)으로 위치를 확인해보니 비재다!

당연히 백두대간의 차량이 다닐만한 고개라면 있어야 할 거대한 대간 표지석이 안 보인다. 분명 차가 다니는 소리는 들리는데. 뭐 그러려니 하고 내려가 보니, 도로는 저 밑에 있고, 대간은 능선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터널이 아니라, 생태 다리다! 최근에 많이 설치하고 있고, 산림청인지 환경부에서 주관 기관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하는 일이다. 그 다리를 건너며 혹시 여기는 바람을 피해 밥 먹을 만한 공간이 있나 살펴봤으나 없었다. 작은 동물 특히 파충류가 몸을 숨길 수 있게 만든 거로 보이는 돌무더기는 여기저기 많이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리를 건너 다시 봉우리로 오르다가 오른쪽 아래 도로에 무언가 보여 카메라 줌렌즈를 이용해 당겨 보니, 백두대간 ‘비조룡(비제)’ 표지석이다. 아마 조금 전에 건너온 생태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백두대간 인증 장소 중 하나였지 않았을까?

생태 다리를 지나 작은 언덕에 올라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니, 능선 오른쪽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는 앞섰던 대간꾼이 삼삼오오 팀별로 모여 점심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이번 백두대간 구간에서 비재를 중간 정도로 여기고, 거리상 시간상 중간이 지난 걸 확인한 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편히 점심을 먹고 있는 거로 보였다. 사실 워치가 알려주는 정보에 의하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여기까지 왔고,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마감 시각인 5시 10분보다 1시간 30분가량 빠른 3시 30분경에 날머리에 도착한다. 해서 나도 이 구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적당한 자리를 찾았으나, 앞선 등산객이 다 차지하고 있어 매의 눈으로 자리를 찾으며 가다가, 오른쪽 옆 바위 군락에 뭔가 있을 거 같아 관목을 뚫고 들어갔으나, 훌륭한 식당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기도 싫어 방석을 꺼내 경사진 바위에 놓고 거기에 주저앉아, 준비해온 영양밥과 김치로 점심을 먹었다. 이번 점심에서 최고 별미는 밥도 김치도 아닌 보온병에 넣어온 따뜻한 결명자차다!

대략 12분에 걸쳐 점심을 먹고, 사람이 있었다는 모든 인적은 인멸하고, 식당을 떠나 다시 대간에 들어서 화령재를 향해 갔다. 그런데 바람은 갈수록 강해지는 게 상주시에서 나름 전망대라고 이름 붙인 곳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으나, 일단 바람이 강해 조금만 더 있다가는 바람에 날려 벼랑 아래로 떨어질 거 같아 카메라로 찍을 여유조차 없었고, 그나마 보이는 게 지금까지 봐왔던 속리산 전경이라 찍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겨야 할 거 같아 목숨을 걸고 지금까지 달려온 백두대간의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 상주시에는 인정하지 않는 전망대에 도착해 주변의 전경을 사진으로 찍고 아래를 보니, 속리산이 잘 보이는 곳에 추모를 의미하는 거로 보이는 철판이 바위에 있었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친구를 추모하는 게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등산로 상태가 아주 좋아졌고, 오르기보다는 내려가는 구간이 많아져, 산행에는 최상의 상태였다. 고로 속도는 평소의 페이스보다 빨라, 날머리에 일찍 도착해봐야 식당도 없어 딱히 시간 보낼 만한 게 없어 속도를 조절하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와중에 오지에서 반가운 리본이 달린 나뭇가지가 부러져 바닥에 나딩구는 게 걸려 순간적으로 저걸 치우고 갈까 하다가 이게 자연이라는 생각에 손대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리고 무시했다. 그리고 200여 미터를 가자 봉우리에 도착했는데, 백두대간 피앗재, 화령재 구간의 3개 인증 장소 중 하나인 봉황산 정상으로 그 시각이 2시 15분이었다. 마침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도착한 등산객이 있어 서로의 인증을 남겨준 덕에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봉황산 정상에서 인증을 찍은 후 상주시에 설치한 산명의 유래와 백두대간 상주 구간 지도를 본 후 4.2km 거리에 있는 날머리인 화령재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산행 중 예측한 대로 3시 30분 이전에 도착한다는 거! 문제는 마감까지 남은 1시간 30분을 뭘하며 보낼 거냐? 해서 혹시 산행 전 화령재 부근의 지도를 확인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식당이 있기를 빌었다. 2시 20분에 봉황산 정상을 떠나 2시 50분에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도 없는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 2시 52분에 급경사의 갈림길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계속 하산 코스라 힘들이지 않고 버스가 기다리는 날머리에 도착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비록 급경사는 아니었으나, 강한 바람 속에 계속되는 기복은 사람을 아주 피곤하게 만들었다. 한국 산은 어디든 마지막까지 등산객을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 3시 30분이 지났음에도 아직 대간을 달리고 있었다. 와중에 한 식당 겸 여인숙에서 세운 광고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이유는 '진부령까지 무사 완주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 때문이다. 북진하는 대간꾼을 위한 격려 문구로, 남진하는 대간꾼에게는 '중산리까지 무사 완주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맞다. 그럼 뭐라고 쓰는 게 좋을까 고민해 글자 수를 줄이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중산리, 진부령까지..."라고 써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다가 식당에서 광고를 위해 쓴 문구를 가지고 따지는 스스로가 정말 할 일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씩 웃고, 전진하자 차량 오가는 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저 앞에 도로가 나타났다. 그 시각이 3시 33분으로 예상보다 3분 늦게 도착했다.

도로에 도착했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어디에도 보이 않았다. 최소 3대의 버스가 있어야 함에도. 사당을 출발해 양재를 거쳐 온 두 대와 같은 안내산악회 소속으로 의정부에서 출발해 같은 코스를 달린 한 대. 해서 이정표나 버스가 있는 장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힌트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같이 온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 등산객이 밑에서 올라오고 있어, "버스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하고 물어봤다. 그 여성의 답은 예상대로 "밑에 있나 하고 내려가 봤는데 없어 내비를 확인해보니, 위에 있어 돌아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다. 즉 백두대간이 이 순간부터 4차선 도로다! 그 도로를 따라 200여 미터를 올라가자, 저 앞에 빨간 버스가 보인다. 그런데 버스는 예상했던 3대가 아니라 5대다. 이번에 동행한 안내산악회 3대와 폐쇄산악회 1대, 지방 산악회 1대 등 총 다섯 대였다. 역시 요즘은 백두대간이 대세다! 그리고 맞은편에 분수령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북이 낙동강 남이 금강으로 내 상식을 파괴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백두대간 연결을 목표로 한다면 언젠가는 저기가 들머리나 날머리가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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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피앗재에서 화령재까지 구간의 종착지이자,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인 화령재에 도착한 시각인 3시 41분으로 산행 중 예측한 3시 30분 보다는 10여 분 늦었다. 문제는 산행 마감 시각이 5시 10분이라, 이론적으로는 1시간 30분 후에 산악회 버스가 서울로 출발한다. 그런데 화령재 주변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어 남은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다. 4차선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에 무슨 사람이 있다고 식당이 있겠나?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백두대간 고개를 날머리로 이용하는 산행은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고로 하산주만 놓고 보면 날머리가 마을 주변에 있는 접속 구간이 있는 대간 코스가 힘들기는 하나, 훌륭한 선택이다! 해서 이런 상황에 익숙한 대간꾼은 하산주 마실 채비를 해와 팀별로 삼삼오오 모여 한잔하고 있었다.  대간꾼뿐만 아니라, 안내산악회에 익숙한 팀으로 다니는 등산객도 마찬가지만!

이들의 특징이 산행 중에는 물과 간식만 먹고 거의 달리다시피 날머리로 향한다. 그리고 보통 마감 시각 한두 시간 전에 도착해 산악회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먹거리를 꺼내 끓이거나, 구워 늦은 점심을 겸해 하산주를 마신다. 점심을 위해서라도 산행 중에는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려야 하지만. 이런 상황을 모르고 이들을 따라 달렸다가는 남은 시간을 멍 때리며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어쨌든 지금은 등산객 모두가 빨리 도착해 조기에 서울로 출발하는 걸 바랄 수밖에 없다. 내심 최소 30분 정도는 먼저 출발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5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으니, 10분가량 빨라졌을 뿐이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어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보니, 충주를 지나, 천안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휴게소로 들어간다. 천안삼거리다. 휴게소에서는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오랜만에 식혜를 사서 마시는 거로 하산주의 아쉬움을 달랬다.

10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출발한 버스는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양재로 달려 6시 51분에 양재역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했으니, 화령재에서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경북 상주가 이렇게 가까운 도시였나? 지하철을 이용해 평소 산행보다 이른 8시경 집에 도착해 씻은 후 2019년 설악산에서 치마바위 아래에서 채취한 영지버섯으로 술을 담고 남은 35도 담금주와 삼겹으로 하산주를 마시는 거로 최종 산행을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대간 팀 계획대로 '피앗재 산장 -(접속)→ 피앗재 → 형제봉 → 갈령 삼거리 → 구병산 갈림길 → 헬기장 → 못제 → 비조령(비재) → 봉황산 → 화령재'의 16.66km(스마트 워치), 휴식 포함 5시간 53분의 백두대간 피앗재~화령재 구간을 달렸다.

거의 평속 3km에 이르는 속도로 달린 산행으로 산악회가 산정한 7시 30분보다 1시 30분 정도 일찍 종료한 산행이었다. 산악회의 착오일까, 내가 너무 빠른 걸까? 대간꾼의 분위기에 휩쓸려 대간 산행만 하면 속도가 빨라진다.

바빡 마른 숲과 강한 바람, 산불 예방을 위해 입산 금지한 이유을 잘 알 수 있었고, 동해안의 산불을 잡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몸으로 체감한 산행이다.

속리산 전경을 빼면 딱히 조망이 좋은 것도, 산이 재밌는 것도 아니라, 백두대간 종주가 목적이 아니라면, 권할 만한 구간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