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사랑 - 로버트 브라우닝
방에서 방으로
나는 그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빠짐없이 찾아 헤맨다.
내 마음이여 걱정하지 말지니, 너는 꼭 찾으리라
이번에야말로 그이 자신을
커텐에 남겨진 그이가 지나간 흔적이라든가
벤취에 남은 향내가 아닌
그이 자신을
지나가면서 그이가 닿기만 했을 뿐으로 허리판에 새겨진
꽃은 새로이 피고
맞은 편의 거울도 모자의 깃털에 반짝이었네.
그런데 이 하루도 점차 남은 때가 얼마 안 되고
문 저쪽에 다시 문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그 운세를 시험해 본다-
넓은 집을 거기에서 중앙에로
먼저와 같은 결과로다, 내가 들어가면 그이는 이미 나간 뒤여라.
이렇게 꼬박 하루를 탐색에 허비한다 치고 그것이 대체 무슨
일이랴.
이제 이미 해거름의 때, 그러나 조사해야 할 방은 멀리까지
이어져 있고
찾아야 할 방, 있고 싶은 방은 끝없다.
탁월한 극적 독백과 심리묘사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로마의 살인재판에 대해 쓴 시집 〈반지와 책〉(12권, 1868~69)이다. 이 시집은 1698년 로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재판과정을 소재로 했다. 그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나오자마자 갈채를 받아 로버트 브라우닝은 당시 가장 주목받는 문인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아버지는 런던에 있는 영국은행의 사무원이었다. 브라우닝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아버지로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기초를 배웠다. 1828년 런던대학에 다녔으나 첫 학기 도중 그만두었다. 초기 시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강렬하고 병적인 자의식'을 드러내어 이기적으로 이용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비판은 브라우닝의 시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브라우닝은 배우 찰스 머크리디의 격려로 몇 년 동안 이미 〈스트래퍼드〉(1837)에서 시도한 바 있는 시극 형식에 몰두했다. <반지와 책>을 발표하면서 런던 사교계의 초대가 쇄도했고 여름에는 친구들과 프랑스·스코틀랜드·스위스에서 지냈으며 1878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여름을 보냈다. 브라우닝의 대표적 후기시는 장편의 이야기시나 극시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