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고백 / 송덕희
나희덕의 시 <빚은 빛이다>를 지도하며 쓴 이훈 교수의 글을 읽었다. 내가 이룬 작은 성취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세상일에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묵직한 내용이다. ‘미래의 타자에게 책임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곱씹다가 그분이 떠올랐다.
‘혹시 검색하면 무슨 정보가 나올까?’ 선생님의 이름은 특이해서 또렷하게 기억한다. 녹색 창(네이버)에 입력했다. 전라남도 퇴직 교원 훈포장 명단이 첫 번째로 나온다. ‘아, 어쩜 찾을 수 있겠는걸?’ 기사를 누르니까 소속, 직위, 이름이 쭉 보인다. 두근거리며 황조 근정 훈장부터 훑었다. 장관 표창자까지 276명,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며 내려갔다. 녹조 근정 훈장에 명단이 있다!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 있는 중학교 분교명, 교사, ㅅㄴㅅ. 2014년 2월 보도자료다. 거꾸로 퇴직 시점을 계산해 보니 확실하다. 가슴이 떨렸다.
곱슬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작지 않은 키에 체격도 좋았다.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며 미소를 지으면 여학생들은 까르르거린다. 군대를 갓 제대해서 ‘다, 나, 까’로 말을 맺는다. ‘왜 웃나?, 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질문도 세련되고 간결하다. 거친 고흥 억양과 사투리와는 다르다. 팔짱을 느슨하게 끼고, 약간 짝다리로 서서 우리나라 경제를 설명한다. 글씨도 선생님 성격을 닮아 단정한 궁서체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셔츠와 넥타이는 잘 어울렸다. 한 마디씩 툭 던지는 농담으로 학생들을 사로잡는다. 선생님이 돌아서 판서하는 틈을 타 여학생 몇은 외모를 놓고 소곤댄다. 2학년 사회를 가르쳤다. 나는 잘 보이려고 그 과목만 파고 공부했다. 가슴이 맞방망이질했지만, 티를 내지 못했다.
내 친구 o는 대놓고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했다. 종이학 천 마리를 몰래 주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편지를 써 왔다. 학생들 사이에 ‘ㅅ 선생님은 o의 것’ 소문이 파다했다. 선생님도 아는 듯했다.
o는 우리 동네 빨간 기와집에 산다. 사립문 사이로 마당이 보였다. 부모는 손끝이 야무져 늘 깨끗했다. 아버지는 회색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엄마는 공부 좀 하는 내가 딸내미와 가깝게 지냈으면 했다. 가끔 귀한 사과나 배를 깎아 주었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멋을 부리는 데 신경을 더 썼다. 키는 작았지만 나보다 한 살이 많아 성숙한 티가 났다. 앞머리에 힘을 주어서 새 깃털처럼 세우고 교복은 몸에 쫙 붙게 맞춰 입었다. 목깃에 단 칼라는 풀을 먹여 전기다리미로 다린다. 새하얗고 빳빳했다. 누리끼리하고 후줄근한 내 것과 달랐다. 사촌 언니가 3년 입었던 걸 물려받은 치마는 닳아서 반들거렸다. 체구가 작은 나에게 품이 너무 컸다. 부끄럽고 부러웠다.
3학년 때는 운 좋게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 ㅇ는 종례할 때면 복도에서 기웃거리며 얼굴을 내밀곤 했다. 하루에 한 번씩 눈도장을 찍어야 한단다. ‘실장이 된 나를 부러워하겠지?’ 으스대고 싶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밤늦도록 공부했다. 이제는 나도 좋아한다고 말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월 말 즈음, 선생님이 겨울 방학에 결혼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사모님은 키도 크고 파마머리를 한 미녀라며, 길거리에서 둘이 손잡고 가는 걸 봤다고들 했다.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사실을 말해 달라며 수업도 안 하고 떼를 썼다. 한참 뜸을 들이더니, 우리 몰래 결혼했노라며 말끝을 흐렸다. 책상을 두드리며 야유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생님은 졸지에 배신자가 되었다. 기운이 쭉 빠지고 한동안 심드렁했다. 마음을 다잡은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ㅇ는 속이 없는 건지, 일편단심이라며 쫓아다니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가을 어느 날, 선생님이 큰 가방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여동생 것이지만 깨끗하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와서 보니, 그 당시에 있는 집 학생이나 입고 다니던 검정 모직 코트가 반듯하게 개켜 있었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치마 길이와 잘 맞았다. 예쁘고 따뜻했다. 딱 봐도 비싸게 보이고 새것처럼 자르르했다. 그러나 낡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나를 안쓰럽고 불쌍하게만 생각했나 싶어 속상했다. 그해 겨우내, 걸치지 않았다. 엄마는 속도 모르고 왜 모셔만 두느냐고 성화였다. 아무리 추워도 선생님 앞에서 그걸 입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내 옷이 되었다. 살을 에듯 세찬 바람이 부는 날에 문득문득 선생님이 생각나곤 했다. 몇 년 후에는 덩치가 커져서 못 입게 되었어도 꽤 오랫동안 바람벽에 걸어 두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엊그제 같은데, 45년이나 흘렀다. 어리고 유치해서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받기만 하였다. 이 빚을 빛이 되게 하려면, 지금 내가 맡은 800여 명의 학교 아이들을 정성껏 챙기는 일이 아닐까?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을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하며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줘야겠다.
곧 만나게 되면 뒤늦은 고백을 하련다. 코트 잘 입었다고, 그리고 참 따뜻한 시절이었다며.
첫댓글 고맙고 자상한 선생님입니다. 나도 고등학교 3년 내내 언니가 입던 후줄그레하고 누런 색의 교복을 입고 다녔어요.
지나온 그 시절은 다 비슷했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와, 선생님, 글이 참 이쁩니다.
총각 선생님을 좋아한 여중생이 잘 그려져요.
저 같아도 그 코트 안 입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동정은 비참해. 하하.
잘 읽었습니다.
제 글에 팍팍 공감해 주셔서 기분 좋군요. 참 자존심은 센 여중생이었죠. 하하
짧은 소설 읽는 듯 합니다.
글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설 같은 사실이지요.
우와. 글이 참 좋아요. 저도 매번 짝사랑 많이 했어요.
칭찬 고맙습니다. 다 짝사랑만 하다가 무너뜨리고 그랬죠.
@송덕희 마음이라도 전해볼 걸 그랬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수학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셨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성껏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고등학교 때라 더 애틋한 기억이겠군요. 하하
짝사랑하는 선생님과 코트 이야기. 단편소설이네요. 저도 짝사랑했던 여고 선생님이 있었는는데 코트가 없어서 이런 멋진 글은 안 나오겠네요. 하하.
향라님의 재치 만점 댓글이 재밌어요. 잘 읽고 공감해 주셔서 고맙고요.
저도 선생님 짝사랑 단골이었죠.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순수한 사람들은 짝사랑도 많이 할까요? 하하
선생님 글 읽으며 국민학교 1학년 우리 반 담임이셨던 김은규 선생님을 떠올렸어요.
검정 줄무늬 양복에 커다란 눈매와 미소가 온화하셨죠. 2학년 올라가면서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지요.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지냈어요. 지금쯤 할아버지가 되셨겠네요.
수없이 찾아뵙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어떻게 지금까지 성함을 기억하는지 스스로도 신기하답니다.
1학년 선생님 이름까지 기억하신다면 영향을 많이 받아설까요? 그 시절 멋진 분은 대부분 선생님이셨죠.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구나 짝사랑하는 선생님은 있었나 봅니다. 글쓰기 반에 선생님들도 그런 학생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부럽네요. 하하하.
성훈님도 여선생님 좋아 하셨던 걸로? 하하
다 추억이 비슷하나 봅니다.
하하. 저는 그런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은 선생님.
선생님을 향해 연정을 품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1인입니다.
글 재밌고 좋아요.
진짜로 없었다면 매우 이성이 강했군요. 😀
작가님이 칭찬 해주셔서 기분 좋군요.
선생님 추억은 다 단편소설입니다. 그 시절 소녀, 참 예쁘네요.
제가 너무 미화시켰나요? 호호호
꿈 같이 흘러간 시간이 저를 있게 했겠죠. 잘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