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영혼,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2012. 1. 21.
칠갑산자락, 그 구름 흘러가는 곁으로 하얀 눈꽃들이 고즈넉합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겨울까치 한 마리, 나뭇가지에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눈 시린 하늘빛으
로 충만한 은혜로운 생명의 공간, 바람 한 잎이 얼굴을 다독이며 지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처연히 불붙는 그리움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기다림과 기다림으로 차분히 건져 올린 삶,
문득 아름답다못해 눈물겹기 조차한 햇살부신 그 모습, 그래서 이 아침 세상은 살아 숨 쉬
는 이웃이라 했던가요.
다시 바람 한 점, 그 기약을 이어가며 연신 손을 흔드는 추억 속의 흔적들을 정지된 시간 속
으로 불러들이고, 내어줄 것을 다 내어주며 차분히 돌아서는 삶, 생명과 생명을 맞대는 숙
명적인 관계는 깊고 깊은 지혜를 함께 나누는 다소곳한 겸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월의 그늘이 잦아들 수만 있다면 몸져누워도 차마 다 못한 말, 이제는 그만 경계를 낮추
라고 온몸 다해 밀어 올리며 서로의 넘나듬도 두지 않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작은 것
과 큰 것, 잘남과 못남으로 시작되는 모든 생명들의 참 가치, 언제쯤이면 떠나갔던 이별이
다시 돌아오리라는 뒷모습만으로도 소중한 그 야단스럽지 않은 모습들, 그 목소리조차 조
그맣게 내려놓으며 하얗도록 깨어있을 하늘같은 몸을 밝히는 숲은 그대로인데, 애써 묶어
놓고 싶은 저마다의 삶은 추억 속에 잠시 멈춰선 듯, 눈 시린 만큼의 제몫들을 차분히 늘려
있을 것입니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는 그대들의 아름다운 로망, 겹겹한 시간
속을 품고 지켜내는 알토란같은 일상들은 차분히 내려 쌓이는 다양한 모습들의 생명체들로
각자의 삶을 마련하는 제 기능을 통하여 가없이 흘러가는 계절을 순환하는 영혼의 기록들
을 한껏 남겨둔다고들 하지만, 소리로 스러질 듯 길을 내는 안개처럼 어지러운 한 시대는
오고가도 어쩌면 뜨거웠을지도 모를, 어쩌면 서툴렀을지도 모를 우리네 청춘을 헤집은 바
람 한줄기.
방황했던 날의 목소리와 하늘을 마주하는 어설픔으로 두근거림의 기약은 하릴없는데, 오직
그대로였던 서로 다른 무수한 생명의 그대들, 그리움을 잇댄 터전으로 생명의 연속성을 알
게 하는 삶과 죽음마저 아집과 편견을 쓸어내는 응축된 윤회의 자세로 내어줄 것 모두를 다
내어주고도 저마다 깃드는 작은 기도의 소망처럼 그렇듯 깊어만 가고, 우리도 그 속에서 그
렇게 세월이 더해 감을 부대껴야만 하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담아내고 있었으니.
- 언젠가는 버려야한다는 자연의 순리, 제 가진 모두를 버려야 다시 태어난다는 우주적 대
섭리, 그래서 잘 기억하는 일이란 그 기억들을 잘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 그리함으로 하여 세월의 그리움은 늘 상 깨어있으리니, 살아있음으로 살아있는 만큼 모
든 영혼들의 삶은 그렇듯 떠오르며 가파름을 잊은 듯 저마다의 손을 흔들고 있다지만, 온몸
아닌 눈과 가슴만으로 새겨두려는 우리네 영혼만은 그 믿음의 깊이를 간직한 세계를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시대성이란 일상적 가치관을 매개로 하여 그대들의 목소리를 잊고 사는 건
아니었는지. 그랬겠지요, 우리는 너무나도 가뿐 숨과 잦은 등돌림으로 하여 슬프도록 아름
다운 자연의 이치를 잠시 망각하고 더하여 극단의 애증(愛憎)마저 깨어낼 수 없어 세월의
무게를 더해 가는 가슴속은 키 큰 나무에 묻힌 그림자처럼 마냥 서성이고 있었음을 미처 가
늠치도 못하였으니, 우리네 삶의 꿈이란 이름으로 대비되는 또 다른 이름의 꿈, 어쩌면 그
꿈이 우리네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으리란 걸 애써 아름답다는 언어와 시각만의 교란
을 통하여 스스로의 합리화에만 목청을 높이다가 그 꿈의 줄서기에 따라나서는 참으로 거
룩할 수만은 없는 꿈, 아니라면 혹여 꿈 아닌 꿈만을 찾아 나서는 구차한 꿈의 연속은 아니
었는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도 정처 없는 영혼으로 녹아나는 꿈, 우리는 그 속에서 그 꿈
들이 지니는 속성이 얼마나 삶을 지치게 하고 처연하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
르는 척 세월만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애오라지, 어둠이 걷히면 찾아오는 빛, 한참을 기다리지 않아도 때를 아는 자연은 모두를
다 내어주고도 가야할 때와 머무를 때를 잊지 않고 무수한 생명들의 숨결을 애틋하게 담아
내는 진한 내음의 향기로운 삶, 삶이란 그렇듯 떠오르며 무량한 시공(時空)과 벽공(碧空)속
에 머무를 것이라는 속 깊은 사연을 간간이 눈뜨게 해주는 기다림과, 그 기다림으로 건져
올리는 지난(至難)한 연민으로 하여 허름한 몸을 밝히려는 사려(思慮)는 끝도 없는데, 그리
움은 설핏 강물처럼 흐르고 스쳐 지나면 소리 없이 부서질 거라는 끝내는, 애 지듯 낡은
점 하나로 그리도 서리치는 꽃이 되어 꽃은 다시 바람이 되는 아득한 물 사름.
아아, 꽃이거나 바람이거나 - 의식이란 시간의 흔적 앞에선 영원의 미완이라고 - 그리움만
으로 잦아드는 우리네 흔적 또한 지워지지 않을 눈꽃 향기였느니, 기약만을 이어가는 흔들
림은 애 저문 노을 녘에 소리 없이, 소리 없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글 시인 최병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