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누구의 장단에 따라 춤을 추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파스칼이 인간을 가리켜 “천사와 사탄의 중간 존재”라고 말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모든 인간이 자기 안에 천사와 사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 안에 있는 천사의 말에 순종할 때 그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사탄의 조종을 받을 때 그는 악한 사람이 된다.
인간의 내적 갈등이란 결국 자기 안에서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천사와 사탄 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위대한 성자일수록 그 내적 갈등이 더 심한데, 그것은 그가 그만큼 더 선악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속인(俗人)일수록 그런 내적 갈등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일방적으로 사탄의 손아귀에 잡혀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누가복음 22장 3절에 보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그를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려고 했을 때 “사탄이 가룟 사람 유다에게 들어갔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를 배반한 자는 누구인가? 유다인가, 아니면 그 안에 들어간 사탄인가?"
결국 유다는 사탄의 조종에 사로잡혀 “원하지 않는 일을 했던 희생자인가? 아니면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탄과 천사 간의 싸움에서 져버린 패배자인가? 사탄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지배할 경우 우리 자신이 또 다른 유다가 될 사람들이 아닌가?
“내 마음 나도 몰라”란 유행가 가사가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내 마음과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 자들이 아닌가? 또 다른 자아인, 자기 속의 사탄의 지배에 따라, 그의 충동에 따라 “원하지 않는 일”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안델이 지은 〈분홍신>이란 동화도 인간의 이런 점을 말해준다.
어떤 소녀가 마술사가 만든 분홍신을 몹시 가지고 싶어 하다가 드디어 그것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러나 소녀가 그 분홍신을 신는 순간부터 불행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 신은 신기만 하면 자꾸 춤을 추어야만 했다. 그만 그치려야 그칠 수가 없는 춤을 일생동안 계속 추어야만 했다. 어떤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잠깐이고,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다니며 춤을 추어야 했다. 집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써도, 이제는 좀 쉬어보려고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이제는 제 마음보다도 분홍신에게 붙들려 다니는 것이었다. 이렇게 소녀는 결국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다가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 어느 누구의 장단에 따라 춤을 추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내 안에 있는 천사와 사탄 중 어느 누가 더 힘이 세서 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누구이며, 누가 과연 나인가?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