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례야(是禮也)!
子入大廟(자입대묘)-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每事問(매사문)-매사를 물으시었다
或曰(혹왈)-혹자가 말하기를
孰謂鄹人之子(숙위추인지자)-그 누가 저 추인의 자식을 일러
知禮乎?(지례호)-예를 안다고 하는가?
入大廟每事問(입대묘매사문)-태묘에 들어와 매사를 물으니
子聞之曰(자문지왈)-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是禮也(시례야)-묻는 것이 곧 예이다!
논어(論語)
시례야(是禮也) 시구야(是丘也) !
위의 내용은 논어(論語) 팔일(八佾)편 1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산동반도에 있는 곡부(曲阜)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출생지이며, 2,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노나라의 수도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주(周)나라의 정치가인 주공(周公)을 모시기 위해 세운 웅장한 사당이 있는데 이를 태묘(太廟)라하며 이곳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공자가 대사구(大司寇-형조판서)의 벼슬에 있을 때 공자의 학덕을 존경한 노나라의 임금과 신하들이 그해의 태묘제(太廟祭)에 공자를 제관(祭官)으로 임명한 적이 있었다.
옛날 제사의 법식은 천자(天子)의 예에 준하는 것이므로 매우 까다로웠으며 국왕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제사에 참석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런데 제관으로 임명된 공자는 모든 것을 빈틈없이 행하여야 되는데 태묘에 들어가서 제식이 진행됨에 따라 모든 단계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옆 사람에게 묻고 있다.
공자는 원래 “예의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옛날의 문헌에 밝기 때문에 대사구(大司寇)라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대사구가 되어 태묘에 들어오니까 하나도 모르는 듯 제사 절차의 순간마다 구차스러울 정도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중얼거리기를
“아니 그 누가 저런 추인(鄹人)의 자식을 예(禮)의 전문가라고 한단 말인가.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묻기만 하는 멍청한 자를 제관으로 임명 할수 있단 말인가” 하는 비난의 소리가 나왔다.
당연한 말이다. 장엄한 제식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야 할판에 대사구가 일일이 묻고 있으니 얼마나 실망스럽게 보였겠는가.
위의 추인(鄹人)의 자식이라는 말은 매우 심한 모욕적인 말이다.
추인(鄹人)이란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을 말하며
추(鄹)는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지방관(地方官)으로 근무하던 고을 이름으로 이 고장에서는 좀 괴팍하고 골치 아픈 요즘 같으면 어중이떠중이 깡패 같은 인물들이 배출된 곳으로 이곳 사람들을 업신여긴 지방색으로 추인(鄹人)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지방색을 나타내면서 비하한 말로 "--내기" "--사람"
하는것과 같은 말이다.
그때 공자는 주위사람들의 불만에 대하여 상대방을 조금도 탓하거나 자신을 변명하는 기색도 없이 말하기를
“내가 묻는다고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예(禮)이다”
시례야(是禮也)!
우리는 함축된 이 한마디에 공자의 예악(禮樂)사상과 인품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예(禮)라는 것은 고정불변의 절차가 아니고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내가 아무리 예의 전문가” 라 할지라도 이곳 태묘의 제식은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곳 예식을 물어 알고 행하여야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제사도 지방마다 풍속이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묻는 것이 오히려 태묘의 제사를 차질 없이 지내는데 사려 깊은 정중한 행위며 바른 예라는 것이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 간에 대화 내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배우라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중 공자의 사상을 요약하여 볼 수 있는 것이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다.
공자는 『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記述)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이 얼마나 위대한 겸손의 모습인가!
필자는 논어를 읽는 과정에서 이 『시례야(是禮也)』를 읽고 내스스로 얼마나 부끄럽고 뉘우쳤는지 모른다.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 『시례야(是禮也)』가 내 일상의 회초리로 자리 잡고 있다.
끝없이 물어야 하고 평생을 배워야 겨우 서울길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라 생각된다.
남을 바르게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이 바르게 묻고 배움이 전제 된다.
지금 우리의 사회교육이나 학교교육 가정교육들이 바르게 물어서 배우지 못한자들 때문에 학교에서나 자녀들의 가정교육을 바르게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공자는 이어 제7 술이편(述而篇)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
나는 너희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고 나 혼자만 하는 일이 한번도 없지 않느냐?
이 매일같이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바로 나 공자다. 시구야(是丘也)』
孔子謂弟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공자위제자 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시구야
이렇게 묻는것이 예(禮) 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나 공자다!
시례야(是禮也) 시구야(是丘也) !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