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종도 백운산(白雲山, 255.5m) 산행 #1
< 인천 중구 운남동 산 121-1 >
2026.7.3(금) 맑음
<산행코스 및 구간별 소요시간 : 7.5km, 3시간 20분 소요>
운서역/05:20-(택시 이용)-용궁사/05:30-등산로 입구-06:02-육각정자/06:05-체력단련장/06:21-산불감시초소/06:30-육각정자 쉼터/06:48-
운복동,용궁사 갈림길 통나무 쉼터/07:04-헬기장/07:06-육각정자 쉼터/07:08-백운산 정상/07:24-백운산 봉수대지-
백운산 데크전망대-사색의 쉼터/07:52-백운산 치유림 관리소/08:11-백운산 날머리/08:12-운서역/08:40
백운산은 영종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인천광역시의 중구 영종동에 위치한 산이다(고도:255m)
『해동지도』에 백운산(白雲山)이라는 지명이 보이고 금산(禁山)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서 제물포 서쪽 바다에 자연도(紫燕島)라는 섬이 보이고 그 안에 백운산이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아침저녁마다 산 정상부에 흰 구름이 자욱하게 서려 있다고 해서 백운산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전한다.
과거에 영종도 거주민들은 백운산에 산신이 살고 있다고 여겨 산신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영종도는 조선 시대에 영종진(永宗鎭)이 설치되어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었고 백운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날 백운산 중심부에 있는 마을을 중산동(中山洞)이라 부르며, 이를 중심으로 서쪽에 운서동, 남쪽에 운남동,
북쪽에 운북동이라는 지명이 부여되어 있다.
2026.7.3(금) 인천 영종도 2일째 일정으로
오전 5시경 숙소인 렉스모텔을 출발하여 운서역 입구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산행들머리인 용궁사로 이동한다.
05:30 용궁사로 향하는 오솔길 사색의 숲을 따라 용궁사 주차장에 도착한다(택시비 9.600원)
용궁사
지금부터 1,300여 년 전인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산 이름을 백운산, 절 이름을 백운사라고했다
흥선대원군이 이 절에 머물면서 10년 동안 기도를 했다.
1864년에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은 절을 옛터에 옮겨 짓고, 구담사에서 용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설에는 영종도 중산 월촌에 사는 윤공이란 어부가 꿈을 꾼뒤 바다에서 작은 옥불을 어망으로 끌어올려
이 절에 봉안했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재 대원군이 중건한 관음전과 대원군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는 대방, 칠성각과 용황각등의 객사가 남아 있다.
관음전에는 관음상이 고풍스러운 후불탱화를 배경으로 앉아있다.
절 기둥에는 해강 김규진이 쓴 시가 새겨져 있고 절 입구에는 둘레가 5.63m, 수령 1,000년이 넘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서 있다.
용궁사 연못과 포대화상
함께 행복해지는 포대화상을 보며 힐링을 하시고 여유롭게 떠다니는 잉어를 바라보며 만복을 받아가세요!
일정각(一正覺)
내 언제 여기 왔나. 오고 감이 없는 것을
해도 달도 묻어놓고 천만겁을 달구어서 / 여의주를 움켜지니 흰 구름도 아래로다.
한번은 밀고 한번은 잡아끄니 / 물과 뭍이 하나인데
뉘라서 동편이라하고, 서편으로 갈랐느냐?
사해를 한 구슬에 꿰었으니 승 속이 따로 없네.
한 그루의 반얀나무가 되리라!.
백운산 용궁사에서 서기 1996년 6월 초하 심운섭.
영종둘레길 안내도
사찰 입구에 서있는 각하용(覺何用) 표지석
용궁사 범종각
할머니 느티나무와 대웅보전
용궁사 대웅보전엔 본전불인 석가모니불이 가운데에 협시불인 약사불과 극락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옆의 포대화상
용궁사 경내에 느티나무 2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왼쪽은 할머니 나무, 오른쪽은 할아버지 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무의 나이는 1.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0m. 둘레 5.63m이다.
이 나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커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할머니 느티나무
11m 높이의 석고미륵불
관음전
용궁사 관음전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기둥에는 해강 김규진이 쓴 글씨(주련)가 4개 남아있다.
내부에는 본래 옥으로 조각한 관음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시대에 도난당하고 현재는 청동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관음전 안에 본래는 옥석으로 조각된 관음상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둑맞아 현재는 청동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용궁사 수월관음보살도
관음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보살로 자비를 상징한다.
수월관음보살도는 보름달이 물 위에 떠있는 형상으로 부처님을 그린 불화를 말한다.
용궁사 화면 중앙에 흰 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기암괴석 위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관음의 오른쪽 바위 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화병이, 왼쪽에는 한 쌍의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19세기에 유행했던 형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도교적인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
이 그림은 1880년에 근대의 저명한 화승인 축연과 종현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3폭의 비단을 이어서 만들었다.
상궁을 비롯한 여러 궁중 인물이 시주자로 등장하고 있어 왕실과의 관계가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삼성각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
소원바위 올라가는 길
지장전(종무소)
요사채는 맞배지붕집이며 건물 앞면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용궁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용왕각
옛날에 성이 손씨인 어부가 있었는데 바다에서 신기하게도 돌로 만든 부처님을 건져 올려 절에 모셨다.
그때 절 이름은 백운사였고, 사람들은 이 돌부처를 절 안에 모신 뒤로 신기한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흥선대원군이 절 이름을 바다와 관련된 이름인 용궁사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또 절 옆에 있는 약수터 (용왕각 옆)에서는 지금도 맑은 물이 나오는데
그 물을 마시고 바로 앞에 있는 나무 앞에서 기도하면 출산의 복이 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