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엄마
한파가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한 일월중순경이었다.
아직 재판이 열리지 않은
적막한 법정 앞은 칼날 같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 바닥에서 자그마한 노파가
잠시도 쉬지 않고
손을 비비면서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장작개비같이 바짝 마른 몸에
홑겹의 바지를 입은 노파는
곧 쓰러질 것 같이 위태해 보였다.
곧 재판을 받게 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 같았다.
재난을 만난
자식을 위한 엄마의 기도는 어떤 것일까?
노파의 모습에
내 어머니의 기도가 겹쳐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얼음장 아래의
차가운 물에 들어가 기도하는 독한 어머니였다.
아이들 입시를 앞두고
아내에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내는 못하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꽁꽁 얼어붙은 법당에서
물에 묻은 머리가
고드름이 된 채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사십대 중반쯤
내가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피 같은 땀을 흘리며
여섯 시간의 수술시간동안 쉬지 않고 기도했다.
내가 모함에 빠져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퇴근해 인사하려다가
우연히 방문틈을 통해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촛불 앞에서 어머니는
나를 구해 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었다.
아들의 고민을
알면서도 모른척 하던 어머니였다.
가슴이 울컥했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 까지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 어머니의 기도를 먹고 나는 지금까지 왔다.
기도하는 노파를 보면서
그 누군가 좋은 엄마를 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법정에서 재판을 마치고
한 시간 쯤 후에
다시 그 법정 앞 복도를 지날 때였다.
절을 하던 노파가
망부석 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측은해 보였다.
내가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신데 이렇게 추운데서 기도하세요?”
--“저는 자식을 감옥에 집어넣은 못된 에미예요.”
불안한 표정의 노파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런 때는 진지하게 들어만 줘도 위안이 된다.
나는 조용히 노파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모두 약대를 나왔는데
며느리만 약사시험에 합격하고 아들은 떨어졌어요.
며느리 이름으로 변두리에 조그만 약국을 차리고
아들은 공부를 계속했어요.
그런데
젊은 여자 혼자 약국을 하기가 힘들어요.
동네 불량배들한테
봉변을 당할 뻔 하기도 하고
술취한 사람이 희롱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공부만 하는 아들을 다구쳐서
아내를 도와 약도 팔라고 했어요.
얼마 안 있어 아들이 약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이제 면허증만 받으면 흰 가운을 입고
당당하게 약사노릇을 할 수 있게 됐죠.
그런데 갑자기
무면허 약사를 적발하는 집중 단속반에 걸려서
아직 면허증이 나오지 않은 아들이 감옥에 갔어요.
다 내 탓이예요.
맨날 아들을 구박만 했어요.
며느리는 약사가 됐는데 아들은 못됐으니까요.
그것만 해도 마음고생이 심했을텐데----”
노파는 오열했다.
입이 아니라
온 몸에서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약사법은 면허증 없이 약국개설은
물론 약도 팔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전과가 생겼으니
면허증이 나오지 않을 수가 있었다.
판사가 노파의 기도하는 모습과 함께
애타는 사연을 직접 들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란 바로
이런 모습과 모자의 내면을 변론서류에 생생하고
밀도 있게 묘사해 재판장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아닐까.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는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검사가 법대 위에 올린 공소장에는
자격없이 약을 팔았다는
몇 줄의 사무적인 문장만 들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본 판사는
양형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형을 선고하는 게 현실이었다.
--“아드님은 잘 될 겁니다.
만약 일심재판이 끝났는데도
아들이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노파에게 공손히 건네 주면서 말했다.
그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판사의 피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그 마음을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파의 얼어붙었던
얼굴이 조금은 풀어진 느낌이었다.
잠시 후 내가 자리를 떠났다.
노파는 다시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작고 왜소한 어깨가 떨리는 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혹시
‘변장한 천사’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처럼
그 천사는 내가 그냥 지나쳐가
나를 살피는 것 같아 조심할 때가 있다.
또 어떤 때는 마음속의 어떤 존재가
나의 손발과 허리를 띠로 묶어
그 사람들 곁으로 끌고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작은 글 속에
내가 살던 시대의 한 귀퉁이를 풍속화 같이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