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래 이런 자리에 설 위인이 못 됩니다.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고 미국에서 경제학 교수를 하다가 귀국했는데 연구소 같은 데서 조용히 지내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고, 배경이 있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과거사가 있습니다.
경과보고랄까, 하여간 그 동안의 사연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금 장황하더라도 조용히 들어주시고 진짜 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말미에 하고자 하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건의 발단>
2년 여 전인 2002년 초봄이었습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경선에서 불리하게 된 이인제 경선후보 측에서 마지막 카드로 노무현 경선후보 장인의 빨갱이 전력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냥 보통으로 좌익 활동을 한 것이 아니고, 6.25 때 인민군 치하에서 양민 11명을 학살한 사건을 폭로한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무덤덤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기사를 보고 당신 고향 동네 얘긴데 사실이냐고 물어 오길레, 사실은 사실이다, 그 사건의 대표적인 희생자가 바로 우리 큰아버지, 우리 중부님이다 고 덤덤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인이 한 짓을 사위가 어쩌란 말인가? 사위가 무슨 죄가 있으며, 연좌제가 폐지 된지 오랜데 딸인들 무슨 죄가 있느냐? 50년이 넘은 과거사를 지금에 와서 들춘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과거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득표 전략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이인제 측의 폭로를 나쁜 짓으로 매도하고 넘어 갔습니다.
당시 노무현경선후보도 사랑하는 마누라와 이혼하라는 말이냐고 대응해서 민주당 대의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고, 장인이 빨갱이 한 덕분으로 오히려 표를 더 많이 얻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거기까지는 우리 노무현 대통령 장인에 의해 학살된 양민의 유족들도 별로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대통령 부인 권양숙의 거짓 증언>
그러다가, 노무현씨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습니다. 2002년 4월 27일의 일입니다. 노무현씨가 대통령후보가 되니까 그 부인인 권양숙씨에게 기자가 권양숙씨 아버지이자 노무현씨의 장인인 권오석의 양민 학살 사건에 대해 물었습니다. 대답인 즉, “기억이 나지 않아 상세하게 얘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모님 일은 잘 모릅니다. 부모님 일을 모른다는 게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땐 나이가 어려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와 저는 돼지 띠로 나이가 같습니다. 6.25 때 만 세살밖에 안 되었으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6.25 때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6.25 때 우리 집안일은 어른들로부터 여러 차례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6.25 때 피난 가서 일어난 사건들을 생생하게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이가 어려서 아버지의 범죄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권양숙씨 아버지 권오석은 미전향 무기수로 복역하다가 권양숙씨가 24살 되던 해 마산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아버지가 20년 넘게 감옥에 있는데 성인이 된 그 딸이 왜 아버지가 감옥 가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단 말입니까? 면회도 안 했다는 말입니까? 권오석이 병이 들어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가석방되어 5년 동안 가족과 함께 생활했고 동생들을 낳았는데 아버지가 왜 감옥생활을 하는지 왜 재수감되는지 물어보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리고, 권양숙씨와 노무현대통령 장모는 권오석의 인민재판 현장에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권오석은 장님이었기 때문에 부인이 손을 잡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 권오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모는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무릎 관절이 안 좋을 뿐 두뇌도 총명하고 기억력도 생생합니다. 그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당장이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은 청와대 안주인이지만 그 당시 대통령후보 부인이었던 권양숙씨가 양심을 속이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도 우리 유족들은 참았습니다. 원래 정치는 사기이고 정치하면서 거짓말하는 것은 예사인지라 그냥 넘겼습니다.
<하수인들의 역사 허위날조>
그런데 가증스러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하수인들이 과거사를 왜곡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출세해서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후보 여성특보였던 이은희씨가 기자에게 어떻게 말했냐 하면, 권양숙씨의 “부친은 1948년 막걸리에 메틸알코올을 잘못 타 먹어 사모님이 두 살 때 실명했다. 그 상태에서 6.25 당시 공산군의 부역을 강요받아 수복 후 구속됐으나 곧 석방됐다. 그런데 5.16 이후 사회불안 요소를 격리한다는 차원에서 벌어진 예비검속으로 다시 투옥돼 1971년 마산교도소에서 옥사했다.”고 말했습니다.
허위날조 치고는 기가 막힙니다. 매우 짧은 거짓말이지만 이 속에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나뿐 짓을 한 양 박정희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고약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은희씨의 말 중에 사실인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장인이 공업용 알코올을 마시고 실명했다는 것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허위날조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인은 6.25 전에 남로당에 가입하여 좌익 활동을 한 토착 공산당원이었고, 공산군의 강요를 받아 부역한 것이 아니고, 인민군이 우리 고향을 점령하자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치안대를 조직하여 ‘반동분자’ 색출과 처형활동을 벌여 양민 수십명을 구금하고, 양민 11명을 학살한 사람입니다.
1950년 말 수복 후 도피 중에 체포되어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1956년 ‘폐결핵과 양안 실명 등의 사유로 형 집행정지가 되’어 풀려났고, 형집행정지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의 처남과 처제가 태어났습니다. 그랬다가 1961년 3월 27일 잔형 집행을 위해서 재수감되었습니다. 분명히 5.16 전인 장면정권 시절에 재수감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2002년 4월 당시 송정호 법무부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확인해 준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권오석이 인민군에 의해 부역을 강요받았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죄가 가벼워 곧 석방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5.16 이후에 재수감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사회불안 요소 격리 차원에서 예비검속 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왜 아무 관계도 없는 5.16을 끄려드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끄려드립니까? 그래서 제가 가증스럽다고 한 것입니다.
<가족과 씨족, 좌익들의 사실 호도>
노무현 대통령 장인 권오석에 의해 학살된 양민 11분의 유족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 또 있습니다. 양민학살자 권오석이 시각장애인, 장님이란 이유로 사건을 호도하고 축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앞 못 보는 사람이 부역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느냐, 맹인이 양민을 어떻게 학살한단 말인가 하면서 권오석의 범죄를 축소하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동정도 살 수 있고 설득력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철저한 공산주의자였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기에 눈이 멀쩡한 사람들을 재끼고 노동당 선전부장이 되고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치안대장이 되었겠습니까?
외모도 준수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면서기로 근무했을 정도였답니다. 해방 후 저의 중부님이 면장 할 때 면서기로 같이 근무하면서 서로 존경하고 아끼는 사이였답니다. 면서기로 근무할 때 친구와 막걸리에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공업용 알코올을 섞어 마시다 친구는 사망하고 권오석은 실명한 것입니다. 인민군이 우리 고향을 점령했을 때 그는 토착 좌익의 최고 우두머리였고, 장님임에도 불구하고 반동분자 색출과 인민재판을 지휘 주도하였습니다.
장님이었지만 극렬한 공산주의자였고 자기의 직속상관을 학살한 냉혈한이었습니다. 눈이 안 보이니까 인민재판을 할 때 손바닥을 만져보고 손이 거칠면 너는 노동자이니 C급, 손바닥이 부드러우면 너는 지주이니 A급하고 판정했다고 합니다.
권오석이 자행한 양민학살은 응겁결에 자행한 것도 아니고, 전투 중에 자행한 것이 아닙니다.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6.25 때 인민군이 우리 마을을 점령한 것은 음력으로 6월 18일 제 동생 돌날이었습니다. 미군과 국군이 우리 마을을 수복한 것은 음력으로 8월 14일 추석 전날이었습니다. 저의 중부님 기일이(제삿날이) 음력으로 7월 19일 입니다. 그러니까 인민군이 우리 고향을 점령하고 열흘 후에 제 중부님이 체포되었고 체포된 지 20일 만에 처형된 것입니다. 그때는 인민군 세상이었고 인민군이 그 지역을 이미 평정한 상태였습니다. 전투현장도 아니었고 인민군 입장에서도 다급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무고한 양민들을 반동분자란 죄목으로 총살한 것입니다. 이런 잔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그 자손들과 하수인들이 사건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허위날조하고, 은폐하고, 거짓 증언하고, 책임전가하고, 경거망동하는데도 우리 유족들은 참았습니다. 분노와 억울함이 목에까지 차올라 밤잠을 못 이루었지만 50년 전의 아픔을 되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향 사람이 대통령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거망동과 왜곡된 역사관>
그런데 이런 우리 유족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경거망동과 망언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씨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2002년 5월초 우리 고향에 있는 장인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느 여론조사 기관의 대표가 어느 강연에서 “대통령후보가 되어 자기 조상 묘소를 찾는 것을 봤지만 장인 묘소를 찾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출세했으니 금의환향하여 조상의 영혼에게 알리겠다는 뜻이고, 노무현 대통령 어법으로 말하면, 장인 빨갱이 한 덕분으로 재미 좀 봤으니 조상 음덕에 감사를 표시하겠다는 뜻으로 참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유족들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어찌 대통령하겠다는 사람의 행동입니까? 노무현후보가 자랑스럽게 참배한 장인 무덤 근처에는 그 장인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한 양민 11명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 피해자 가족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좌익활동을 하고 양민을 학살한 장인의 영혼은 위로하고 또 후손의 출세를 고하면서, 그 장인에 의해 학살된 양민의 영혼은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형과 오빠를 잃고 평생을 가슴앓이한 후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살인자의 자식이 출세하여 아버지 묘소에서 성대하게 성묘를 할 때 그 옆에 누워 있는 피해자의 영혼과 그 유족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참배한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참배는 미풍양속입니다. 참배를 하더라도 순서가 있고 주변 분위기도 파악해서야 된다는 뜻입니다.
장인 묘소 참배현장에서 노무현 대선후보가 뱉은 말은 또 한번 우리 유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싶어 찾아보았더니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신사에 안장된 사람들은 우리 조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말한 것과 유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은 보통 아버지와 다릅니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국체와 정반대인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유린한 인민군의 힘을 빌려 무고한 양민 11명을 학살한 잔인무도한 살인범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전향하지 않아 감옥에서 죽은 토착 골수 좌익이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어찌 이따위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갈수록 가관이었습니다.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 장인은 민중의 한 사람이란 듯이 말하면서 “좌우로 갈라 싸운 사람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피해자였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노무현씨 장인이 민중의 한 사람이었습니까? 남로당 간부였고 학살현장의 최고책임자였습니다.
무기징역을 받고 전향하지 않은 골수 빨갱이였습니다. 어떻게 좌우 모두가 시대와 역사의 피해자입니까? 연쇄 살인범이 피살자 가족 앞에서 나도 시대의 피해자라고 말해도 되는 겁니까? 한쪽은 양민 11명을 학살자한 가해자요, 한쪽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토록 잘못된 이념과 역사관을 가진 노무현후보의 경거망동 때문에 우리 유족들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유족들은 50년간 묻어 두었던 아픈 상처를 들추어내서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역사적 진실을 세상에 알려 고인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유족들의 요국>
우리 유족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 사실을 호도하지 말라, 허위날조하지 말라, 역사적 사실을 왜곡 은폐 축소하지 말라, 진실을 밝혀라, 사실을 인정하라, 책임전가하지 마라,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라, 살인자의 자손으로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숙하라, 진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 대략 이런 요구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피살자 딸인 우리 사촌 누님은 자필 증언에서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 그들을 용서하고 우리 하나님 말씀대로 남은 생애를 살고 싶다.”까지 말했습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주창하고 있는 ‘진실과 화해’가 우리 요구의 주제였습니다. 우리 유족들의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이런 요구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요구라고 위로했습니다. ‘월간조선’ 2002년 6월호가 배포된 직후 중앙일보 논설주간 권영빈씨는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라는 컬럼을 통해 당시 노무현후보에게 당장 장인 피해자의 유족들 고향에 찾아가서 사과하고 위로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대선 기간에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되고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위로 한마디 없습니다.
<유족들의 피해>
노무현후보측의 사실인정과 공개사과를 6개월 동안 기다리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대통령 선거일 10일 전에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시도했으나 폭력으로 저지당해 근처 맨하탄호텔로 옮겨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민주당원과 노사모의 방해로 기자회견은 엉망이 되었고 언론도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족들 모두 선거법 위반으로 영등포경찰서에 연행되었고 다른 유족들은 훈방되었지만 저는 입건되고 기소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재판을 거처 나온 판사의 최종 판결문은 제가 폭로한 모든 사실은 진실이나 단지 선거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선거권도 없고 피선거권도 없는 반쪽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가 다니던 직장은 노무현대통령측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저를 퇴직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실업자로 생계 걱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안은 살기가 나은 편이었습니다. 우리 경찰에 동조했다는 죄로 권오석에게 끌려가서 총살당한 한 분의 유가족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부인은 재가하고 자식들은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살아왔고 지금도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살기 어려운 시대에 아버지 없는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상상하실 것입니다. 유족들을 만나면 아버지 없이 살아온 고달픈 자기 인생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통곡합니다.
반면에 가해자 쪽은 어떻습니까? 살인자의 딸은 어쨌거나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 온갖 영화를 다 누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인민군 점령시 치안대원으로 양민학살자 권오석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빨갱이 자식은 미국서 박사학위하고 대학교수 하다가 지금은 장관(허성관 행자부장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정의라도 살아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광주민주화 운동 희생자에게 보상하기 전에 대한민국 건국 유공자에게 먼저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빨갱이에게 억울하게 희생당한 유족들을 보상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얘기가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배경이고 여러분에게 진실을 밝히고 싶은 과거사입니다.
<친북 좌익 활동 규명 위원회를 만들자>
요금 정치권에서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이다, 과거사 규명위원회다, 진실과 화해 미래위원회다 하고 60년 전에 일어났던 친일행적 규명문제를 가지고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데, 제 좁은 마음에는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헛소리 들립니다. 과거사는 역사학자가 규명할 과거사가 있고 법률로 재제를 가할 과거범죄가 따로 있습니다. 항일유격대를 지금 만든다 하더라도 공격대상은 다 죽고 없습니다.
누구누구가의 친일행적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극심했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역사학자들이 할 일이지 정치권이 간여할 일이 아닙니다. 사실이 규명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재판을 할 것입니까, 친일파 자손의 재산을 몰수할 것입니까?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다시 쓰는 것으로 끝날 일입니다. 친일행적 규명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정부에서 국고로 역사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주어 연구케 하여 역사를 다시 쓰면 됩니다.
사안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여당에서 친일행적을 규명하자고 떠들어대는 것은 딱 두 가지 목적 즉, 박정희 대통령을 음해하여 한나라당 박근혜대표를 정치적으로 죽이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죽이자는 것뿐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친일행적보다 더 철저히 규명해야 할 과거사가 있습니다. 바로 친북 좌익 활동입니다. 친일행위는 해방과 더불어 단절되었습니다. 해방 후에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람도 없고 지금 친일해서 우리 국익을 손상시킨다고 문제 삼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친북 좌익 활동은 다릅니다.
친북 좌익 활동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현대사이고 현재의 일이고, 현재 진행형이며,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일입니다. 친북 좌익 활동의 진상규명이 절박한 이유는 그 뿌리가 우리 국토의 절반을 점령해 있고 6.25 동란을 일으켜 우리 민족 수백만 명을 희생시켰으며 수백만 명의 자기 국민을 굶겨 죽이고 있으면서 지금도 호시탐탐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하고 있는 북한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친북 좌익 세력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존망을 가름할 위협 세력입니다. 친북 좌익 활동을 규명하는 것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넘어서 우리의 생존 위협 요소를 차단하는 작업입니다.
이미 좌경화된 노무현 정권으로는 우리 대한민국 안에 있는 친북 좌익 세력의 확산과 준동을 막지 못합니다. 오히려 친북 좌익 세력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친북좌익 세력이 이 대한민국 정부를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영해를 침범한 적에게 총을 쏘았다고 장군의 목을 자르는 정부입니다. 간첩이 대장을 조사하는 나라입니다. 근래 국정원과 기무사가 간첩 잡았다는 소리 들어 봤습니까?
이러다가는 언제 나라를 김정일에게 헌납(봉헌)할지 모릅니다. 깨어 있는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깨어 있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어떻게 세운 나랍니까, 어떻게 발전시킨 나랍니까. 그래서 저는 감히 제안합니다. 친북 좌익 활동 진상 규명 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60년 전에 활동을 중지한 친일 행위를 규명하기 전에 바로 지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친북 좌익활동의 진상부터 먼저 규명하자는 것입니다. 친일행적은 역사학자가 규명할 수 있어도 친북 좌익 활동은 역사학자가 규명할 수 없습니다.
친북 좌익 세력은 지금도 준동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지지와 힘이 있어야 규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북 좌익 활동 진상 규명 위원회를 반핵반김국민협의회에도 설치하고 국회에도 설치하고 정부에도 설치하라고 요구하자는 것입니다. 제 힘이 필요하다면 앞장서겠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 가장 정확한 현실 인식입니다..친북좌익세력들은 아직도 남한내 구석구석 침투해서 우리들 생활전반을 장악하고 있습니다.이제 분연히 떨쳐일어서 저들과 싸워야합니다.놈현정권이 왜 친북좌익세력들과 동조할수밖에 없는 지 알수있는 글입니다.우리도 투쟁합시다...
천인공로할 짓을 하고도 거짓말로 일관하는 인간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속히 발족하여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우리 박사모는 위와 같은 사실들을 프린트하여 시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바쁘시겠지만, 운영진에서 힘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언제고 참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