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
창근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여섯 시가 넘었고만 저녁도 안 허고 어딜 퍼질러가서
오도가도 않는 거여?
요새 어딘가 좀 수상허당게, 술도 딱 끊고 말여?
어떤 때는 물에다 밥을 두 세 숟갈 말아서 먹고 급히 나가더란 말여? "
그는 예사롭지 않은 아내의 거동이 못마땅하여
무슨 꼬투리라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낡은 가마니 조각들이 여기저기 어수선하게 널려있던 두렁교회 안에서,
김 성근 목사의 열띤 설교가 한창이었다.
교인이라고 해봐야 달랑 여섯 명이 전부였다.
삼례 댁은 무릎 꿇고 예배 보던 중 오금이 저려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김 목사의 처량하게 외쳐대는 전도 설교를
건성으로 들으며 자꾸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남편의 골낸 얼굴 표정이 그녀의 눈앞에 선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녀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 다급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굉일날도 아닌디 왜 이렇게 오래 걸린댜?
비 오는 날 특별기도회는 문제가 있당게.
지금 이 시간에 저녁 설거지를 마칠 땐디 말여.
큰일 났고만, 큰일 났어···.“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영길이는 오늘 따라 늦은 귀가 중이었다.
그는 깊은 수심에 젖어 중얼거리며 앞동산 오솔길을 내려오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어매를 어떻게 허지?
지금 아버님한티 말 허면 대매 맞을 틴디?
단 한방의 주먹질로 까무러칠 거란 말여?
아니, 그런디 왜 예고도 없이 예수를 믿냔 말여?
그것도 목사라는 사람이 문제가 많은 모양인디········.
어매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는 건 또 무슨 이유냔 말여? “
영길이는 집에 돌아오자 부엌으로 직행했다.
손수 저녁상을 차려 셋이서 아무 말 없이
연방 숟가락질 젓가락질만 해댔다.
저녁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삼례 댁이 숨을 헐떡이며 집에 돌아왔다.
창근은 벌떡 일어나 아내가 늦게 집에 돌아온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디 갔다 온 건지 속 션히 말혀 보란 말여.
여자가 때 되면 집구석에 돌아와 밥상을 채릴 일이지
이게 무슨 꼴이냔 말여? ”
삼례 댁은 잽싸게 둘러댔다.
“아~ 저~ 함열 덕 큰아들 장개가는디 음식 장만 좀 허다 봉게 이렇게 됐고만요.
야박허게 시간 됐다고 올 수가 없더랑게요.
우리도 자식들이 셋이나 있는디 다 나중에 품앗이란 말요.”
그녀는 겨우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했다.
창근은 아내를 의심 했던 자신의 잘못이 겸연쩍었던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영길이는 이 순간까지 가슴이 철렁하며 조마조마했다.
그는 머리를 짜내어 해결 방도를 찾으려 고심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단 한 가지란 말여.
어머님을 직접 설득허는 일이랑게.“
그날 밤,
삼례 댁은 잠자리에서 약간의 애교를 부리며
남편에게 접근했다.
“왜 이렇게 비가 퍼붓는댜?
집 떠내려 가겄어.
비 오는 날은 삭신이 이상허게 더 노곤노곤 허당게.
당신은 비만 쏟아지면 정신없이 달라드는 버릇이 있는디,
오늘 밤은 요상허게 점잖은 채 허네요.
고걸 애껴 봤자 비개면 후회 헐 틴디,
한 번 화끈허게 써먹어 보지 그려요.”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오늘 함열 덕 큰아들 결혼식 날이 지나면 어매는
빠져나갈 핑계가 없을 틴디···············.
그려~ 지금 당장 어머님과 담판을 혀야 헌당게.“
영길이는 이렇게 생각을 마무리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자청하여 아궁이의 불도 때주며 어머니의 동정을 살폈다.
그녀는 큰아들의 얼굴을 훔쳐보며 자꾸 한숨만 쉬었다.
영길이가 먼저 “어매~”라고 말을 건네자,
삼례 댁이 움찔하며 놀라 뒤돌아보았다.
“방고래가 맥혔는지 불김이 도로 나오네.
이럴 땐 불때기도 증말 힘들당게.
어매헌티 헐 말이 좀 있는디·······.
다름이 아니고, 지금 나가고 있는 두렁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랑게요.
거기서 예수 믿었다가는 얻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당게 그러네.
설령 면소재지에 있는 진짜 교회를 나간다고 혀도,
그건 절대 안 될 일이구만요.
우리 집은 원래 불교 집안이고,
더구나 부처님이 우리 집안일을 잘 보살펴 주시니께,
영수가 여지껏 월남에서 아무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단 말요.
맘이 괴로우시면 부처님께 기도드리랑게요 .
꼭 엎드려서 절허지 않아도 되고,
그냥 맘속으로 기도혀도 똑같당게요.
하시라도 아버님이 이런 사실을 아시면,
그걸 어떻게 감당 헐 건 가요? ”
삼례 댁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녀는 난처한 듯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디~ 목사님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헝게
맘속의 골치 아펐던 것이 봄 눈 녹듯 일시에 사그라지드라.
목사님허시는 말씀이,
교회만 잘 나오면 영수의 무사함을 틀림없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거여.
진짜 맘이 끌리더라고.
첫째는 영수를 살리고 봐야 헐 게 아니겄냐?
우리 집이 부처님 믿어가지고 잘 된 게 머가 있냔 말여?
내가 이날 이때까지 좋은 꼴 한번 못보고
죽어라 고생만 혔잖여?
목사님이 비싼 밥 먹고 그짓말 헐 이유가 없잖냐? ”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의견 다툼은 막상막하로
아직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삼례 댁은 곧바로 교회 갈 채비를 서둘렀다.
부엌 찬장에 숨겨둔 성경책과 찬송가책 보따리를 잽싸게 꺼내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창근은 아내가 함열 댁에 가는 줄 알고,
사립문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에 염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잔칫상 채린다고 너무 힘쓰지 말랑게.
싸드락 싸드락 넘 허는 대로만 허는 거여.
당신 몸도 좀 생각혀얀단 말여.”
그녀는 남편의 애정이 듬뿍 담긴 충고에는 별 관심 없이,
서둘러 사리문을 밀치고 나왔다.
이런 광경을 쭉 지쳐보던 병국은 당황하여 한숨이 나왔다.
혹시라도 벌어질지도 모를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상사가 걱정이 되어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있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1시 쯤 되자,
함열 댁 잔치 마당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창근은 아무리 아내를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벌써 얼굴이 홍당무가 된 상일 씨가 창근을 불렀다.
“어이 창근이~ 이리 좀 와봐.
같이 한 잔 허드라고.
돼지괴기가 뜨디기판 나기 전에 후딱 몇 잔 혀얀당게.
사람들이 오랜만에 괴기 맛을 봉게 난리났구만.
그려도 새고젓허고 먹는 요 비곗살 한 점이
목구녘을 타고 넘어가야 든든허당게 그러네.
창근이~ 한잔 더 혀야지.
잔치판에서는 연거퍼 잽싸게 마셔야 여.
그런디,
들리는 말에 의허면 삼례 덕이 요 근래 두렁교회를 열심히 대닌다는디,
그게 사실인가?
내 생각에 불교 허고는 상극일 틴디? ”
창근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한 모습으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잔칫집 어느 구석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창근은 상일 씨 부인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후,
냅다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두렁교회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혼신을 다하여
뛰어가며 중얼대었다.
“이년!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거여.
누구 맘대로 예수를 믿어? “
드디어 창근이 교회 출입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이런 찢어 죽여도 션찮을 년!
어서 이리 못 나와?
부처님헌티 천벌 받을 년!”
김 목사가 설교대에서 내려와 창근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신성한 하나님의 집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
그러나 창근은 기세가 수그러지기는커녕 도리어 큰소리로 대꾸했다.
“응~ 바로 네놈이 김 목사냐?
얌전히 부처님 믿고 있는 사람 꼬셔다가 예수를 믿으라고?
그럼 예수 믿는 사람 끌어다 부처님께 절 허라면 허겠어?
아무나 닥치는 대로 물어 가면 쓰겄냔 말여? ”
그러자
김 목사가 목청을 돋우었다.
“당장 나가시오!
안 나가면 종교집회 방해 혐의로 경찰을 부르겠어요.
당신은 대한민국 법도 모른단 말인가요?”
창근은 단호하게 맞붙었다.
“뭐라고?
법?
법 좋아허네.
그래~ 불러라.
경찰을 부르던 예수를 부르던 맘대로 허란 말여. 지서에 가서 한번 따져보자.”
창근은 아내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같은 시간,
김 목사는 지서를 향하여 자전거를 몰고 갔다.
창근이 잠깐 방심한 틈을 타 삼례 댁은
토담집을 향하여 줄달음질치기 시작했다.
“죽어도 내 집에 가서 죽어야지 길바닥에서 객사할 순 없잖여? ”
그녀는 중얼거리며 온 힘을 다 하여 뛰어갔다.
그녀의 뒤를 창근이 눈에 불을 켜고 쫓아갔다.
삼례 댁은 잡힐 듯 말 듯하던 위기를 한차례
모면한 후,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창근은 작대기를 집어 들었다.
삼례 댁은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삼례 댁은 안방으로 들어가 방문 고리를 걸어 잠갔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던 남편의 오른손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문고리를 따고 방에 들어가자,
삼례 댁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용서를 빌었다.
“다시는 교회에 안 갈 팅 게요. 거기는 얼씬도 안 허겄구만요.”
그러나 창근은 아내를 향하여 작대기를 번쩍 들며 말했다.
“니년이 내 승질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짓을 허는 거여?
한 번 맛 좀 봐라, 이 썩을 년아!“
눈앞에 닥친 위기의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아버지의 고함치는 소리를 듣고 놀란 영길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아들은 다짜고짜로 아버지의 작대기를 빼앗아
마당에 내던지며 말했다.
“어매가 기어이 일을 저질렀고만.
아버님이 화날 만도 허당게 그러네.
아버님이 원래 이런 분이 아니시잖여?
어매가 백번 잘못한 거여.”
창근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아들의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하여 화가 좀 풀렸는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삼례 댁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작대기의 공포로 벌벌 떨며 큰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영길아~ 너 땜에 살았다.
작대기로 맞았으면 초상났겄지?
느 아부지는 화나면 증말로 때린단 말여.”
영길이는 밖으로 나와 버려진 작대기를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삼례 댁은 그래도 무언가 좀 아쉬운 듯 홀로 중얼거렸다.
“예수를 믿어 봉게 기가 맥히드랑게.
술 생각도 싹 가시고 말여.
영수 걱정도 씻은 듯이 사라지드란 말여.
하나님이 내 머릿속에 분명히 나타났던 거랑게.
그러나 저러나, 어젯밤에 잠자리에서 그 인간에게 그토록
성심껏 혀줬는디도 저렇게 야속 헐까?
그런디 어떻게 혀야 헌댜?
하나님 안 믿으면 큰일 난다고 혔는디.
기도 헐 때 목사님 손이 내 두 어깨에 닿자마자 찌릿하고 전기가 오드란 말여.
그건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인가 먼가가 나한티 내려온 거랑게.“
삼례 댁의 독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서에서 차석이 창근을 데리러 왔다.
“정창근 씨, 지서까지 좀 가야겄는디요.
김 목사가 ‘종교집회 방해죄’로 정식으로 신고 했단 말입니다.
과연 그런 법률 조항이 있는지 없는지는 상세히 알아봐야겠지만,
만일 그런 방해죄의 처벌 조항이 있어서 김 목사가 취하를 거부하면,
아마 어쩔 수없이 깜빵에 들어가 한동안 살아야 헐지도 모를 일이란 말요.”
차석이 하는 말에 창근은 겁이 덜컥 났다.
그는 지서에 도착하자 갑자기 온 몸이 떨려왔다.
김 목사는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차석이 두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먼저 말을 꺼냈다.
“강력사건이 아니고 사사로운 감정싸움이니까,
이 자리에서 좋게 해결하는 편이 어떨까요?
이점도 알아둬야 헐 거요.
만일 목사님이 취하를 거부허신다면,
교회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지 그 누가 알겠나요.
예수님은 이 세상 누구든지 용서하시는 분인 걸로 만인이 다 알고 있잖소?
예를 들어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주어라’라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히 적혀있단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대리자인 목사님이 성경 말씀을 몸소 따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두렁교회를 다니겄는가 한번 생각혀보란 말요.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 어떨까요?
아마 내 의견이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김 목사는 할 말을 잊었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알겠습니다. 없던 걸로 하죠”라고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창근에게 몰아치던 감옥 생활의 두려움은 이처럼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헤어질 때 차석이 쓴웃음을 띠며 말했다.
“우리 지역사회의 이름난 씨름꾼을 깜빵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그럴 경우,
매년 열리는 씨름대회의 우승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리가 없지요.“
비 내리던 토담집의 어느 일요일이 이렇게 마무리되며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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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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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1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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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썩을년이라니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