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좌석도 양보 못하는 인간들에게 그 좋은 권력 자리를 양보하라면…[검비봉의 시절 풍자]
스승이 없어진 스승의 날
검비봉 <최보식의 언론> 논설위원
입력 2021.05.15 16:45 | 수정 2021.05.15 16:45
사회적으로 성공한, 또는 하나의 훌륭한 인격체로 성공적인 삶을 살은 사람의 뒤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
나의 개인적 좁은 식견으로, 우리 사회에 훌륭한 스승들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없음을 발견한 상징적 장면을 하나 꼽아 본다.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풍양속이 사라졌음을 어느 날 발견하고, 스승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으며, 이것은 다시 복구하기 어려운 ‘문명의 후퇴’임을 깨닫고 우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학업 성적은 남보다 좀 못해서, 전문학교에서 요리나 간호 등 실용적 학과에서 공부하지만, 예의범절이 반듯해 주변의 노장들을 존경하고, 약한 부녀자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 줄 아는 참한 사람이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입에 거품을 물고 3선 개헌 반대를 외치면서, 2호선 전철 안에서 할매들이 위태롭게 서서 가는 모습을 외면하고, 잠든 척 머리 처박고 앉아서 가는 서울대 학생 해차니·시미니 류의 아들이 되기를 원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1시간짜리 전철 좌석도 양보 못하는 인간들이 그 좋은 권력의 자리를 양보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너희 같으면 양보하겠나? 역시나 이들은 양보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요즘 보여주고 있다.)
경사이구 인사난득(經師易求 人師難得), 글줄이나 가르치는 선생은 흔해도 인간 됨됨이를 가르치는 선생은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수학공식, 법조문뿐이고, 거기에만 매몰돼 학창 시절을 보낸 자들이 나중에는 입으로는 형법을 가르치면서, 손으로는 위·변조를 일삼고, 저녁에는 SNS에 그럴 듯한 언사(言辭)를 올리면서 자기 위장에 매달리는 전직 형판(刑判·법무장관)과 같은 기형적 결과물이 되고 만다. (이들은 기이하게도 ‘남들로부터 추앙받음’에 목숨을 거는 듯 매달리는 악착스러움을 보인다)
책에서 스승을 찾는다고 한다. 책을 많이 본 사람은 뭔가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 나름이다. 책을 많이 읽은 자들이 하나같이 모두 추앙받을 만한 인격체가 되질 않고, 위의 형판처럼 도둑놈 심보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다.
책에서 가르치는 말씀이 이과수 폭포처럼 내 영혼 위에 차갑게 쏟아져서 자아를 거듭나게 할 경우, 더러 인격에 변화가 오기도 한다. 그러나 책에서, 내 입맛에 맞는 부분만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먹듯이 받아들였을 경우에는 아무리 만 권의 책을 섭렵해봤자, 세상살이 약게 사는 꾀만 늘다 뿐이지, 인격체는 발전하지 못한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산에서 나뭇짐을 지는 나무꾼보다 못하게 사회에 해악만 끼치다가, 나무꾼의 세금으로 콩밥까지 얻어먹는 신세가 되는 경우가 흔하디흔하다. 거기에서는 요즘도 간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가?
유은혜 부총리겸 교육부장관
‘노약자 지정석’이라고 써 붙여놓은 자는 누구이며, 차내에서 마스크 쓰라고 선장(船長)의 권한을 행사하는 자는 왜 입을 다물고 있으며, 휴대폰 보는 척 자리를 고수하는 긴 머리 여학생은 무엇이며, 이런 것을 다 은혜롭게만 보고 예쁜 눈만 깜박거리는 교육부총리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학교에는 한두 개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박정희 동상과 김구 동상이 교정의 양편에 세워져 있을 수도 있다. 어느 교실에는 귀한 수업시간에 박정희를 ‘깡패 독재자’라고 강변에 열심인 선생님이 있고, 어느 교실에선 박정희 치적에 대하여 가르치는 선생도 있다면, 이 학교 교장이나 은혜로운 부총리의 견해는 무엇인가?
잘못 가르치면, 그날로 박정희 동상에 뻘건 페인트를 뿌리는 다혈질의 학생도 나올 수 있으며, 국립묘지에서 박정희 운구차를 깨부순다고 난리치는 학생도 나올 수도 있다. 나라의 어른은 누구인가? 그가 박정희의 흔적을 없애는 게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니, 박정희의 것을 때려 부수는 자는 얼마나 희열감과 자부심이 넘치겠는가.
요즘 스승들은 정년까지 무사고로 평탄하게 살아가는 일에 열심일 뿐이다. 저들에게 철학과 국가관이 사라진 점, 외국인들이 모두 칭찬하던 노약자 자리 양보의 미덕에 대해서 무관심한 점.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랄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에 대해서 무관심한 점, 그래서 이름만의 스승들이 되어가고 있음은 너무 애석하다.
옛날 선생님들은 촌지를 받을 때 받을지언정 가르칠 것은 바로 가르쳤다. 생활고로 인하여 나는 비록 꽃게처럼 가로 길지언정 너희들은 바로 기어야 한다면서, 청백리 황희 정승의 일화를 정성껏 강의하곤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꿈꾸던 사회를 너희 세대에는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하시던 간절함이 그 음성으로 지금도 울려온다.
스승들이 가르치지 않아서, 노약자 지정석이라는 스티커가 유명무실하다면, 은혜로운 정책 시스템을 가동하면 된다. 승객이 승차하면 자동으로 안내 방송이 나오기를,
“이 차의 노약자 지정석은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임산부, 환자만 앉게 되어있습니다. 노약자가 승차하기 전에는 청년도 착석할 수 있으나, 노약자가 승차하면 바로 양보해야 합니다. 이를 어길 시 해당 운수회사는 1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승객님들의 협조바랍니다.”
국가의 책무와 기능 중에서,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것은 안보와 경제다. 그러나 그보다 앞 순위는 교육 정책이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긴 안목에서 나라의 흥망성쇠는 국민 교육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중에도, 올바른 가치관으로 성장해서 교편을 잡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으시리라 믿습니다. 참된 스승의 길을 지키시느라고 고군분투하시는 분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보냅니다.
첫댓글 휴우~~~그저 한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