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가운데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강조와 명령의 말씀에 있어 많은 이들이 혼동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또는 아주 막연하거나 심히 추상적이거나, 더 나아가 자기 소견대로 함부로 결론지으면서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열심을 내고 있는 경우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한 착오는 심히 우둔한 것일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많이 위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현실은 하나님의 세계와 믿음의 선한 경주와 복음의 확장에 있어 결코 작을 수 없는 손해와 변질과 안타까움들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말씀에 있어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면도 있는 것인데..
사실 그에 있어 큰 두 중심 줄기는 그와 같은 성령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라는 사실, 또한 그 성령님께서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시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전에 우선은 아래 본문의 하반부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라는 말씀을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그에 있어 모든 근본과 시작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말씀의 동산인 에덴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가 된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영원히 멸망할 육신에 갇히게 된 것이며, 날마다 순간마다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힌 존재와 상황이 된 실정과 실제인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상태에서 그 어떤 인간적인 힘과 세상적인 방법들로는 벗어나고 해결하며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인데 그를 위한 유일한 길과 통로는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다시 말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의 영적 노예 상태인 것이자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히게 된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어떤 식으로든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것이고, 계속해서 멸망할 육신에 갇히게 된 것일 수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실제적으로 완전히 반대가 된 것이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존재와 상태가 된 것이기에 직접적, 현실적인 측면에 있어서 아예 처음부터 그러한 성령님과 육신의 소욕은 완전 반대편인 것이며, 서로 서로 거스르고 대적하는 관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어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하더라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에 약속된 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는 동안 마치 옛 사람과 같이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미움과 원망과 우상과 온갖 불신앙들 등으로 미지근해 지고 잠자며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얼마든지 될 수 있고, 실제로 생각 이상으로 많이 그렇게 되곤 하는 실정인 것이기에, 곧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에 빠져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고 광야 40년과 같이 돌고 방황케 되는 경우들이 허다한 현실인 것이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성령님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좀 더 직접적이면서 정확하게는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순간순간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생생하고 강렬해 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고, 특히 잘 따지고 통찰해 보면 그러한 성령님만 따로 떼고 분리해서 단독으로, 독립적으로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인 것이며, 반드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안에서 이해해야 하며 실제로 그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를 누릴 수 있는 것이고, 바로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구주 예수님 십자가 붙잡으며 의지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역사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간구하는 것이 성령님을 따라 행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며 근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죄악과 악한 세력들, 유혹과 시험들, 한계와 제한들, 문제와 위기들 등에,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육체의 욕심들, 육체의 소욕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고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혹 범하게 되는 죄악들에 있어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참회하며 돌이킬 수도 있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실제로 가능한 것인데..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가능하게 하고,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하고 충만하게 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차고 넘치게 됨으로 인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울 수 있게 되고 더더욱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5:16~1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8월 28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