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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대북 발언 남발해 긴장 고조시켜온 신원식 국방
코리안 리스크 줄이려 미국 설득하던 DJ 정부와 대조
위기감에 주가 폭락하자 말돌리며 해외 전문가 비난
북한의 위협 4월 총선에 이용하려다 큰 비용 치를라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1998년 1월 22일,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코언 국방부장관이 방한하여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만났다. 한국이 극심한 재정난 속에서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어수선한 시기였다. 김대중 당선자를 만난 코언은 한국의 재정적 어려움이 국방비 삭감으로 이어질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당시 김대중 당선자의 인수위원회는 국방예산을 10% 정도 삭감하기로 하고 예산 삭감 계획을 다 짜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방문이 있고 나서 국방비 삭감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 전 해에 한국에 대한 금융 지원에 난색을 표명하던 미국의 재무부를 상대로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설득한 장본인이 바로 코언 국방부장관이다. 한국의 재정난이 더 심해지면 국방비도 줄여야 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세력균형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대중 정부 장관과 너무 다른 2024년 국방부장관
당시 코언의 배후에는 한국의 김동진 국방부장관이 있었다. 김 장관은 코언에게 편지를 보내 “동맹을 지키기 위해 구제금융 지원에 코언 장관이 노력해 달라”고 설득했다. 당시 월가의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 회사들은 한국의 재정위기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코리안 리스크’를 거론하며 한국의 신용을 저평가하고 있었다. 1994년의 한반도 전쟁 위기의 여파가 이어지던 김영삼 정부 마지막 순간은, 만일 한국 정부의 재정난이 더 심화되면 이를 기회로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불안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1월 말에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을 비롯한 한국의 안보 관계자들이 월가로 파견되었다. 한국은 국방비를 줄이지 않을 것이며, 지금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잘 억제되고 있다는 걸 신용평가 회사에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8년에 금융 위기에 처한 국가를 회복시키는 데 이처럼 국방부의 역할이 컸다.
우리가 천문학적 혈세를 군에 지원하는 이유는 전쟁을 억제하고 주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한국의 국제 신용을 높이는 데 있다. 무역과 생산, 투자, 소비가 전부 추락하는 복합위기의 시기에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는 국가의 회복력을 도모하는 핵심 조건이다. 이러한 때 전쟁을 불사하는 강경한 대북 발언을 남발하다가 급기야 작년 11월에 남북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한 국방부는 1998년의 국방부와는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인다. 국방부는 멀쩡한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한 데 이어 올해 벽두부터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대규모 함포 사격을 감행하고 강원도 철원에서 지상포 발사 훈련을 한 다음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더 나아가 신원식 국방장관은 1월 4일에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남한의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남 테러를 할 가능성이 크다”며 구체적으로 천안함 폭침과 같은 국지적 도발을 강행하거나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구체적인 도발 양상까지 묘사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 세계에 알린 셈이다.
북한이 고체연료를 사용한 극초음속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2024.1.15. 연합뉴스
적대적 공존을 위한 남과 북의 ‘주적’ 연대
한편 북한은 1월 5일부터 3일 간 서해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에서 포 사격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과 북을 “적대적 교전국가”로 규정하고 강경발언을 쏟아낸 데 이어 나온 실제 군사행동이었다. 남북 쌍방이 서북 해역에서 대규모 포격을 주고받은 다음에 합동참모본부는 “이제 군사적 완충구역은 없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규모 응징을 결의했다. 우리 국방부는 한반도가 대만해협보다 더 위험한 분쟁의 열점이라는 걸 전 세계에 앞서서 알리고 다녔다. 국방부 본연의 책임이자 역할인 한반도 위기관리가 주변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위기를 조장하는 새로운 현상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 프리드 해커 교수는 1월 11일에 ‘38노스’에서 “한반도가 1950년 6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분석을 실었다. 1월 16일에는 1994년에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킨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외교안보 전문지인 내셔널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주가 폭락으로 현실화된 ‘코리안 리스크’
긴장이 고조된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가 올해 들어 19일까지 7.6%나 하락하며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윤석열 정부가 연초부터 주식 공매도 금지 기간 연장,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증권거래세 인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지원 강화 등 별의별 총선용 대책으로 주가를 띄웠지만 한반도 지정학의 리스크에 따른 외국인의 대량 매도를 막지 못하면서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증권가에서는 중국과의 무역 감소와 북한발 전쟁 위기가 그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1998년의 국방부가 “한반도는 안정되어 있다”며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면 지난 1년 간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는 전쟁의 메신저였다. 최근 경제 전문지들은 그간 ‘코리안 리스크’로 불리는 한반도 위기는 항상 주가에 상수로 반영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증시를 흔드는 변수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태가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자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16일에 KBS 전화 인터뷰에서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며 “미국 학자들의 전쟁 위기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작년에 윤 대통령과 신 장관은 번갈아 가며 한반도 전쟁 위기를 거론하면서 “전쟁이 나면 북은 반드시 핵을 사용할 것”이라며 핵전쟁을 예고한 바 있고, 오직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북한을 끝까지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말하던 자들이 막상 ‘코리안 리스크’가 현실화되자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미국 학자들의 주장을 폄훼하고 나섰다. 로버트 칼린은 30년 이상 미국 정보기관에서 북한을 분석하며 평양에만 30여회 방문한 정통 북한 전문가다. 해커 박사 역시 8번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플루토늄을 직접 보기까지 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다. 국제사회가 누구의 말을 더 믿겠는가. 게다가 미국 학자들의 주장은 적대와 혐오라는 반북 감정의 노예가 된 한국 당국자들의 말과 행동을 철저히 고려하여 나온 말들이다. 미국 학자들의 말을 원망하기에 앞서 그 빌미를 제공한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간과하기 어렵다.
코리안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원/달러 환율 상승과 주가 하락이 거듭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의 모습. 2024.2.17. 연합뉴스
경제와 안보 간 딜레마 상황에 처한 윤석열 정부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표를 얻으려면 부동산과 주식을 부양해야 하고, 반대로 북한과 적대관계를 고조시키려면 주가 폭락이라는 ‘코리안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윤석열 정부가 전쟁이 곧 터질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이제는 거꾸로 상황을 진정시키려니까 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와 안보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최근 한반도 지정학의 비용은 분명 과거 전쟁 위기와 다른 점이 있다. 1994년이나 2003년의 전쟁 위기와 달리 지금의 한반도 지정학은 한국에 구조적으로 더 불리하며 경제적으로 훨씬 더 민감하고 치명적인 효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부와 국방 당국이 직접 전쟁을 불사하는 강경 발언을 외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예전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 점도 큰 차이다. 더욱더 결정적인 차이는 북한이 실질적인 핵 보유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지정학 위기는 냉전 이후 지난 30여 년 간의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대에 안보 불안의 위험성이 크게 확대되는 중이다. 예전의 안보 불안이 평정을 되찾는 일정한 회복력으로 나름 ‘코리안 리스크’를 관리했다면 2024년 1월의 상황은 분명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에서 북풍을 활용하려는 수구적 행태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과거 70여 년 간 북한의 위협을 정치에 활용해 온 세력으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냉전 수구적 행태가 재현되는 한반도에서 4월 총선을 앞두고 전쟁의 위협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남과 북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전쟁을 감행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힘을 과시하여 정권의 위신을 높이려는 남과 북의 경쟁은 한반도 위기관리에서 더없이 무능하다. 게다가 군사적 완충구역이 사라진 지금은 이미 심리적으로는 전쟁 상태에 돌입하였고, 이것이 우발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커 보인다. 우발적이고 국지적인 충돌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출처 : 전쟁 위기 조성하고 주가 폭락에 당황하는 윤 정부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전쟁위기 조장 '2017 트럼프' 빼닮은 '2024 윤석열'
[조성렬 칼럼] 문정부 땐 적극 중재, 이젠 중재자 없어
윤석열 정부는 4월 총선 전 '철 지난 북풍' 기대하는듯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새해 벽두부터 남북한 최고지도자가 말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 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는 내용을 헌법에 명시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우리의 령토·령공·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곧 전쟁 도발로 간주될 것"이라며 "전쟁은 대한민국이라는 실체를 끔찍하게 괴멸시키고 끝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는 상상해보지 못한 재앙과 패배를 안길 것"이라고 위협했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 무능
그러한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즉각 맞받아쳤다. 또한 통일부에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하라고 지시해 사실상 북한체제의 붕괴를 겨냥하는 발언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8월 8일 자신의 뉴저지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북한에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017.8.8. AP 연합뉴스
김여정 당 부부장이 "윤석열은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개인 혐오감마저 드러내는 등 북한 당국이 한국 대통령에 대해 험담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말을 맞받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말폭탄 돌리기는 마치 2017년에 있었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성명전을 연상시킨다.
2017년 7월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14형이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첫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하며 "북한은 전 세계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서태평양 전진기지인 괌 주변 4곳에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으로 포위사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2017년 데자뷔, 그러나 더 위험하다
이러한 충돌 사태는 김정은 위원장이 유보 지시를 내리면서 해프닝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재앙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비웃으면서 북한의 추가반응이 주목됐었다. 결국 북한은 8월 29일 미국령 괌이 아닌 일본 상공을 사상 처음으로 통과하는 화성-12형을 쏘아 올렸고, 9월 3일에는 수소폭탄 핵실험을 감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배로 응징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24.1.16.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 72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라고 부르며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이 개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를 불로 다스리겠다"는 말폭탄으로 응수했고, 트럼프는 '뚱뚱이 꼬마'라고 조롱했다. 그 뒤에도 김정은의 '핵단추' 발언과 트럼프의 "내 핵단추가 더 크고 강력하다"는 말공방이 이어졌다.
2024년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말폭탄 교환이 2017년 김정은-트럼프 간의 것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 대상이 미국에서 한국 대통령으로 바뀌었다는 점과 당시 한국 대통령이 한반도 전쟁 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면 지금 오히려 한반도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윤석열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운 '담대한 구상'이라는 대북정책을 내놓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일지 모른다.
파탄난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
2022년 8.15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비핵화 로드맵이라고 내놓은 것이 '담대한 구상'이라는 접근법이다. 이 구상은 3D(억제, 차단,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군과 한미(일) 3국 군사대비태세를 강화해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제(Deterrence)하면서, 경제제재와 외화벌이 틈새를 차단하면 북한이 핵·미사일의 개발과 배치를 단념(Dissuasion)하고, 결국은 비핵화 대화(Dialogue)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접근법이다.
이러한 대북 접근법은 이 구상이 발표된 직후인 8월 19일 김여정 북한 당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이미 파탄 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의 복사판"이라며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담대한 구상'은 추진된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대북 군사적 압박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한반도 전쟁 위기만 고조시키고 있다. 핵무기 개발·배치의 단념이 아니라 첨단미사일 개발만 가속화된 채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대화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 구상의 세 가지 정책 수단인 군사 압박, 돈줄 죄기, 인권 제기는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첫째, 군사 압박은 한국군 단독 또는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게 해 비핵화 테이블로 나오게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군비경쟁을 촉발해 북한의 국력을 소진 시키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안보딜레마에 빠져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할 명분을 주게 될 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24.1.16.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둘째, 돈줄 죄기는 해외 북한노동자의 귀환, 가상자산 해킹 및 해상 불법 환적 차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상자산 해킹의 완전한 차단도 어렵지만 코로나로 귀국 못한 북한 노동자가 아직 해외에 많이 남아 있고, 북한 영해에서 이뤄지는 환적도 막는 데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최근 북·러 접근으로 3월부터 러시아인의 북한 단체관광이 시작되고 연해주 지역 농업용지 제공과 노후 기계설비 개비가 이뤄지면 북한에 대한 돈줄 죄기도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인권 제기는 이를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고 대북 선전매체나 전달 살포 등을 통해 북한 주민의 체제 불만 유도와 이탈을 촉진함으로써 김정은 정권을 약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저한 언론통제 아래에 있는 북한에서 체제 약화보다는 북한 정권 망신주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북한주 민의 인권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는 남북 민간 접촉이 매우 효과적이지만 현 정부는 통일부 남북교류협력 부서를 없애고 대북지원단체들의 대북 접촉을 차단하는 바람에 오히려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 통로를 차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북풍의 추억
윤석열 정부가 엉뚱한 데 힘을 쓰는 바람에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남북 관계의 평화적 관리를 진지하게 고민, 모색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오는 4.10 총선에 활용할 수 있을지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신원식 국방장관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은 "북한이 4월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군사도발 것"이라며 북풍의 추억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 변수, 이른바 북풍이 한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던 시절이 있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거를 앞둔 11월,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이 일어났고 선거 하루 전날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테러범으로 지목되어 국내에 압송되는 장면을 공개해 북풍이 크게 불었다. 그 결과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92년 제14대 대선 직전에는 조직원 300명 규모의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이 발표됐고, 여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1996년 총선 때는 투표 일주일 앞두고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침입해 무력시위를 벌였다며 워치콘을 격상해 위기를 조성한 덕에 참패가 예상되던 집권 여당이 제1당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5월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무력침범 땐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2010.5.24. 연합뉴스
하지만 주요 선거 때마다 북풍이 반복되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북풍의 위력은 힘을 잃었다. 제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재미교포 윤홍준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대중 후보와 북한 고위인사의 커넥션 설'을 제기하고,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고마운 김대중"이라고 평양방송에서 말한 영상이 공개됐음에도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되레 그 뒤 김대중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측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 사건'이 뒤늦게 드러나 권영해 안기부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5월 20일, 사건 발생 두 달 만에 북한 소행이라는 내용을 담은 천안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월 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 나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대북 독자제재를 담은 '5.24조치'를 발표했다. 이처럼 당시 집권당은 북풍을 일으켜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높아진 국민의식 덕분에 북풍은 먹혀들지 않았고 그 결과 집권여당이 지방선거에서 크게 패했다.
최근 북한은 남한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부르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흘리면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있어 먼저 군사적 긴장 완화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남한도 이번 총선이 윤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여부를 좌우하는 중대한 선거인 만큼, 적어도 4.10총선 전까지는 대북 강경입장의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처럼 남북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가운데, 한반도 정세는 점점 전쟁 위기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전쟁 위기, 해결방법은 없나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 한반도에서는 크게 전쟁 위기가 두 차례 있었다. 한 번은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을 계기로 남북한이 포격전을 벌인 뒤 발생한 전쟁 위기로, 미국과 중국의 극적인 중재로 해결되었다. 또 한 번은 2017년 8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에 따른 전쟁 위기로, 당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로 해결되었다.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던 2017년 7월 20일 미 공군 B-1B 랜서 전폭기가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14일 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과 관련해 "만약 미국을 향해 발사한다면 그것은 전쟁"이라고 단언했다. 2017. 7. 20. AP 연합뉴스
2015년 8월 초 목함지뢰 사건에서 아군 병사 2명이 부상 당하자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고, 이에 반발한 북한군의 포격과 한국군의 반격이 있었다. 마침내 북한군은 8월 20일 오후 5시를 기해 48시간 내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한다고 경고했다. 8월 21일엔 김 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북한군의 완전무장과 후방 화력부대의 전방 이동을 명령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3군사령부를 방문해 각군 사령관 및 참모과 화상회의를 갖고 '선조치 후보고'를 지시했다. 워치콘이 4에서 3으로 상향되었다.
남북한의 양보 없는 대치 속에서 군사충돌 위기가 높아졌다고 판단한 중국이 북한에 자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누구의 자제 타령도 정세 관리에 도움이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결국 선양의 중국군 탱크와 장갑차들이 북·중 국경지대로 접근해 북한지도부를 압박하고, 미국은 진행 중이던 한미 군사연습을 중단하며 남한 정부를 설득했다. 마침내 북한의 최후통첩 시한을 2시간 앞두고 남북한이 고위급 접촉에 합의함으로써 군사 위험은 극적으로 해소되었다.
또 다른 사례는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과 미 국방장관을 역임한 리언 파네타와 월리엄 코언 등이 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 더 심각한 핵 위기라고 평가한 2017년 미국과 북한의 전쟁 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경고한 날 미국은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장거리전략폭격기 B-1B랜서 2대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도 화성-12형 4발로 괌을 포위사격하겠다고 예고하고 "미국의 무모한 선제타격 기도가 드러나는 그 즉시 서울을 포함한 1, 3야전군 지역의 모든 대상들을 불바다로 만들고 태평양 작전 전구의 미제 침략군 발진기지들을 제압하는 전면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북·미 군사충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연속참관기 '국제친선전람관을 찾아서' 프로그램 시작 화면. 15일 방영분(오른쪽)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빨간색으로 표시됐지만, 17일 방영 때는 한반도 북쪽만 빨간색이다. 2024.1.17.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괌도 주위 사격 방안과 대북 선제공격론 등 북·미 군사충돌 위험성이 높아지자 8.15 대통령 경축사를 통해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다"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 3일 북한이 수소폭탄실험을 실시하고, 9월 24일 새벽 미국 B1-B 전략폭격기 2대가 동해 북방한계선 북쪽의 국제공역까지 대북 위협 비행을 실시했다. 하지만 결국 문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해 한미 군사연습을 연기함으로써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 명분을 만들어 줌과 동시에 전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오는 1월 하순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에 따른 첫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될 예정이다. 2월 하순~3월 하순에는 정례적인 한·미 군사연습도 예정되어 있다. 북한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연습에 반발해 북한이 핵무기 사용위협을 노골화하면서 한반도 군사적 위기가 다시 한번 고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녕 한반도 전쟁 위기의 극복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아닌 강대국들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남북한의 두 최고지도자에게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준 시[與隋將于仲文詩]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싸움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출처 : 전쟁위기 조장 '2017 트럼프' 빼닮은 '2024 윤석열'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