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
삼례 댁은 온종일 월남에서 싸우고 있는
둘째 아들 생각뿐이었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안감을 잠재울 방법을
도저히 찾을 길 없었다.
요새 집안 분위기로 봐서,
술이며 기타 잡다한 생각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다시 한번 남편의 비위를 건드리는 경우,
뒤따라 올 대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딱 한잔만 했으면 하던 생각이 어느새 탄식으로 변했다.
“두렁교회에 가서 앉아 있으면 술 생각도 없을 틴디.
자기가 먼데 예수도 못 믿게 허는 거여?
그렇다고 혀서 내가 부처님을 믿을 것 같여?
어림도 없는 소리랑게.
그런디 참 이상 허더란 말여.
목사님의 힘찬 천국 얘기가 부처님의 극락세계
허고는 딴 판이더랑게.
예수만 믿고 회개허면 언제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혔당게.
영수 걱정쯤이야 허덜덜 말라고 허드라고.
모두 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혔당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는디,
그게 무신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여.
영수가 무사히 돌아온다면야 하나님을 머 헌다고 믿겄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알아서 처리혀 준다고 허니까 꼭 믿어야 허는 것이지.
한 가지 꺼림칙한 것이 있긴 헌디.
복실이 애미 허는 말이, 댐배 수매 허면 십분의 일을
교회에 바쳐야 헌다고 허는디, 그게 될 일이냔 말여?
인자 돈이란 돈은 몽땅 영길 애비가 쥐고 있잖어?
그건 그렇다치고,
마른갈이 물대듯 한 잔만 혔으먼 쓰겄는디 방도가 없네·······.“
창근의 갑작스런 호령소리가 그녀의 희망사항을 싹 가시게 했다.
“지금 멀 생각허고 있는 거여?
그렇게 넋 놓고 앉아만 있으면 입에 밥이 들어오는 거여?
만일의 경우 다시 한 번 술을 마신다든지,
김 목사 그놈헌티 내뺄 때는 신세 생각혀서 헐 일이구만.
난 한 번 헌다면 허는 사람이니께···.”
삼례 댁은 귀신같이 꿰뚫어보던 남편의 상상력에 혀를 찼다.
“호랭이도 제 말 허면 온다더니,
어찌 그렇게 딱 내 맘을 점찍어 낼까?
참말로 기맥힐 일이구먼.
막걸리고 하나님이고 죽도 밥도 다 틀렸고만 그려.
인자 헐일 이라고는 낮에는 꿍꿍 일이나 허고,
밤에는 고것만 대주면 되겄고만···.“
그녀는 종일토록 모래밭을 탈출하려던 생각을
날이 저물어서야 포기했다.
삼례 댁은 집에 돌아오자 만사가 귀찮아졌다.
식구들이 맛있는 저녁 밥상을 기대하기엔 무리였다.
그날 밤, 삼례 댁은--- 자신의 상상력으로는 해몽하기 힘든
참으로 아리송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도록 기다리던 술도가 집으로 시집가는 날을 맞이했다.
삼례 댁은 가마를 타고 산을 넘어 강을 건넜다.
웬일인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직접 신랑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마꾼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신랑을 찾아가는 길은 답답하기만 했다.
갑자기 가마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면서,
가마꾼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가마는 정처 없이 하늘을 떠돌다 어느 산골의
부잣집 마당에 곤두박질치며 떨어졌다.
가마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녀는 겨우 살아남아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생면부지의 신랑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씨부렁거리며 다짜고짜로 삼례 댁을
강제로 술독에 처넣었다.
“당신이 지금 들어가 헤엄치고 있는 술독은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축에 드는 거요.
이 독 속에 들어있는 막걸리를 다 마신 후에 혼례식을 올립시다.
실컷 마시세요.
다 마시려면 아마 5년은 족히 걸릴 거요.“
이렇게 말을 끝내고 사라진 젊은 사나이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술독 안은 바다와 같이 드넓었다.
삼례 댁은 살아남기 위해 독안에서 계속 헤엄을 쳐야만 했다.
술을 실컷 마시기는커녕 뱃속에 있던 똥물까지 토해냈다.
이제는 너무 지쳐 술 항아리 밑으로 가라앉을 즈음에,
두꺼비 한 마리가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이속에 들어있는 것은 술이 아니라 독약이란 말야.”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실감나던 순간이었다.
이제 살았으니 토담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을 굳히던 순간,
두꺼비가 그녀를 꼬드겼다.
두꺼비의 언사는 은근하면서도 상당히 겁을 주는 감언이설로 일관됐다.
“삼례 댁은 어릴 적부터 그렇게도 그리워해오던
용왕님의 나라에 가고 싶지?
이번에 내가 용왕님을 뵈러 용궁에 갈 일이 있는디,
같이 갈 의향이 있으면 지금 말해야 돼.
용왕님한테 벌 받으면 인생도 끝장이야.
이런 절호의 기회에 죽은 후 가게 될 이상향을
미리 구경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거야.
용궁까지 갈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을 내가 알려주겠어.
나의 등에 올라타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곳은 진짜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야!“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두꺼비의 등에 올라탔다.
“인자 나는 꿈에 그리던 용왕님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당게.”
그녀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바닷물 속으로 잠겨갔다.
순식간에 용궁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용왕님이 계시는 용궁이 이렇게 좋은 곳인지 미처 몰랐당게.
너무나 황홀 하구만.“
그녀는 이렇게 감탄하며 용왕 앞에 무릎 꿇고 절하며 인사했다.
용왕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년 엉덩이가 쓸만하구나.
아들딸 열 명만 낳아주면 고향으로 보내주마.
여긴 네 맘대로 오고가는 곳이 아닌 줄 알아라.
그리고 이곳에서는 지켜야 할 법도가 일만 가지가 넘는다.
무엇보다도 법도를 잘 지키는 일은, 바로 나를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다.
네년이 바느질삯으로 벌어 감춰 둔 삼십만 원도 당장 내놓거라!“
무식한 용왕의 말투로 보아 속았다는 느낌이
그녀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지체 높으신 용왕님!
지가 모아놓은 돈은 토담집 부엌 쌀독 속에 들어 있구만요.
지금 당장 집에 가서 가져오겠구만요.
그 돈은 삼십만 원이 아니고 이백만 원 이랑게요.
몽땅 가져올 팅게 걱정 마시랑게요“ 라고 삼례 댁이 말했다.
용왕은 눈이 뒤집힐 듯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두꺼비를 불러들였다.
“두꺼비!
네가 한 번 더 수고해 줘야겠다.
이년을 데리고 가서 이백만 원을 한 푼도 빠짐없이 가져오도록 하라.“
그녀는 가슴이 떨려오고 솟구치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려도 토담집이 제일이랑게.
내가 갈 곳은 바로 그 곳 뿐이란 말여“라고 중얼대며
땅위에 발을 내딛자마자, 두꺼비를 발로 밟아 죽여 버렸다.
난데없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녀는 방향감각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처럼 남편과 자식들이 그리운 적은 없었다.
그녀는 앞을 향하여 어림짐작으로 무조건 달렸다.
삼례 댁은 달리면서 이것저것을 동시에 생각했다.
“아무도 눈앞에 닥쳐올 일은 모른단 말여.
미래의 일은 그저 기다려야 허는 건디,
내가 너무 방정을 떨어댔던 거여.“
그녀는 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아랫도리는 생 오줌으로 축축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가 영수의 손을 잡고 ‘돌아오지 않는 강’ 어귀에 서서
서로 무어라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하얀 분가루를 바르고,
검정색 긴 두루마기와 머리카락하나 없는 번쩍번쩍 빛나는
대머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저승사자의 움직임이 서서히 활발해지고 있었다.
삼례 댁은 울며불며 강 쪽으로 뛰어갔다.
그녀는 소리치며 영수를 끌어안으려 달려들었으나,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저승사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년이 아무리 지랄혀 봐야 소용 없당게.
너는 살아있는 인간이고, 이놈은 곧 숨이 끊어질 운명의 순간이란 말여,
내가 둘 사이를 갈라놓는 이유를 알겄지? “
그녀는 통곡하며 저승사자에게 애원했다.
“저승사자님 !
지발 지 자식 영수를 좀 살려주시랑게요.
갸를 낳을 때 양수가 안 터져 죽을 뻔 혔당게요.
지는 그때 다 죽어가면서도 자식 하나만은 살려야겠다고 온 힘을 다 썼당게요.
하늘같이 너그러우신 저승사자님!
지는 저승사자님만 철석같이 믿겄구만요.
이렇게 엎드려 절허며 지 자식 목숨을 살려주십사 부탁드리는 구만요.
영수가 월남에서 보낸 편지에서 아까시아 꽃이 피면
돌아온다고 혔당게요.“
그녀는 땅에 엎드려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어매~ 나 둘째 아들 영수인디요~”라고 부르는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저승사자는 이미 홀로 강을 건너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다.
영수는 저승사자와 정반대 방향인 토담집 쪽으로 걸어가며,
그녀에게 무어라고 계속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삼례 댁은 갑자기 잠자고 있던
남편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여보~ 당신이 이렇게 귀중한 내 남편인 줄 몰랐당게요.
이제부터는 당신 말을 부처님 말씀으로 알아야 겄고만요.”
그녀는 어떨 결에 잠이 깬 남편에게 조금 전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창근은 놓쳐버린 단잠을 아쉬워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요새 하나님헌티 미치더니 몸이 너무 허해졌고만.
다음달 초닷샛날 댐배 수매 허면 보약 좀 먹어야겄어.
눈 딱 감고 용탕 몇 첩 먹는 거여.
이 몸은 당신이 꼭 필요허단 말여.”
카페 게시글
BL소설
문 학
이런저런 꿈 이야기 ( 29회 )
장편소설
추천 0
조회 37
08.04.11 07:3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