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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뒤범벅 서해안 장고도를 찾아서
퍼온글 : http://blog.daum.net/chul5342/13953255
나는 처음으로 해상 환경 생태 자원봉사를 갔다.서울의 중랑천 인근 산에서 쓰레기 줍기 행사는 많이 참석했으나 처음으로 해상 기름 유출사고로 인한 기름제거 자원봉사를 갔다.
용산역 18:00 공권력 피해구조연맹 회원들11명과 동행하여 익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연맹회원들은 전원이 60대 초반 여성들로 조관순 단장만 오십대 이고 모든 60대 중후반 연희동 주부들이었다.자식을 키워 내고 여가시간을 사법정의를 구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피해를 구조하고자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활동가 아주머니 부대이다. 공권력의 억울한 기소독점주의 행사,억울한 재판등 도움을 준 투쟁 성과가 많이 있는 주부 운동단체이다..
장항선 대천역이 목적지이다.나는 90년도에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선거에 낙선하고 우울한 기분을 달랠겸 장항성을 타고 무창포에 다주 다녔다.그 때 우연히 대천역에 내려 서해안 해산물을 사기위하여 역 앞의 재래시장에 들렸다 시장통 멸치 국수집에서 한그릇 먹은 적이 있었다.
그 국수 맛은 그 옛날 춘궁기 국수맛과 똑 ?았다. 너무 맛있어 몇번인가 더 갔다. 그 500원짜리 국수를 먹기위하여 일부를 대천역에 자주 내려 들였다. 일행들에게 대처역 멸치국수를 이야기해주었다.한그릇 사주겠다다고 약속을 했다.막상 대천역에 내려보니 신축한 역사가 우렁차고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사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지방화 시대에 신천지역에 도착해있었다.마중 나오신 지역 활동가 000씨를 만나 버스를 타고 대천 해수욕장 모텔 숲 앞에 내려 조단장을 따라 대단히 큰 모텔 로비에 섰다.아직도 크리스 마스 트리는 반짝이고 아주머니들은 훌륭한 모텔앞에서 약간 흥분하여 목소리가 더커졌다. 트리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모두들 십대 MT를 온 기분으로....
10여분 후에 지역활동가 김태갑씨가 왔다, 조금만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그 오토바이를 따라 한참걸었다.어둑한 길로 인도하는 행렬속에서 일행중 누군가가 불평을 하는 것 같았다.이 동네에서 가장 허름한 집으로 가는 모양이다.......얼마동안 걸었는가 해안가 민박집에 당도했다.그 집은 허름한 블록집으로 60-70대 민박집이었다.내 스스로가 무척 당황했다.서울의 아주머니들이 하룻 밤을 묵기에는 너무 허름한 집이었다.제일 큰 방으로 인도 되었다.
방으로 가는 복도도 어른이 비켜가지 못할 정도로 좁고 침침했다.방으로 들어 서자 아주머니들은 에구 ! 술냄새 담배 냄새야! 신음소리를 냈다.그 아랫목에는 70-80대 노인들이 만취한 상태로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머뭇거리기기 때문에 앞장서 들어가 할아버지들 곁에 앉게 되었다. 엉덩이가 앉자마자 뜨끈뜨근했다.
서로 목례 인사를 나누고 김태갑씨가 선생님이라 부르시는 분들부터 소개를 했다.평생을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하여 오신 강00 선생님...00연구소 이0영 님,대전애국지사숭모회장 이0의 선생님 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여성 동지들부터 차례로 자기소개 하실까요? 아주머님들 얼굴 표정이 이그러지고 웬지모르게 앉자 있는 모습들이 점점 더 불편하게 보였다.이미 시간은 23시30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태갑씨는 내일 일정을 말하였다.모든 이동수단 편의 제공을 대천시로 지원을 약속 받았습니다.우리가 갈곳은 장고도라는 섬입니다.
내일 아침에 5시에 기상하고 식사를 한 후에 시 측으로 부터 제공된 차량으로 대천항으로 이동하여 여객선을 타고 장고도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오늘 밤 잠은 이곳에서 주무십니다.4평도 안되는 방에서 모두들 체온을 난방 삼아 자라하니 여성 자원봉사들은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80년도 대성리 새터 수련회 생각이 났다.세상을 20년전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까 잠간 들렀던 그 모텔 하룻밤 방 한칸이 얼마인가요.? 내가 2객실료 지불하겠습니다.
즉시 사무장에게 카드 현금을 건네 주면서 방을 예약하라고 지시를 했다. 그 여성 봉사자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일행이 떠나고 나는 남았다. 아까 들어오면서 선생님께 하신던 말씀들 중 복희씨가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라는 말씀을 잠깐 들은적인 있습니다. 이왕에 말씀이 나왔으니 삼황오제에 대하 한 말씀 더듣고 자 합니다.
말씀을 엽쭙고 윗목으로 자리를 옮겨 앉잤다. 윗목은 완전히 냉골이다.말씀이고 뭐고 엉덩이가 얼어터지는 것이다.
동지회 한 어르신이 내일 일정이 있으니 무조건 자야한다는 요구가 받아드려 자리를 깔았다.자리야 여름용 홑이불이에 덮을 것은 없다. 나의 오리털 파카를 뒤집어 쓰고 자야 할 판이다.몸살 날 판이다. 얼른 사무장에게 전화를 했다. 올 때 술을 사오라 ........술힘에 잠을 청해야 한다. 연로하신 동지 한분이 말씀을 하셨다.
반미 민족자주통일을 오늘날 젊은 세대는 모른다고 혀를 찼다. 이번 총선에서 이런 측면으로 각 후보를 검증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분은 닥아오는 총선에서 현 추세대로라면 250석 이상 한나라당이 싹쓸히 할 것이라는 예상의 말씀이 있었다.
사무장이 술을 사왔다.자기전에 술이라도 먹어야 잠을 잘 잘수 있으니 한잔씩 권했다.한잔씩 컵으로 소주가 돌았다. 충청도에 왔으니 충청도 소주를 사왔는데 컵으로 마시니 물처럼 금방 소주 5병이 살아졌다. 술김에 선생님들께 한말씀 올렸다.지금 농촌 총각들은 장가를 못가고 필리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고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우리사회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미래를 위해소 순혈 민족주의를 바꿔야 할 때 아닙니까? 통일도 남한 자본주의 생산 모순으로 인하여 가장 질서 정연한 노동력이 존재하는 북한이 남한을 위한 저가 상품생산 기지로 적격이 통일운동으로 나타나는것 아닌가요? 우문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마침 그 때에 추공선생이 모텔에서 가기를 강권하여 모텔로 이동하였다. 모텔에서 술을 마구 마셨다.
사무장 동지가 사온 술을 다 마셨다.이제 이밤 시간에 더 이상 술도 없고 내일 아침 05시에 기상할 일만 남았다.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나에 경험상 이 풍진 세상에 60대 황동가들 아주머님들에게 인간적인 굴욕을 당하지않도록 잠자리도 편하게 해드렸으니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흔든다.깨어났다.몸을 일으키로고 하는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취기다.모텔의 큰 방에 혼자있디.에구! 추공형님은 어디갔는가? 일어나려고 하는데 같이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현실인지 꿈인지 잘 분간이 안가고 지옥이라도 이정도 같으면 더 자고 싶었다.
또 잤다. 추공 형님이 또 깨웠다.새벽 5시야 밥 먹으로 가야해! 그렇지.... 지시는 지켜야해~ 겨우 몸을 일으켜 비틀 거리며 화장실에 가 얼굴을 씻었다.눈곱만 떼고 60년대 민박집을 찾아 나왔다.
거기에서만 밥을 먹을수 있다.60년대 이승만군대의 졸병처럼 위대한 반공사상에 젖어 구호에 젖어 싸우다 죽은 장병들 처럼 말이다.우리가 지금 처해진 환경 생태 재앙인 기름유출 사고로 조국을 구한다는 이 행사에서 벌어지는 국고지원의 형태가 구호는 맞는데 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은 웬지모르게 이승만 군대 처우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후 대천시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대천항구에 도착했다.요란한 자선단체의 서비스 구호가 난무하다.커피 녹차 컵라면...입에 물고 팻말 앞에 섰다.4열 횡대 누가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구구단 중 4구단 까지 아시는 분은 100살까지 사실분이다. 두세번 앉자다 일어났다 반복한 끝에 장고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백여명 탈수 있는 작은 여객선이다.나는 지래 겁을 먹었다.나는 배만탔다하면 멀미를 하는 체질이다.후미에 앉자 심호흡을 했다.곧 잠들었다.깼다.창가에 앉자야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맨 후미라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얼마나 갔을까 배의 스크르가 역회전하는 거 같다.장고도에는 아침 안개가 희쁘엿게 감싸고 있었다.
장고도는 무인도인 줄 알았다.승합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승합차에 몸을 싣고 10여분 달린 끝에 작업장에 도착했다,
도착 하자마자 주위도 살필여유도 없이 바로 방제복에 고무장화를 싣었다.물 때가 있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아쉽다했다. 작업 지시는 동네 분들이 이미 작업을 하고 있는 곳에서 걸레로 자갈 바위를 기름을 닥는 것이다. 각자 걸레를 들고 작업장에 도착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무조건 바위를 닥았다.자갈을 닥았다.한참 닥다가 자갈속에 생물을 보고 싶었다.아무리 찾아 봐도 갑각류,패류,절지동물 보이질 않는다.이미 멸종되었다.
해안가의 마지막 청소부 강구마저도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한참후에 돌틈에서 절름거리는 강구 한마리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의 절지에 기름이 묻어 제대로 기지 못하고 있었다.며칠을 굶었을까 ? 그 녀석 생명력 모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그 녀석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대 재앙을 만든것이 인간이라는 자괴심에 너무 부끄러웠다.우리 일행은 아무말도 없이 닥고 또 닥았다.4시간이 지날 무렵부터 추공님이 말문을 열었다.서울에 가면 위령제를 올려야 겠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참회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홍씨 부인은 부러진 바늘을 애석하게 여겨 조침문을 지어 바늘을 위로 하였것만 수많은 생물을 질식시킨 인간으로서 참회의 위령제를 올려야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태게 순환 고리는 철저하게 차단되었다.여기는 유인도로 그 나마 인간의 손?? 닿지만 무인도는 어떻한가? 고개를 들어 남서쪽을 보니 기막힌 풍광을 가진 무인도 애기섬 두개가 있다. 그 섬에도 기름으로 뒤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얼마나 닥았을 까? 추공님이 화장실 갔다 오자 했다.나는 다음에 자원 봉사 올때는 전날 절대 물먹지 말고 생리를 철저하게 단속을하고 와 야지 생리 불순이면 장화 방제복 그속에 옷을 입은 상태에서는 용변 보는 것이 아주 불편하다.화장실도 500여미터 떨어진 민박집까지 가야하는 노동 시간도 낭비하는 것이다.
나는 농담으로 다음에 이런일이 생기면 선착순으로 자원 봉사와야지 늦게 오면 점점 더 오지로 배치되어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깨우침을 배웠노라고 말했다.뒤뚱거리며 일어났다.
내 나이 55세다.이것도 일이라 팔다리 마디마디가 뻐끈하다. 어그적 어그적 걸어 민박집 화장실로 갔다.동지들에게 이번에 출마공약 중 환경생태 공약 중 한반도를 둘러싼 유조선 항로 지정,이중선체 아닌 유조선 항해 접안금지, 선박 재난시 안전 구출 제도 정비 등을 연구 검토하자고 동지들에게 제의했다.
민바집에 당도하니 동네 자원 봉사자들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무려 4시간동안 정신없이 기름제거 닥고 또 닥은 셈이다..밀물이 들어 오 때 라 13시 배로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이제 1시간 정도 밖에 남지 못했다. 땅 바닥에 신문지 깔고 서너가지 반찬에 밥 한공기다.맨 땅에 주저 앉자 식사를 하는데 동네 한분이 합석을 했다. 그 분이 처음에는 기름이 장화 목까지 밀려 왔다는 것이다.퍼내고 퍼낸 것이 이정도라는 것입니다.이 장고도는 전복,해삼,조개등 엄청난 어획을 올리는 지역입니다.
올해 어로는 망쳤습니다.나는 그 동네분에게 말씀을 드렸다.아마 2-3년은 어로 금지하고 생태계 교란 여부를 면밀히 관찰한 후 어로 작업을 하여야할 것입니다.자칫하다가는 어자원 완전 고갈시키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이미 먹이사슬이 깨진 상태에서 토착 어패류를 잡으면 다시 생태계 복원이 백년 이상 걸릴 수 있습니다.
알래스카 원유 유출 사고는 아직도 생태계 복원이 안되고 있다는 사례 말씀드리고 철저한 환경 생태계 영향 평가속에서 어로 작업을 재개하여야한다는 말씀을 드렸다.우리도 피해 어민들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지원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털털 거리는 승합차에 몸을 싣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선착장에서 기념 촬영을하고 배에 오르는데 누군가 자갈 밭에 타르 덩어리를 가르켰다.뻥과자 만큼의 타르 덩어리다. 반대편의 선착장이지만 조류에 따라 사방으로 원유가 흩터진 것이다.나는 얼른 뛰어 내려 타를 덩어리를 선착장으로 올렸다.
배에 오르면서 공무원에게 치우라고 말을 했다.이번 배는 자동차 화물을 싣고 다닐 정도로 큰 배이다.아름다운 해안 풍광을 보고 싶지않았다.
객실 바닥에 주저 앉자 동료들과 한잔 술에 살아있는 인간들의 오만함과 거대한 중국의 대 해상유전 지대인 보이히만에서 이런 유출사고가 나 서해로 밀려 온다면 속수 무책이라는 시름속에서 잠들었다. 팔 다리가 뻐근하다.
첫댓글 그래도 멋진 삶을 살아가시는 선배님은 멋쟁이십니다...
야영훈련받고 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추공 선배님의 글을 자주 접하니 늘 좋습니다
아는 분들의 이야기네요...좋은일 하신 분들의 소식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