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누구와 제일 먼저 상의하고 싶어할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제일 먼저 부모를 꼽는다.
하지만 실제로 상의하는 사람은 친구들이다.
그들은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부모님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아요."
부부 간의 심한 갈등 때문에 상담실을 찾은 남편과 아내는 예외 없이 말한다.
"우리 남편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아 정말 답답해 미치겠어요."
직장에서 마음 고생이 심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료들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요."
부모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직장동료들이 서로 다른 나라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말이 통하지 않을까?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를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데 왜 우리 주위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사람들이 이리도 많은가?
하긴 대화와 타협의 장(場)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가 대화가 안 되는 곳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니 정말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지금까지 진정한 대화의 의미와 방법을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만 할 줄 알면 대화는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대화를 하는 것은, 마치 컴퓨터를 배우는 것처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대화의 목적이나 내용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화의 형식은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 상대방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진행하는 것이다.
즉 내가 이야기를 하고(말하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듣기)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부드럽고 원만하게 진행되면 말이 잘 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듣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들어 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말이 잘 통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의 속마음을 조금씩 열어 가면서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사연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그러므로 대화를 잘하면 상대방의 마음의 짐을 덜어 주고 해방해 주는 효과를 얻게 된다.
듣기를 잘한다는 것은 내가 말할 차례가 됐을때 침묵하면서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계속 침묵을 지키면 상대방도 결국은 말을 안 하게된다.
듣기를 잘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 즉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내가 말할 차례가 됐을 때, "너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혹은 "너는 지금 이렇게 느끼는구나"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해라는 말은 영어로 understand다.
이 단어는 under(밑에)와 stand(서다)의 합성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 밑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행하는 것이다.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나는 너를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이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하고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다.
한성열 /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