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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 5. 큐티
느헤미야 9:32 ~ 38
주의 백성이 당한 환란을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관찰 :
1)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의 환란중에서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 32절.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a.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그들은 찬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그 땅을 주시기로 하신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b.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심판하시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언약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좇을 때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고,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좇는 상황을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c.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이스라엘의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앗수르와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환란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d.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이러한 부분의 환란을 작게 여기시지 않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선이었습니다. 초막절 이후에 하나님께 회개의 시간을 더 연장하여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환란을 작게 여겨주지 않으시고, 환란을 그치시기로 하시면, 그것으로 환란은 끝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33절.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a.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환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미 노래했고, 다시금 주님 앞에 고백함으로 하나님이 문제가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모든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진솔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b. 환란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대해 주신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환란이 이기기 어려운 힘든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믿음이 이어진 것이 감사의 제목이었고,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자가 하나님 여호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전심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종 된 이스라엘
- 34절.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a. 하나님이 공의로우심에 반해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실패하고 범죄했는가에 대해서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다시금 고백하고 있습니다.
b. 북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 그리고 남왕국 유다의 몇몇 왕들을 뺀 나머지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방백들과 심지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마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c. 그렇기에 이곳 저곳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출몰하여 혹세무민하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호도하여 그릇되고 어그러진 곳으로 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과 훈계를 따르지 않음으로 망하는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 35절.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a.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여호와”, 즉 “I will be who I will be”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계속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b.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현재를 사는 자신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기에 과거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무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서도 오직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여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로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으며,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가장 큰 악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c.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같은 차원으로 섬기거나 아예 하나님을 없애버리고 우상만을 섬기려는 행위까지 했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내버려두심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d. 게다가 그들은 다른 나라들의 행태를 따라서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주위 나라를 압제하여 자신들이 노력하지 않고도 다른 이들의 것으로 배불리려하는 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북왕국 여로보암 2세때 이스라엘이 풍족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 36절.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a.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했습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이 통치되고 있었고, 예루살렘도 그렇게 페르시아가 다스리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b. 하나님이 주신 바로 그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섬겨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입니다.
3) 곤란 중에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는 이스라엘
- 37절.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a.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그렇게 된 모든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고백했습니다.
b. 이들의 관점은 통시적이고 구속사적 관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을 통치하는 이방 나라의 왕이 있는 상황이었고, 그들에게 바쳐야 하는 세금과 기타 조공이 힘에 겨워 이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 곤란을 부르짖을 따름이었던 것입니다.
- 38절.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a. 그렇게 곤란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초막절의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만 따르기로 견고한 언약을 세우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b. “견고한 언약을 세워”는 문자적으로는 ‘견고함을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언약은 짐승을 둘로 쪼개 그 사이를 지나가는 행위로부터 비롯된 용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그렇게 언약을 맺었습니다.
c.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것을 언약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 모든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도장을 찍어서 맹세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 70년간, 140여 년간 그렇게 포로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왕도 없었고, 정치적으로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 일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니엘이나 느헤미야처럼 페르시아의 궁전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대놓고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고난을 적은 것으로 여기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시면 그들의 환란은 끝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혹시라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환란은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은혜가 충만하셔서 자신들의 죄를 참아주신 것 만해도 감지덕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부가 아니라 실제가 그랬습니다.
2)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결국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셨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남왕국 유다도 모두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인내하시고 자비로 대해주셨지만 죄인 된 인간들이 돌이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 즉 인류의 구원을 위한 구원의 역사를 흘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지 하나님의 힘이 앗수르나 바벨론 혹은 페르시아의 신보다 약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레위의 노래하는 자들은, 아니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대상하를 집필한 에스라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부분을 레위인들에게, 제사장들에게 가르쳤고, 이것이 이스라엘의 공통적인 신앙고백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3)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한 것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열심을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이렇듯 신앙고백으로, 그것을 언약하고 또 도장을 찍어서 맹세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자신들의 삶에서 하나님만 믿고 따르기로 작정하고 결정한 것입니다.
적용 :
1) 참된 회개는 눈물만 흘리는 감정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신앙의 고백과 그에 따르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철저하고 치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하는 역할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정하고, 자신이 해야 할 행정적인 부분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적인 부분을 구분해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행정적인 부분을 마무리하고서는 영적인 부분을 에스라에게 위임해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영적 부흥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안배했습니다. 그렇다고 느헤미야가 영적 지도자가 아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바로 그러한 부분을 위해서 치밀하게 준비했고, 짧은 시간 동안 그것을 꿋꿋하게 밀어서 성취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영적 지도자는 이러한 느헤미야의 요소를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나 역시 영적 돌파를 기대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 크신 역사를 소망하는 가운데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2) 언제나 영적 돌파가 일어날 때는 그 시대와 상황을 아우르는 신앙 고백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돌파가 일어나기 위해서 이 시대의 아픔과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문정식 목사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소중히 여기며 번역하고 나누고자 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의 고백이 합신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나의 삶 가운데서 바르게 드러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간구드립니다. 또한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가 Joyer인 나의 신앙고백이며 행동 강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간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