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 성공스토리] 노르웨이 라면왕으로 통하는 이철호씨
기름진 맛 스프로 현지인 사로잡아 `미스터 리 라면` 덕에 총리보다 유명
그는 1989년 본인의 라면 회사를 노르웨이 최대 식품회사에 넘겼다
"내가 100살도 못살텐데 내가 없어도 `미스터 리` 라면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한상 성공스토리 ◆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먹고 싶다면 `미스터 리(Mr. Lee)`를 찾으세요."
노르웨이 라면계 전설 이철호 씨(72ㆍ사진)는 `미스터 리`가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을 뜻하는 고유명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가 만든 라면 브랜드 `미스터 리`가 무려 20년 이상 노르웨이 라면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으로 불리며 총리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2000년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때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미스터 리` 조국의 대통령으로 소개될 정도였다.
이씨가 라면을 처음 노르웨이에 도입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가 요리사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17세의 나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처음엔 청소나 접시닦이 일을 하다 한 호텔 주방장 눈에 띄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어 프랑스에 요리유학까지 갔다. 이씨가 60년대 중반 독일에서 노르웨이식 뷔페 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을 때 그의 주요 고객에는 독일 총리 등 유명인들이 포함됐다. 그가 다시 노르웨이로 초빙돼 요리사로 일하던 71년 그는 스웨덴 정부로부터 한국 출장을 요청받았다.
이씨는 한국 출장에서 처음으로 라면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맛보았는데 진짜 맛있었다"며 "요리사로서 노르웨이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인들에게 낯선 음식인 라면을 소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한국 라면을 노르웨이시장에 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각종 통관 절차가 3년 이상 걸렸다. 특히 방부제 등 성분검사 통과가 까다로웠다. 게다가 노르웨이인들은 라면 요리를 할 줄 몰라 라면을 그냥 버리기 일쑤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한국 라면이 맵고 얼큰해 노르웨이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그는 해결책을 찾으러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를 가지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진과 함께 노르웨이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새로운 라면 스프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프랑스 독일 등에서 요리사로 일한 경험을 되돌아 보니 나라마다 독특한 소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노르웨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스를 먼저 알아놓은 다음 거기에 맞추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로 매운맛을 빼고 기름진 맛을 더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철호 씨가 오슬로 근교 한 식당에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차고 있는 돌핀 전자시계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처음에 한국 라면을 그대로 도입했다가 입맛에 맞게 바꿔서 출시한 이후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며 "당시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컨테이너 단위로 주문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매출 증가와 함께 그가 주력한 부분은 홍보였다. 벌어들인 수익 중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홍보에 투입했다. 그는 신문 방송 광고는 물론 한국 여행 경품까지 걸었다. 한국을 알리면 라면도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스터 리` 라면 표지에는 `소고기맛` `닭고기맛` 등 한글이 꼭 적혀 있는데 이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덕분에 노르웨이에서는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 라면이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업이 계속 승승장구하던 89년 어느날 이씨는 갑자기 자신의 라면 회사를 노르웨이 최대 식품회사에 넘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팔아치우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내가 100살도 못살텐데 내가 없어도 `미스터 리` 라면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며 "동양 사람들이 자기 묻힐 묘를 만들고 죽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그의 딸 3명이 모두 사업을 물려받을 뜻이 없다고 밝혀 그는 더 쉽게 `미스터 리` 라면 사업을 넘길 수 있었다.
이씨는 90년부터는 라면 개발만 필요에 따라 해주고 한국과 노르웨이를 양국에 홍보하는 일에 전념해오고 있다. 그는 또 세계 최초로 해산물대학교를 노르웨이에 설립하는 것을 추진 중이며 인천 송도에는 `리틀 노르웨이`라는 노르웨이 타운 건설도 추진 중이다.
한편 그는 한국인들에게 노르웨이에 와서 다양한 사업을 해볼 것을 권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노르웨이에서 근면성실한 한국인이 성공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 노르웨이선 `빨리빨리` 안통해
"노르웨이 사람들과 일하려면 서둘러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몇 년이 걸려도 꾸준히 일을 해야만 합니다."
라면왕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에서 사업 성공 비결을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있으나 노르웨이인 특성이 뭔가를 즉각적으로 하는 데 익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만일 누군가가 노르웨이인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그냥 지나가는 말로 생각하고 부탁을 바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1년 후, 그리고 2년 후 꾸준히 부탁하면 진실성을 깨닫고 기꺼이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씨는 따라서 한국 사람들이 막 덤벼들었다가 안 된다고 바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르웨이에는 공무원 부정ㆍ부패가 거의 없어 뇌물로 매수하려는 생각은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절차에 보통 3~7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앞당기기 위해 무슨 수를 쓰면 오히려 추가 조사를 받게 돼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노르웨이 언어 습득도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인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으나 현지 언어를 모르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50년여 전 노르웨이로 이민 올 당시 자신의 영어 능력을 믿었으나 노르웨이어 습득의 중요성을 깨닫고 숙달되기까지 하루 3시간씩 자며 현지어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마지막으로 한국인으로서 노르웨이에서 사업을 한다면 한국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했다. 그의 `미스터 리` 라면은 1970년대 중반 출시될 때부터 갖가지 한글을 라면 겉봉에 넣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고객들 관심을 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슬로(노르웨이) = 윤원섭 기자]
미스터 리 라면 홈페이지인데 한국에서는 망한듯...
http://www.misterlee.co.kr/default.asp
그리고 덧
2000년 11월 초, 노르웨이의 북부, 인구 1만 8천명의 작은 도시 나르빅의 지방 신문에는 그 전날 있었던 학생들의 무단결석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연인 즉, 그 지역에 새롭게 문을 여는 백화점의 개업 기념 라면 시식 행사에 참석한 '미스터 리'를 보기 위해 전체의 절반인 학생들이 결석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그 백화점의 라면 시식 행사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고, 바비 인형 같은 북구의 금발 미녀들이 코믹한 외모의 이철호 씨를 둘러싸고 '미스터 리'를 연호하며 미스터 리가 직접 끓인 '미스터 리' 라면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사인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라면 좋아하시죠?
우리 입에 너무도 맛있는 라면! 이철호씨도 처음엔 본인이 좋아서 라면을 노르웨이로 들여왔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노르웨이사람들은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철호씨가 라면을 권해도 좋아하지 았습니다.
이렇게 이철호씨가 라면을 알리기를 몇 년, 드디어 노르웨이에서 이철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철호씨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에는 두 명의 국왕 있다. 하나는 진짜 국왕이고 하나는 라면왕 미스터리 이철호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철호씨는 특유의 유머와 진지함으로 좋은 인상을 주며 노르웨이인의 입맛에 맞는 순한 라면을 개발, 국내 공장에서 제조하여 노르웨이에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한국인 이철호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한번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다는 이철호씨. 자신이 만든 라면 봉지에는 한글로 ‘닭고기맛’, ‘쇠고기맛’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글을 넣지 않으면 안 팔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비록 이철호씨는 라면으로 유명해졌지만 노르웨이 최초 한국인으로서 그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업을 성공시켜 이제는 우리나라를 알리는 홍보대사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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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쓰셨다는(아니면 이름만 달고 나온건지)책 한번 봐야겠다...
이런 분 진짜 멋지다 부럽다
내가 오래전부터 존경하던분인데 이런데 소개되어 기쁘다.
쩐다
꾸이꾸이 갈매기살
라면은 추운지방에서 잘되는 모양이야
ㅅㅅ
우리나라 돈으로 6000원 정도...두가지 종륜가 봤는데 맛은 좀 닝닝하긴 하지만 먹을만함 ㅇㅇ 라면종류 별로 본 것도 없지만 암튼 미스터리가 꽉 잡고 있음 ㅇㅇ 대학교 등교할때도 나눠주고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