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
창근은 비몽사몽간에 몽롱한 상태로
잠자리를 지키며 온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토담집과 모래밭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며 어른거렸다.
마치 등댓불이 밤새도록 깜박 깜박하듯,
잠과 꿈 사이를 방황하며 뒤척였다.
눈 깜박할 사이에 모래밭은 바다로 변하여
모진 폭풍우와 파도로 엉망이 되었다.
바다를 항해하던 군함 한 척이 심한 파도와 싸우다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군함에 타고 있던 군인들의 생사는 알 길이 없고,
다만 한 사람이 물위를 허우적대며 소리쳤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심한 파도위에서 울부짖는 소리는 토담집까지 들려왔다.
창근과 큰아들은 밧줄을 어깨에 메고 집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바다는 이미 사라졌고, 어느새 모래밭은 자운영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여?
바닷물이 한 모금도 보이지 않네?
내가 모래밭에 자운영을 심은 일이 없는디?“
창근은 중얼거리며 조금 전 외쳐대던 사람을 찾았으나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자운영 꽃 사이를 이름모를 나비들과 꿀벌들이 평화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창근은 큰아들과 함께 잠시 넋을 잃고 아름답게 펼쳐진
자운영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근이 잠에서 깨었을 때, 방안은 아직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잠시 후 새벽 2시를 알리는 벽시계 종소리가 울렸다.
창근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둘째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 있었다.
“날이 새면 문제여.
영수를 보러 대구에 있다는 군인 병원까지 가야 허는디,
과연 병신이 됐는지 죽었는지 직접 만나봐야 알 것 아니겄어?
도대처 말라리아라는 병이 어떤 증상이냔 말여.
우리 동네 구장 형님은 참으로 팔자 좋으신 분이랑게.
자식도 없고 마누라도 없이 혼자 사는 재미가 얼매나 좋을까?
이 세상을 끝내고 흙으로 돌아갈 때는 모두 마찬가지란 말여.
죽을 때 뭣을 알겄어?
아무런 의식도 없이 몽롱한 상태로 꿈꾸듯 허다 죽는다고 허는디,
죽음 이란 혹시 꿈과 같을지 누가 알겠어?
그런디도 누구는 별 맘 고생 다 허고,
어떤 사람은 속 편허게 살다 떠난단 말여.
그저께 절에 갔을 때 스님이 그러드라고.
중생들이 괴롭다고 한탄허는 것은,
괴로움을 스스로 끌어안을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허드란 말여.
거기다 더 어려운 말은,
그 괴로움이란 것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허공’의 상태로 끝난다는디,
도무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괴로움이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허는
우리 세상 사람들의 운명인 것 같단 말여.
하기는 맘 속의 고통도 있어야 세상사는 맛도 날거 아니겄어?
항상 즐거움만 찾아온 다고 혀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거랑게.
그려~ 참어야여.
인생의 고통이란 당연헌 거여.
고통이 있기에 우리 인생도 존재허는 거랑게.
사람이 제 명을 못살고 죽는 일 외에는,
모든 걸 이겨내야 헌당게.
영수가 내 땅으로 살아서 돌아왔는디, 그 이상 멀 더 바라겠어?
창근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을 늘어놓으며,
설명하기 어려운 가슴 뿌듯한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는 이제부터 자신을 탓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이미 엎질러진 일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며,
최선을 다해서 해결점을 찾는 버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홀로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시상에는 지아무리 노력혀도 해결되지 못헌 일들이
지천에 깔려 있당게.
그려도 하루 스물 네 시간은 낮과 밤을 번갈아가며 이상 없이 잘 돌아가잖여? “
창근이 이런저런 생각의 날개를 펴고 있을 때,
옆에서 잠자던 아내의 잠꼬대 소리가 들려왔다.
“영수야! 너 어디 병신 된 건 아니지? ”
그까짓 모기헌티 물려서 죽을병에 걸렸다니 말도 안 된단 말여.
지발 거기 있어봐~ 난 니 애미란 말여.
내가 너 좀 살려 달라고 저승사자님헌티 목을 걸고 빌었단 말여.“
삼례 댁은 꿈속에서 아들을 쫓아가다 지쳐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고 어느 광대한 모래사막에 엎드려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갑자기 저번에 만났던 저승사자가 다시 나타나 말했다.
“삼례 덕!
날 무서워 헐 것 없다.
널 잡으러 온 게 아니고,
곧 죽게 될 사람을 데리러 가는 길에 널 만나 잠시 갈 길을 멈추고 있을 뿐이다.
한 가지 충고할게 있는데,
인간의 죽음이란 자기 맘대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것을 소위 운명이라고 허는 거다.
때가 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란 말야.
네년의 둘째 아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안 되었으니,
걱정 말고 어서 일어나 토담집으로 돌아가 아침밥이나 준비 하거라.“
삼례 댁은 저승사자에게 엎드려 수없이 절하며 굽실거렸다.
그녀가 중얼대는 말이 다시 남편의 귀에 들어왔다.
“생각혀 봉게, 우리 창근이가 때로는 유식허고 영리허단 말여.
자껏이 가짜 예수를 즉석에서 알아보드라고.
그런디 가짜 부처님도 있는지 어찌 알겄어?
그 애비에 그 자슥이란 말과 같이,
그까짓 부처님 허고 죽고 못 사는 영길이도 걱정이랑게.“
창근은 아내의 잠꼬대를 듣고 쓴웃음을 띠며 말했다.
‘막말 허는 걸 보니 나 허고 어떤 감정이 깊은 모양이구만.
지옥행 열차 속에서 부처님의 은덕으로 구제된 줄도 모르고 말여·····.“
토담집에 꿈 풍년이 들었다.
영길이도 새벽녘에 꿈을 꾸었다.
그는 낙수골 절 동네의 담배 밭고랑을 누비며 놀고 있었다.
밭에서 나와 와불사 법당으로 올라가 할머니 옆에서 열심히
부처님께 절하며 무엇인가를 애타게 빌었다.
그러나 자신이 부처님께 의지하며 빌고 있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빌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기도공양은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기도하던 중,
들녘 집에서는 지금 갑자기 소가 죽고 아버지는 땅을 치며
통곡한다는 소식이 왔다.
서둘러 집에 와보니,
소는 멀쩡하게 살아서 외양간에서 딸랑 소리를 내며 여물을 먹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점잖게 한마디 했다.
“날마다 법당에 가서 엎드려 절만 허면 만사가 해결되는 거냐?
댐배 밭에 가서 풀이라도 뽑아야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는 거여.
망해버린 우리 집 살림을 니가 일으켜 세워야 헌단 말여.“
아버지의 잔소리가 끝나자,
부처님이 웃으시며 나타나 영길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타일렀다.
“나는 네가 존경하고 우러러 본다는 부처님이다.
그러나 내가 생전에 이룩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나는 가짜 부처일 수밖에 없다.
다만 네가 나를 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지.
자신이 부처라고 자부하는 중생은 진정한 의미의 부처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는 있다.
그건 바로 너도 역시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는 아직 멀었어.
너는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는 바보이며,
기도할 줄도 모르는 천치이기 때문이야.
사바세계에는 수많은 부처님들이 있다.
곳곳에 있단 말야.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곳에나 널려있다는 뜻은 아니다.
꽃이 장소를 가려 피어나듯이, 부처 역시 머무를 곳에 있게 마련이다.
네가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도 부처는 나타날 수 있다.
부처는 본래 몸에 피가 흐르고 숨을 쉬던 진짜 인간이었기에,
너라고 해서 부처가 되지 말라는 이유는 없다.
그러나 너같이 부처님이란 대상을 앞에 놓고
맹목적으로 어떻게 해주십사하고 비는 것은,
아주 분별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 가짜 부처인 나 자신도 그런 한심한 중생들을
만나면 가슴이 아프다.
제발 부처가 되려고 안간 힘을 쓰지 말거라.
삶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부처가 되고자 하는
꿈조차 꿀 수 없기 때문이다.
영수가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온 것은,
병에 걸릴 운명이었기에 치료를 받기위하여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운명이란 너무도 신비스러운 것이어서
아무도 그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아마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운명에 대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우주 속에 포함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알 수 없는 초월적인
능력이라고 가정할 정도이다.
부처님의 자비심이란--- 부처가 된 입장으로써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자하는 속마음일 뿐이지,
중생들의 운명을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우주 안에서 떠도는 어떠어떠한 정신적인 또는 물리적인 작용도
운명을 멋대로 이끌어 갈 수는 없다.
무한하게 넓은 우주 안에서,
유독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을 지닌 동물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개개인의 생각이 모두 다르며,
서로간의 의견일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쨌든 중생들은 자신들이 지닌 유일한 사고 본능을 앞장세워 살아 있는 동안
갖가지 복잡한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중생들이 흔히 말하는 ‘인간사‘라는 것이다.
인간사의 가지 수는 하도 많아서 헤아리기에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만사에서 벗어나려고,
자신이 믿고 있는 어떤 대상에게 무조건 의존하며 해결을 부탁한다.
이런 행위는 아주 무모한 짓으로써,
인간사회의 퇴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불가사의한 자연의 신비이며,
어떤 야릇한 대상물에 의지하며 소리친다고 하여 자신이
바라는 대로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길이는 참으로 헷갈리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전부 해몽할 수는 없었다.
그는 요모조모 생각을 거듭하며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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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
이런저런 꿈 이야기 ( 30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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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12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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